[가사] 한국전쟁 전사자의 딸, 67년만에 국가유공자 유족 인정
[가사] 한국전쟁 전사자의 딸, 67년만에 국가유공자 유족 인정
  • 기사출고 2020.06.0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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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지법] 아버지 소생 확인 판결

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사망하는 바람에 큰아버지의 소생으로 출생신고된 딸이 67년만에 재판을 통해 아버지의 자식으로 인정받아 국가유공자 유족이 됐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딸에게는 의미가 한층 각별한 판결이다. 전쟁중에 작고한 아버지와 정식으로 부녀관계를 인정받았음은 물론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유족연금까지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주지법 이유진 판사는 4월 21일 6.25때 전사한 남편과 자신 사이에 태어난 딸에 대해 친생자 확인을 해달라며 김 모(87 · 여)씨가 낸 소송(2019드4154)에서 이 모(68 · 여)씨는 큰아버지의 소생이 아니라 아버지의 소생이라며 아버지와의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한다고 판결했다.

이씨의 아버지는 이씨가 태어나기 한 달 전인 1952년 8월 입대해 다음해 경기 연천지구 전투에서 사망했다. 당시 이씨의 부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여서 이씨는 만 18세가 될 때까지 무적으로 지내다가 큰아버지의 딸로 출생신고를 하게 되었다. 신산한 삶을 살아야 했던 모녀는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인정받기 위해 여러해 동안 노력했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2013년 전주시청에서 아버지의 묘적대장 기록을 찾았고, 이를 단서로 전사자 화장보고서도 확인했으나 국방부는 이씨와 아버지 사이에 친자를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씨는 얼마 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될 정도로 생활이 어려워졌고, 어머니마저 고령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병원비까지 마련해야 했다. 국가로부터의 지원이 더욱 절실해진 이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법률구조를 요청했다.

공단 측은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전주시 교동 국립묘지에 안장된 이씨 아버지의 분묘를 개장해 DNA 검사를 진행했다. 화장된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DNA가 검출되지 않지만, 전쟁통에 화장된 경우에는 고온에 노출되지 않은 유골이 있을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고려한 조치였다. 그러나 화장된 유골에서 DNA는 검출되지 않았다.

공단 측은 다른 증거를 제출키로 했다. ▲육군본부가 부녀관계를 인정해 이씨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한 사실 ▲어머니와 이씨 사이에 친생관계가 있다는 확정 판결 ▲어머니가 아버지의 전사 후 미혼으로 살아온 사실 등을 재판부에 적극 소명했다. 

이유진 판사는 "이씨와 아버지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함이 명백하다"며 이씨 어머니의 청구를 모두 인용했다.  

소송을 대리한 법률구조공단의 박왕규 변호사는 "한국전쟁 당시 불완전한 행정시스템으로 인해 국가를 위해 희생된 전사자의 가족들이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다"며 "친생관계를 증명하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는 만큼 언제든 공단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고 말했다.

리걸타임즈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