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회사 제공 숙소 거절하고 대전~서울 자가용 퇴근 중 사고로 사망했어도 산재"
[노동] "회사 제공 숙소 거절하고 대전~서울 자가용 퇴근 중 사고로 사망했어도 산재"
  • 기사출고 2020.06.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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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대중교통 이용 어렵고, 유류비 등 회사에서 지원"

회사가 사무소 인근에 제공한 임시 숙소를 거절하고 대전에서 서울로 자가용으로 퇴근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가 인정됐다. 법원은 업무의 특성상 대중교통 이용이 어렵고, 회사가 유류비와 고속도로 통행료를 지원한 점 등에 비추어 근로자의 출퇴근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 · 관리하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2008년 4월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IT컨설팅 업체인 A사에 입사하여 전산 프로그램 개발 업무를 수행하던 이 모씨는 2014년 10월 21일 오후 8시쯤 A사가 대전 대덕구에 임시로 마련한 사무소에서 업무를 마치고, 같은날 오후 8시 30분쯤 이 사무소에서 함께 일하던 협력업체 직원 2명과 인근의 삼겹살 식당에서 술을 곁들인 식사를 한 후 수원에 살던 이 2명을 자신이 데려다 주겠다고 하여 이 2명을 자신의 차에 태워 자택이 있는 서울 방향으로 출발했다. 이씨는 그러나 오후 11시 55분쯤 청주시 서원구에 있는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284.4km 지점에서 빗길에 미끄러져 회전하며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고, 이후 후속 차량들과 추가적으로 충돌하는 과정에서 중앙분리대를 넘어 반대편 차도에 전도된 후 지나가던 차량이 밟고 지나가 사망했다. 이에 이씨의 부인이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본인 소유의 차량을 이용하여 퇴근을 하던 중 발생한 교통사고 및 불상의 이유로 사망에 이른 것으로 확인되어 업무와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되자 소송(2019구합69377)을 냈다.

A사는 이에 앞서 대전 대덕구에 있는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도급받은 정보화전략계획(ISP) 수립 용역계약의 이행을 위하여 2014년 8월경 한국수자원공사 인근에 사무소를 임대하여 이씨를 포함한 소속직원 4명이 근무하도록 하였다. A사는 이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4명의 직원 중 이씨를 제외한 나머지 3명에게는 인근의 원룸을 임차하여 제공하였는데, 이씨는 가족들과 생활하기 위해 이 원룸에 거주하지 않고 서울 노원구에 있는 자택까지 본인 소유의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였으며, A사는 이씨에게 유류비 및 고속도로 통행료 상당을 지급해주었다. 이씨는 이 용역의 프로젝트 총괄책임자로서 회사에서의 직함은 수석이었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유환우 부장판사)는 4월 17일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에서는 먼저 이 사고에 출퇴근 사고를 산재로 규정하고 있는 개정 산재보험법 조항의 적용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구 산재보험법 37조 1항 1호 다목은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만 업무상 재해로 규정했으나, 헌재가 2016년 9월 29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2017년 10월 37조 1항 1호 다목을 삭제하고 같은항 3호를 신설하여 개정 전 조항에서 정한 사고(가목) 및 '그 밖에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나목)를 업무상 재해로 본다고 정했다. 새 법은 부칙에서 개정 후 조항을 2018년 1월 1일 시행 이후 최초로 발생하는 재해부터 적용한다고 정하였으나, 헌재가 2019년 9월 26일 이 부칙에 대해 "선행 헌법불합치결정이 내려진 2016. 9. 29. 이후 통상적인 경로로 출퇴근하는 근로자에 대하여 개정 후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고, 개정 후 조항의 소급적용을 위한 경과규정을 두지 아니함으로써 그 시행일인 2018. 1. 1. 이전에 통상적인 경로로 출퇴근하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아니한 것은 그 차별을 정당화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며 또 다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 사건 소는 2019. 6. 19. 제기되었으므로 각 헌법불합치결정을 하게 된 당해 사건이라거나 각 헌법불합치결정 당시 해당 조항의 위헌 여부가 쟁점이 되어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도 아니고, 헌법재판소가 개정 후 조항이 적용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권고한 '2016. 6. 29. 이후에 발생한 사고'에 해당하지도 않는다"며 "개정 후 조항은 이 사건에 적용될 수 없고, 사고 당시 적용되던 개정 전 조항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구법에 따른 업무상 재해 해당 여부는 어떨까.

재판부는 "사고 당시 이씨의 근무장소였던 사무소는 통상적 · 상시적 근무장소가 아니라 (A사가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도급받은) 용역을 위한 임시 근무장소이므로, 이 사무소에의 출퇴근은 통상 근무지에의 출퇴근과 다른 특수성이 인정되고, 실제로 A사는 수도권에 거주하던 근로자들의 출퇴근 편의를 위해 이 사무소에 근무하던 근로자 3인에게 그 인근에 1인당 하나의 원룸을 숙소로 제공하였다"고 지적하고, "이씨 역시 위 숙소를 제의 받은 것으로 보이나 이씨가 이를 거절하여 A사가 이씨에게 출퇴근을 위한 유류비 및 고속버스 통행료를 지급해주었고, A사의 대표이사 유 모씨는 A씨가 처와 2014년 태어난 자녀의 양육을 위하여 자가에서 출퇴근할 필요가 있었던 사정을 알고 있었던 점, 유씨는 이씨의 요구로 유류비와 고속도로 통행료를 지원해주었는데, 이씨가 기차 · 버스 등을 이용하지 않고 본인 소유의 차량을 출퇴근에 이용한다는 사정을 알고 '유류비'와 '고속도로 통행료'를 지원한 점, '유류비'와 '고속도로 통행료'는 기차 · 버스 등 대중교통의 이용료가 아님이 명백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위 유류비 및 고속버스 통행료의 지급은 통근버스 등 회사 소유의 교통수단의 제공에 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씨의 자택에서 이 사무소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가장 빠른 경로는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KTX를 이용하는 것인데 이 경우 자택에서 서울역까지 65분, 서울역에서 대전역까지 60분, 대전역에서 이 사무소까지 43분 총 2시간 51분이 편도로 소요되는 것으로 예상되고, IT업무의 특성상 이씨는 밤늦게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씨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사실상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씨는 자가용을 이용하여 이 사무소에 출근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씨의 자택에서 이 사무소까지의 이동 방법이나 그 경로의 선택은 근로자인 이씨에게 맡겨져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사고당일 협력업체 직원과의 업무협의가 20:00까지 이어져 저녁식사가 불가피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 이씨가 협력업체 직원들과 식사를 한 식당의 위치가 사무소 인근이었던 점, 이씨가 식사비용을 법인 카드로 결제하였던 점, A사의 대표이사 역시 위 식사가 업무 협의를 위한 자리였음을 확인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이씨는 이 사건 용역의 총괄책임자로서 협력업체 직원과의 협력관계 유지 강화가 · 필요하였고, 위 저녁식사는 협력업체 직원과의 협력관계 유지 · 강화를 위한 방편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이씨의 위 식사가 퇴근의 경로를 벗어났다거나 중단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 사건에서 이씨의 이 사무소에의 출퇴근 과정은 사업주의 지배 · 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이씨의 사고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한편 피고는 사고가 이씨의 음주운전이라는 범죄행위로 발생한 것이라고 다투었다. 재판부는 그러나 "사고가 이씨의 차가 밤에 빗길에 미끄러져 발생한 것이어서 음주로 인한 사고라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사고의 과정 및 이씨가 사망하게 된 경과를 살펴보면 위와 같이 빗길에 미끄러져 발생한 1차 충돌에 의하였을 때 이씨나 동승자들이 다치지 않았고 오히려 이씨가 위 동승자들이 차에 내려 1차 충돌을 수습하는 동안 발생한 후속 충돌에 의해 이씨가 사망에 이르게 되었을 개연성도 상당하므로, 이 사고로 인한 이씨의 사망과 음주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