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사업비 부풀려 정부출연금 빼돌린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연구원들, 배상하라"
[손배] "사업비 부풀려 정부출연금 빼돌린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연구원들, 배상하라"
  • 기사출고 2020.05.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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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근로계약상 요구되는 충실의무 등 위반"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사업비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정부출연금을 빼돌린 연구원들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이유로 1심에서 패소하자, 항소심에서 근로계약상 요구되는 충실의무 등을 위반했다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로 변경해 승소했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되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행사해야 한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의 책임연구원인 A씨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기획하여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정부출연금을 지원받아 실시하는 사업 과제의 주관기관으로 선정된 C사의 사업비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사업비를 과다 계상해주고 2012년 10월경 C사의 하청회사들로부터 660,220,000원을, 2013년 1∼7월 C사의 또 다른 하청회사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235,400,000원을 받는 등 895,620,000원을 받았다. 수석연구원인 B씨도 A씨로부터 '사업계획서상 사업비가 그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업체로부터 들어오는 돈을 나누어 주겠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이에 동의하고 56,020,000원을 받았다. A와 B씨는 이 범죄사실로 각각 징역 7년과 벌금 2억 5000만원, 징역 4년과 벌금 6000만원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에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A, B씨를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으나, 1심 재판부가 "원고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은 늦어도 관련 형사사건의 1심 판결이 선고된 2014. 12. 18.이라고 봄이 타당한데, 원고의 이 사건 소는 역수상 위 일시로부터 단기소멸시효기간 3년이 경과한 2018. 8. 14.에야 제기되었음이 기록상 명백하므로, 위 채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청구를 기각하자 항소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은 항소심에서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것으로 교환적으로 청구를 변경했다.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다.

서울고법 민사19부(재판장 견종철 부장판사)는 최근 1심을 취소하고, "A씨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 895,620,000원을, B씨는 A씨와 공동하여 이 돈 중 56,020,000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2019나2022621). 법무법인 한별이 1심부터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을 대리했으며, B씨가 혼자 상고했으나 이후 상고를 취하해 그대로 확정됐다.

재판부는 "피고 A, B는 원고와의 근로계약에 따라 공정한 직무수행과 부당이득 수수금지, 이권개입 금지의무와 원고에 대한 충실의무가 있는데, 피고 A는 원고에 대한 업무상 배임행위를 행하고, 피고 B는 피고 A의 위 배임행위를 묵인하고 그 이익을 분배받음으로써 위 의무들이 포함된 원고와의 근로계약을 위반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피고들은 근로계약을 위반함으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의 인사규정 제14조에 의하면, 원고의 직원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원고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에는 배상책임을 지고(제6호), 청렴을 존중하고 탐오의 행위가 있어서는 아니 되며 그 직무에 관련되어서는 직접, 간접을 막론하고 증여 또는 향연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제7호). 또 진흥원의 윤리강령은, 원고의 임직원은 직무와 관련하여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범위를 넘어 공정성을 저해할 수 있는 금품 · 향응 등을 직무관련자에게 제공하거나 직무관련자로부터 제공받아서는 아니 된다(제8조)고 규정하고 있고, 임직원행동강령 제12조는, 원고의 임직원은 자신의 직위를 직접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거나 타인이 부당한 이익을 얻도록 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인사규정 등에 명시된 이러한 내용의 청렴의무 등을 위반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2009. 9. 30.부터 2013. 8. 24.까지 매년 원고에게 '원고의 윤리규범을 엄격히 준수하며, 투명하고 공정한 업무를 수행하여 직무와 관련한 공공 이익에 반하는어떠한 사적 영리추구나 위법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청렴서약서를 작성하여 제출한 사실에도 주목했다.

이에 대해 피고들은 "원고가 사용자로서 피용자에 대한 사무 감독의 의무를 해태한 점 등 역시 원고의 손해 발생에 기여하였으므로 신의칙상 책임이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설령 원고에게 피고들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들은 청렴서약서까지 작성하고도 원고의 부주의를 이용하여 고의적으로 배임행위를 하고 그에 따른 이익을 취득하였는데, 이를 이유로 피고들의 책임을 제한한다면, 피고들이 결국 부정한 이익을 최종적으로 보유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는 공평의 이념이나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부정하게 교부받은 돈 전부를 피해액으로 인정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