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이달의 변호사] "징수기간 도과 기다리는 도덕적 해이 방지 보람"
[리걸타임즈 이달의 변호사] "징수기간 도과 기다리는 도덕적 해이 방지 보람"
  • 기사출고 2020.05.11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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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억 국부 손실 막아낸 최영헌 변호사

"하마터면 300억원이 훨씬 넘는 조세채권이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저로서도 국부의 손실을 막았다는 큰 보람을 느낀 사건입니다."

법무법인 동인의 최영헌 변호사가 최근 대법원에서 상고기각으로 확정된, "조세채권도 소멸시효 중단을 위해 채권존재확인소송을 낼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받아냈다. 선례가 없는 첫 대법원 판결인데, 판례를 세우기까지 대법원에서만 3년, 1심 소장 접수부터 계산하면 약 5년이 걸렸다. 최 변호사는 1심부터 상고심까지 3번의 심급 전 과정에 걸쳐 원고 측 변호사로 활약했다.

1심부터 원고 측 변호사로 활약

법리는 간명하다. 국가가 보유한 조세채권에 대해서도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민법상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재판상 청구를 소멸시효 중단사유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 자력집행권이 인정되는 조세채권의 특성을 감안, 국세기본법엔 납세고지, 독촉 또는 납부최고, 교부청구, 압류의 4가지만 소멸시효 중단사유로 규정하고 있으나, 이번 판결을 통해 앞으로는 재판상 청구를 통해서도 5억원 이상의 국세는 10년, 그 외의 국세는 5년인 국세징수권의 소멸시효를 중단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최영헌 변호사
◇최영헌 변호사

최 변호사는 "국내에 재산이 없는 외국기업, 무자력, 소재 불명자 등에 대하여 자력집행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 시효로 조세채권이 소멸하는 것을 방지하여 국가의 재정을 충실하게 할 수 있고, 조세채무자가 징수기간 도과기간만을 피하고자 하는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이번 판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물론 이 소송의 피고인 일본 법인은 한국에 재산이 없어 세무당국에서 압류 등 집행절차에 나설 수 없었다.

'331억원+' 새로 10년의 시효 진행

대법원에서 소송을 받아들여 조세채권의 존재를 확인함에 따라 피고 법인에 대한 법인세 등 331억원과 가산금 채권은 판결 확정일부터 새로 10년의 소멸시효가 진행되게 된다. 국세청으로선 10년간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 셈이며, 이번 대법원 판결의 법리에 따라 10년의 새로운 징수기간 도과가 임박하게 되면 또 다시 조세채권존재확인소송을 내 시효의 진행을 다시 중단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효 중단을 위해 무조건 조세채권존재확인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취지는 아니다. 납세의무자가 무자력이거나 소재불명이어서 체납처분 등의 자력집행권을 행사할 수 없는 등 국세기본법 28조 1항이 규정한 사유들에 의해서는 조세채권의 소멸시효 중단이 불가능하고, 조세채권자가 조세채권의 징수를 위하여 가능한 모든 조치를 충실히 취하여 왔음에도 조세채권이 실현되지 않은 채 소멸시효기간이 임박하는 등 소(訴)의 이익을 인정받을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이 사안에서도 관할 세무서장이 일본에 주사무소가 있는 피고에게 법인세와 가산금에 대한 독촉장을 발송하여 그 독촉장이 피고에게 도달하였고, 중부지방국세청 소속 국세조사관이 소송을 내기 약 7개월 전인 2014년 12월 일본에 있는 피고의 사업장을 직접 방문하여 피고에게 납부최고기한을 2014년 12월 31일로 지정한 납부최고서를 교부하고자 하였으나 피고는 그 수령을 거부하였다. 중부지방국세청은 이에 따라 2014년 12월 24일 국제등기우편으로 납부최고서를 피고에게 발송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 측으로부터 조세 납부 또는 아무런 답변이 없자 시효로 법인세 등이 소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세채권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해달라는 채권존재확인소송을 낸 것이다.

최 변호사는 "여기에다 이 사건의 피고와 같은 외국기업이나 외국인에 대하여는 소 제기에 앞서 국제 조세행정공조 절차 등도 먼저 진행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추가했다.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30조는 1항에서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국내에서 납부할 조세를 징수하기 곤란하여 체약상대국에서 징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국세청장에게 체약상대국에 대하여 조세 징수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2항은 "국세청장은 제1항의 요청을 받은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체약상대국의 권한 있는 당국에 그 조세를 징수해 주도록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비슷한 내용의 다자간협약인 조세행정공조협약도 2011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한마디로 세금을 걷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도 납세채무자가 응하지 않고 피하기만 한다면 이러한 경우에는 시효의 중단을 위한 조세채권존재확인소송의 소의 이익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대법원 판결의 내용이다.

일본국 통한 징수절차 진행 안 돼

이 사안에서 중부지방국세청장은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30조 및 다자간 조세행정공조협약 11조에 따라 국세청장을 통하여 일본국에 해당 조세채권에 대한 징수위탁을 요청하였으나, 조세행정공조협약 발효 전의 과세기간에 부과된 조세라는 이유로 이에 관하여 일본국과 상호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일본국을 통한 징수절차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최영헌 변호사
◇최영헌 변호사

"외국에 상주하는 외국인, 외국법인이라고 해서 국경을 넘어 날아온 해당국 세무공무원이 제시하는 납부최고서조차 수령을 거부하며 조세채권의 징수기간이 도과하기만을 기다리는 납세채무자라면 조세채권의 존재를 확인해 최소한 채권의 소멸만은 막을 수 있어야겠지요. 이번 대법원 판결은 바로 이러한 법리를 선언한 의미 있는 판결입니다."

최 변호사는 또 "이러한 체납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조세채권확인소송을 내 소멸시효의 진행을 막아야 할 것"이라며 "이번 판결에 따라 과세당국의 징수행정에도 변화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최영헌 변호사는 서울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의 길을 걸었다. 서울지방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구지법, 부천지원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으며, 대법원 재판연구관 시절 특히 조세사건을 많이 담당했다고 한다.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1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세법률고문에 이어 국세청 조세법률고문을 맡고 있다. 납세자 대리와 함께 과세당국을 대리해 조세사건을 많이 취급하며, 이 외에도 재개발 · 재건축, 증권 · 자본시장, 일반 민 · 형사소송 등 다양한 사건을 처리한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