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임상시험 계획에 의한 의약발명의 신규성 · 진보성 부정 여부
[리걸타임즈 칼럼] 임상시험 계획에 의한 의약발명의 신규성 · 진보성 부정 여부
  • 기사출고 2020.05.0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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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법원이 임상시험 계획(protocol)의 공개만으로는 그 임상시험에 의한 발명의 신규성 · 진보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2020. 2. 7. 선고 2019허4147 판결 확정). 즉, 임상시험 계획은 말 그대로 '향후 임상시험이 진행될 예정'임을 개시하고 있는 것일 뿐 그 임상시험의 대상인 의약용도 자체를 개시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의약발명의 경우 그 약리효과가 실험 등에 의하여 확인되지 아니한 이상 아직 발명으로서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특정 화합물과 관련하여 상정 가능한 의약용도가 단순히 '문자'로 나열되어 있을 뿐인 문헌을 인용하여 그 이후에 약리효과를 확인해 낸 의약용도발명의 신규성 · 진보성을 부정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특허법원은 본 사안에서 위와 같은 판단 사례가 잘못된 것임을 명확히 선언한 것이다.

임상시험 계획 웹페이지에 게재

의약품의 생산 · 판매를 위해서는 그 전에 전임상 및 임상1, 2, 3상 등의 임상시험을 거쳐야만 한다. 그리고 한국,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임상시험 시작 후 바로 승인 받은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 기관의 웹페이지에 게재하도록 하고 있다.

◇유영선(좌) 변호사, 임진희 변리사
◇유영선(좌) 변호사, 임진희 변리사

그런데 이러한 임상시험 계획만으로 의약발명의 신규성 · 진보성을 부정하는 경우, 의약용도발명의 출원 명세서에 약리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약리데이터 등의 기재가 없으면 특허를 부정하는 실무와 결합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의약발명에 대한 특허를 받는 것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인간에 대한 임상시험 없이는 그 약리 효과를 확인하는 것이 매우 곤란한 용법용량발명이나 본 사건에서 문제된 병용요법발명과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에서 특허를 받는 길이 사실상 봉쇄되는 비상식적인 결과에 이른다.

본 사안에서는, 퍼제타 등 4가지 항암제의 병용에 의하여 네오 아주반트 요법으로 초기 유방암을 치료하는 것에 관한 발명(이하, 출원발명)이 문제 되었다. 특허청은 이와 관련하여 미국 임상 승인 기관의 웹사이트인 clinicaltrials.gov에 게재된 임상2상 시험계획서(이하 선행발명)에 의해 출원발명의 신규성 · 진보성이 부정된다는 이유로 거절결정을 하였다. 특허심판원 역시 "출원발명은 선행발명에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고, 약리효과는 그 내재된 속성이므로, 그 신규성이 부정되고, 선행발명이 임상2상 시험계획서인 이상 약리효과를 확인한 전임상 또는 임상1상이 있었을 것이므로, 진보성도 부정된다"고 판단하였다.

특허법원, 특허심판원 심결 취소

특허법원은 그러나 임상시험 '계획'에 불과한 선행발명으로는 출원발명의 신규성 · 진보성을 부정할 수 없다면서 특허심판원의 심결을 취소하였다.

먼저 선행발명이 출원발명과의 관계에서 선행발명으로서의 적격이 있는지 다툼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특허법원은 선행발명으로서의 적격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통상의 기술자가 기술상식이나 경험칙에 의하여 그 기술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선행발명이 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를 전제로 하여, "임상시험 과정 중에 약물의 유효성과 안전성은 실질적으로 임상2상 시험을 통해 확인되는 것이고, 항암제의 경우 기존에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된 개별 항암제를 병용요법으로 품목허가를 받기 위한 경우에는 별도의 전 임상시험이나 임상1상 시험 없이 임상2상 시험만으로 충분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통상의 기술자는 임상2상 시험에 관한 임상시험계획서로부터, 개별적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되어 있는 4종의 항암제를 조합하여 투여하는 경우의 효과 확인은 임상2상 시험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고, 그 임상시험이 향후 진행될 예정이라는 점을 인식할 것이며, 임상시험계획서는 이러한 기술범위 내에서만 선행발명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판시하였다. 즉, 선행발명은 "임상시험이 향후 진행될 예정"이라는 것으로 그 기술적 의미가 한정된다고 본 것이다. 또한 병용요법 발명에 해당하는 출원발명의 효과 확인과 관련하여 전임상 또는 임상1상 시험은 없었고 임상2상 시험이 그 최초의 시험이었는데, 특허법원은 이러한 사실관계를 오인한 특허심판원의 판단을 바로 잡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행발명에는 출원발명에 관한 약리효과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개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출원발명의 신규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즉, 임상시험 계(protocol)이 개시되어 있을 뿐인 선행발명에는 출원발명의 의약용도가 개시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진보성 부정되지 않아

특허법원은 더 나아가 출원발명의 진보성 여부에 관해서도 판단하였는데, (i)선행발명은 4종의 항암제 조합에 관한 아무런 약리효과를 기재하고 있지 않고, (ii)약물은 인체 내에서 화학적 변화를 동반하기도 하는 복잡한 생리반응을 거치게 되는데, 서로 다른 두 가지 약물을 동시에 투여할 경우에는 두 약물 간의 상호작용이 수반되어 두 약물을 단독으로 투여하였을 때 나타나는 작용보다 강한 효과가 나타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약하게 나타나기도 하므로, 통상의 기술자로서는 출원발명의 4종의 항암제를 조합하여 투여하는 경우 단독으로 투여할 때보다 상승된 약리효과를 나타낼 것이라는 점을 쉽게 예측할 수 없으며, (iii)출원발명은 다른 항암제 조합의 병용요법에 비해 통상의 기술자가 예측할 수 없는 현저한 약리효과를 나타낸다는 이유 등을 들어, 그 진보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종래 우리나라 특허실무를 보면, 미국, 유럽 등과는 달리 의약용도발명의 출원 명세서에 약리효과의 기재를 요구하는 등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여 오고 있다. 이로 인하여 의약용도 발명에 관한 특허출원인들은 출원일을 늦추더라도 명세서 기재요건을 맞추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선행발명에 약리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아무런 내용 없이 특정 의약용도가 단순한 계획, 희망, 가능성 등으로 기재되어 있을 뿐인데도, 이에 의하여 의약용도발명의 신규성 · 진보성을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러한 실무 경향은 위와 같은 엄격한 명세서 기재요건과는 상호 모순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특허법원은 본 사건에서 선행발명에 약리효과를 확인할 만한 기재가 없다면 그 의약용도가 개시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최초로 판결함으로써 위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였다.

상고 안 돼 그대로 확정

이 특허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특허청도 상고하지 않고 그대로 확정되어, 향후 우리나라에서 의약용도발명의 신규성 · 진보성 판단 실무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예를 들어, 효과의 뒷받침 없이 의약용도만을 단순히 나열한 선행발명에 의한 발명(선택발명, 의약용도발명, 용법용량발명, 병용요법발명 등)의 신규성 · 진보성 판단이 문제되는 경우에 본 판결이 그 판단의 기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와 주요 외국의 특허실무에 대한 비교가 필요한 점, 전 세계 여러 나라에 특허출원되어 있는 점, 향후 우리나라 특허실무에 큰 영향을 줄 중요한 사건인 점 등을 고려하여 특허법원 국제재판부에서 심리가 진행된 사건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유영선 변호사 · 임진희 변리사(김앤장 법률사무소, youngsun.you@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