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파워인터뷰] 제11대 여성변호사회장 윤석희 변호사
[리걸타임즈 파워인터뷰] 제11대 여성변호사회장 윤석희 변호사
  • 기사출고 2020.04.0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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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이전에 유리벽부터 없애야"

지난 3월 5일 하버드 로스쿨 교수 출신의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미 연방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선경선을 포기하고 중도 하차했을 때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하원의장은 "이것은 유리천장(grass ceiling)이 아니다. 대리석천장(marble ceiling)이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장벽(유리천장)보다 더한,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도 없는 굳건한 장벽(대리석천장)에 워런이 막혔다는 의미로, 워런의 하차와 함께 전 세계에 또 다른 이목을 끌었다.

"이것은 대리석천장이다"

미국 대선에 관한 수사이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 성공과 관련해 단골로 등장하는 화두가 '유리천장'을 둘러싼 공방이다. 변호사 등 여성 법조인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한국 법조계의 현실은 어떨까. 3월 8일은 또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지난 1월 제11대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으로 취임한 윤석희 회장을 인터뷰했다. 윤 회장은 "여성 법조인들이 각각의 영역에 활발하게 진출해 높은 역량을 발휘하고 있지만 아직도 성비(性比)의 불균형이라든가 고위직으로 갈수록 숫자가 적어지는 등 아쉬운 대목이 많다"며 "임기 2년 동안 여성 변호사의 수평적 · 수직적 진출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역설했다.

◇제11대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으로 선출된 윤석희 변호사가 지난 1월 14일 열린 한국여성변호사회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제11대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으로 선출된 윤석희 변호사가 지난 1월 14일 열린 한국여성변호사회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발표한 2020학년도 전국 25개 로스쿨의 합격자 통계를 보면, 여성이 전체 합격인원 2130명의 46.38%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 법조인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내가 26년 전인 1994년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변호사로 등록했을 때 여성 변호사로서 내 등록순서가 50번이 채 안되었다. 그러나 올 1월 9일 현재 대한변협에 등록한 전체 변호사 2만 7721명 중 8148명이 여성으로 29.4%,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법정에서 변호사, 판사, 검사가 모두 여성인 경우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여성 법조인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

26년 전 등록순서 50번 안 돼

-여성 법조인의 증가가 법조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예컨대 수사와 재판에 실질적으로 영향이 있습니까.

"성별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성 법조인의 수가 증가하면서, 실제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인 여성의 입장에서 보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고, 실무에 반영되고 있다. 대법원의 성인지 감수성 판례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여성 법조인의 증가가 실질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 여성 법관과 검사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 견주어보면 로펌 등에서의 여성 변호사 채용은 선택이 아니라 이제는 필수라고 본다. 물론 변호사가 여성이냐 남성이냐가 수사와 재판에 직접 영향을 줄 일은 아니지만, 여성 법조인은 법원, 검찰, 재야를 불문하고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체 검사 중 여성 비율이 30.4%, 전체 판사 중 여성 비율은 29.7%다.

"법원과 헌법재판소, 검찰에서의 여성 비율이 약 30%라고 할 수 있는데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검찰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검사장은 지금까지 단 3명의 여성 검사장이 배출되는데 그쳤다. 검찰 중간 간부 중에 훌륭한 여성 검사들이 많은데, 앞으로 1호, 2호, 3호 여성 검사장이 아니라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여성 검사 중에서 더욱 활발하게 검사장 승진자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그렇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조 여성 비율 30% 고무적"

-현재 대법원엔 3명의 여성 대법관이, 헌법재판소엔 전체 재판관의 3분의 1인 3명의 여성 재판관이 재임하고 있다. 이 자체로만 놓고 보면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 인사엔 유리천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여성 대법관 숫자가 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 대법관의 수 등을 고려하면 성비에 있어서 좀 더 진전되어야 할 측면이 없지 않다. 법원 등의 고위직 승진에서 여성 비율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진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고, 법조계에 존재하는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특히 주목할 대목은 '유리천장'보다도 '유리벽(grass wall)'의 존재다. 일반 기업체를 예로 들면, 남자사원과 똑같이 입사해 주임이 되고 대리가 되고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대리에서 과장으로, 과장에서 차장으로 승진할 때는 여성이 많지 않다. 부장으로 넘어가면 숫자가 더 줄고 이사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이다.

중간관리자가 되는 것이 차단되는 건데, 육아라든가 여타의 이유로 중간관리자가 되지 못하는 것인데, 이게 문제다. 유리벽이 있는 거다. 어느 조직의 최고책임자나 간부 사원으로 활약하는 여성들은 아주 엄청난 분들이지만, 그 전 단계에서부터 많은 여성 후보들이 있어야 그런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도 넓어지는 것 아닌가. 중관관리자가 많지 않으니까 자꾸 사람이 없다고 하는 건데, 중관관리자가 없도록 그렇게 만들어놓은 사회여서 그런 거다. 중간 단계에 있는 여성들의 경력을 단절시키지 않고 계속 그분들이 경력을 이어가서 결국은 원하던 자리에서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야 진정한 유리벽, 유리천장이 없어진다고 본다. 예컨대 출산이나 육아휴직을 갔다고 해서 평가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하는 제도는 개선되고 없어져야 할 것이다."

유리벽의 존재가 더 문제

-여성 대법관, 여성 헌재 재판관 등이 임명될 때 여성이기 때문에 이득을 보는 것 아니냐는 일종의 역차별 논란도 없지 않았다.

"대법관, 헌재 재판관에 임명된 여성 법조인들은 능력과 인품 모두 훌륭하게 갖추신 분들이다. 그동안 이른바 '서오남' 즉, 서울대 출신의 오십대 남성 대법관이나 재판관이 많이 임명되었는데,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기에는 지나치게 좁은 구조일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서울대가 아니어도 되고, 남성이 아니어도, 50대가 아니어도 되는 그런 다양한 면을 보충하는 측면에서의 인선이 필요하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우리는 성비의 불균형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조금이라도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양성 평등 측면에서도 그렇고,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사건을 다루는 대법원이나 헌재의 사건 자체의 측면에서 볼 때도 역차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상화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로펌에도 여성 변호사들이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8대 로펌 여성 파트너 13% 불과

"지난해 신규 변호사 등록자 중 여성 변호사 비율이 41.1%라고 하는데, 로펌에서도 다수의 여성 변호사가 파트너와 어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충격적으로 생각하는 거는 20대 로펌의 매니징파트너가 전부 남성이라는 거다. 또 2019년 기준, 전국 8대 로펌의 여성 파트너 변호사 비율은 13%에 불과하다. 임원에 해당하는 파트너와 경영담당자로서의 여성 변호사 비율이 매우 적은 것이 현실인데, 좀 더 가시적으로 여성의 대표성을 제고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와 함께 로펌이나 중소 법률사무소 등에 따라서는 육아 및 출산에 따른 고용불안, 실질적인 취업제한 등의 문제가 여전히 어려운 과제여서 여성변호사회 차원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실 일하는 여성에게는 결혼, 출산, 육아에 따르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여성 변호사들도 예외가 아닐 것 같다.

"업무강도가 높고 팀 체제가 아닌 개인전담 업무가 많은 변호사의 특성상, 육아휴직 및 출산휴가 대체자를 구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재 대한변협 취업정보센터, 서울지방변호사회 구인게시판에 육아휴직대체자를 찾는 공고가 간간히 올라오기는 하나, 육아휴직대체인력의 구인 · 구직만을 전용으로 하는 게시판을 별도로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또 여성변호사에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준 법무법인 또는 법률사무소에 대하여 여성변호사회 차원에서, 또는 대한변협 및 서울변호사회와 협력하여 유무형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법을 구상 중이다.

결혼과 육아로 인한 취업제한으로 인하여 취업에서의 경쟁이 더 심화되고, 그러다보니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취업 대신 개업을 선택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 점에서 여성 변호사가 남성보다 불리한 게 사실이다."

-지난 1월 11대 회장으로 취임하며 '여성이 일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한다고 했는데, '여성이 일하기 좋은 사회'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과 승진제한이 없는 사회를 말한다. 그래서 일과 가정을 양립한 여성 대부분이 중간관리자로서(No glass wall), 의사결정권자로서(No glass ceiling) 어느 조직에서든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사회가 내가 생각하는 '여성이 일하기 좋은 사회'다."

-또 여성 변호사의 수평적 · 수직적 진출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는데, 수평적 진출 확대는 무엇이고, 수직적 확대는 무엇인가.

"수평적 확대는 직역 확대를 의미한다. 현재 여성 변호사들은 법원과 검찰, 로펌 등 전통적인 분야는 물론이고 기업체의 사내변호사, 국회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과 학교법인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또 공익변호사단체에서 공익활동에 전념하는 여성 변호사들도 많다. 여변(한국여성변호사회) 차원에서 여성 변호사의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을 적극 지원해 법률 전문성은 물론 여성이 가진 섬세함과 공감능력이 사회 곳곳에서 발휘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윤석희 제11대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윤석희 제11대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수직적 진출 확대는 로펌을 예로 들면 파트너 비율도 더 높아지고, 로펌 내에서 의사결정능력을 가진 여성 변호사가 더 늘어나는, 유리벽이 없는 유리천장이 없는 시스템이 구축되도록 노력하자는 취지다."

자산총액 2조 이상이면 여성이사 필수

윤석희 회장에 따르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 오는 8월 12일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기업은 여성 이사를 최소한 1명 이상 넣어야 한다.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의 이사로 구성하지 아니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대상기업이 200군데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이들 대상기업에 이메일을 보내 출중한 능력을 갖춘 여성 변호사들을 사외이사로 적극 선출해달라고 요청해 놓았다"고 소개했다. 또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에 '여성경제인법률지원단' 발족을 제안한 상태라며 여성 변호사의 역할 증대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라고 거듭 의욕을 나타냈다.

여성 변호사의 진출, 역할 증대를 강조하는 윤 회장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성비의 균형점은 어디일까. 인구의 절반인 50%를 생각하는 걸까. 윤 회장은 이에 대해 "꼭 산술적으로 50%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최소한 40%는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피력했다.

"어느 분야든 어느 한 성이 40%를 못 채우는 것도 문제가 있고, 그것을 과도하게 넘어서는 것도 문제가 있어요. 비슷해야죠. 가능하면 비슷하게 성별 다양성을 갖추고, 다양한 스펙트럼이 형성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조직, 분야가 건강한 생태계이겠죠."

리걸타임즈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