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증권의 공모발행과 인수인의 책임
[리걸타임즈 칼럼] 증권의 공모발행과 인수인의 책임
  • 기사출고 2020.04.01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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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의 공모발행에 관해서는 크게 두 가지 규제방식이 존재한다. 하나는 금융당국이 해당 증권이 투자 대상으로 적절한지에 관해 직접 판단하는 내용규제(merit regulation)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증권 관련 정보가 투자자에게 충분히 제공되는지에 대해서만 관여하는 공시규제(disclosure regulation)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자본시장법과 미국의 증권법(Securities Act of 1933)은 공시규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인수인에 의한 간접공모 방식 채택

한편 증권의 공모발행은 증권이 최초로 시장에 등장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 증권의 가치평가가 어렵고,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투자자들이 공모발행되는 증권에 대한 신뢰와 투자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통상 그 절차는 인수인을 통한 간접공모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인수인을 통한 간접공모 방식은 인수인이 가지는 공신력에 의해 공모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인수인이 공모 차질로 인한 위험을 부담하게 되는 보험자의 역할도 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시장의 '게이트키퍼(Gatekeeper)' 역할을 하는 인수인의 평판을 신뢰하여 발행회사 이외에 인수인으로부터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취득 · 확인하게 된다.

◇배기완 변호사
◇배기완 변호사

이와 같이 증권의 공모발행에서 인수인의 게이트키퍼로서의 역할이 커지면서 인수인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는 규제가 발전하게 되었다. 유수의 투자은행에 전문성 및 명성자본이 존재하는 미국에서는 게이트키퍼 이론 또는 명성중개인 이론을 통해 공시규제가 강화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시장법에 인수인의 책임을 강화하는 명문 조항을 두는 방식으로 인수인에 대한 규제를 제도화했다. 구체적으로 자본시장법은 인수인이 증권신고서 등의 직접적인 작성 주체는 아니지만(작성주체는 발행회사) 증권신고서나 투자설명서 중 중요사항에 관해 거짓 기재 또는 기재누락을 방지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자본시장법 제71조 제7호,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68조 제5항 제4호), 거짓 기재 또는 기재 누락으로 증권의 취득자가 손해를 입은 때에는 그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뿐만 아니라(자본시장법 제125조 제1항 제5호), 그 위반행위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는 때에는 과징금도 추가로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자본시장법 제429조 제1항 제1호, 제430조 제1항).

증권신고서 부실기재에 과징금 가능

이러한 인수인의 게이트키퍼로서의 책임에 관해 최근 의미 있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었다. 그동안 인수인의 증권 공모발행 과정에서의 책임과 관련한 우리나라의 판례 법리는 대부분 증권신고서의 부실기재와 관련한 민사상 책임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증권신고서의 부실기재에 관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지를 판시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것이다.

해당 판결에서 대법원은 "자본시장법상 인수인의 지위, 발행시장에서의 공시규제의 내용에 더하여 공시위반에 대한 과징금 조항의 문언 및 취지 등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구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35조 제2항에서 정한 '증권의 발행인으로부터 직접 증권의 인수를 의뢰받아 인수조건 등을 결정하는 인수인'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말미암아 발행인이 작성 제출한 증권신고서나 투자설명서 중 중요사항에 관하여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를 하거나 중요사항을 기재 또는 표시하지 아니한 행위를 방지하지 못한 때에는 과징금 부과대상이 된다"라고 판시하면서(대법원 2020. 2. 27. 선고 2016두30750 판결), 2011년에 있었던 중국고섬 사태(싱가포르 기업인 중국고섬의 증권예탁증권이 상장된 지 2개월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의 분식회계 사실이 발각되어 상장폐지까지 이르게 된 사건)와 관련한 증권신고서의 거짓 기재 등에 관한 금융위원회의 인수인에 대한 과징금 부과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본 대법원 판결은 여러 면에서 증권의 공모발행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인수인의 증권신고서 작성 과정에서 법률가들의 역할이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증권 공모발행 시장에서는 미국이나 홍콩 등 선진 증권시장과는 달리 투자자들에게 제공되는 증권신고서를 증권사의 IPO팀에서 직접 작성하고, 발행회사에 대한 실사도 대부분 증권사 IPO팀에서 진행한다. 민사상 책임만이 문제되었던 기존 대법원 판결과는 달리 증권신고서의 부실 기재에 관해 인수인에게 과징금 부과까지 가능하다는 판결이 선고되면서 인수인은 앞으로 증권신고서 작성 과정에서 보다 신중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예상되고, 그 과정에서 법률가들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이 생길 것이다.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사항을 어느 정도 범위에서 기재해야 할 것인지, 기재되어 있는 중요사항이 투자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있는지 등에 관해 판례 법리에 정통한 법률가들의 검증을 거치는 작업이 증권의 공모발행과정에서 중요 절차로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금융정책당국에서도 인수인의 책임에 관해 명확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본 대법원 판결의 하급심 판결이 선고되었을 때, 학계 일부에서는 행정부와 사법부의 해당 자본시장법 조항 해석이 다르다는 점에 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즉, 하급심은 과징금 부과대상이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를 하는 행위'와 '기재 또는 표시를 하지 않는 행위'에 국한되며 '그러한 행위를 방지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행위'는 그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었는데, 이로 인해 규제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본 대법원 판결로 인해 증권신고서 부실기재 관련 과징금 조항 자체의 해석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설정되었고, 금융규제당국도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보다 세밀한 규제 정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금융당국 세밀한 규제 정책 전망

더 나아가 증권의 공모발행에 참가한 일반 투자자들의 권리구제가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거래소 시장이 2012년에 실시한 IPO 스폰서(우리나라 자본시장법 체계상 대표 주관사의 역할을 하는 회사들)의 게이트키퍼 기능 강화 정책으로 시장의 신뢰성과 국제적 위상을 한층 높일 수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리나라 증권 공모발행 시장도 본 대법원 판결 및 이에 발맞춘 인수인의 게이트키퍼로서의 책임 강화 정책과 그에 조응하는 자율성 제고 정책의 시행으로 국제적 자본시장으로서의 위상을 한층 제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배기완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gwbae@jipy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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