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로봇세 논의
[리걸타임즈 칼럼] 로봇세 논의
  • 기사출고 2020.04.06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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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AI)이 이미 인간의 능력을 넘어섰다는 사실에 놀랐고,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 엉뚱한 생각도 하였는데, 승자에게 돌아갈 상금에 대해서 누가 세금을 낼지 궁금했다. 사람이 이겼다면 당연히 개인이 소득세를 낼 것이다(우리 소득세법은 상금을 기타소득의 한 유형으로 열거하고 있다). 문제는 AI가 이긴 경우이다. 현행 세법상 AI나 로봇이 납세의무를 부담할 근거는 없다. 그저 인간이 만든 기계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에 사람과 로봇이 경쟁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사람의 소득에는 세금을 물리고, 로봇의 소득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렇듯 로봇이 사람의 역할을 하여 가치를 창출한다면 사람처럼 세금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로봇세" 논의가 시작되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주제이다.

◇이종혁 변호사
◇이종혁 변호사

로봇과 인격

본격적인 로봇세 논의에 앞서 과연 로봇에게 세금의 부담을 지울 수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오래 전부터 인간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법인(法人)이라는 가상의 "사람"을 만들어 냈다. 실제 사람은 아니지만 관념적으로 사람이라고 보고, 모든 경제활동에서 사람과 같이 취급한다. 법인은 자기의 이름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재산을 소유하며, 세금도 납부한다. 대표적으로 법인세는 법인이 납부하는 세금이다.

이제 또 다른 상상력을 발휘해서 인간과 같은 능력을 가진 로봇을 가상의 "사람"으로 취급할 수는 없을까? 현실성 없는 얘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먼 훗날의 얘기만은 아니다. 이미 유럽 의회는 2017년에 AI 로봇에 '전자인(Electronic Persons)'이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아직까지 논란이 많아서, 실제 로봇에 대해서 세금을 물리는 제도가 시행된 사례는 없다. 하지만 로봇의 사용이 더욱 본격화 된다면, 변화할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로봇세란?

로봇세 논의가 나오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말하는 생산의 3요소는 토지, 자본, 노동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업체가 있는데, 甲은 토지를 대고, 乙은 자금을 대고, 丙은 노동력을 제공한다고 해보자. A가 벌어들인 수입은 甲에게는 지대(地代)로, 乙에게는 이자나 배당으로, 丙에게는 임금의 형태로 분배된다. 이에 따라 甲은 임대소득, 乙은 이자 · 배당소득, 丙은 근로소득에 대한 소득세를 각기 부담한다. 그리고 이렇게 개인들이 벌어들인 소득은 다시 소비되어 또 다른 사업체의 수입이 된다. 이렇게 경제는 순환하고, 국가는 그 과정에서 발생한 소득이나 소비에 대해서 세금을 물린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경제체제의 얼개이다.

그런데 A가 丙을 고용하는 대신에 로봇을 들여왔다고 해보자. 로봇은 구입할 때 비용이 들 뿐 이후로 임금을 줄 필요가 없다. 노동력도 丙보다 월등히 높을 것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A 입장에서 사람을 로봇으로 교체하는 것은 효율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이는 곧 丙의 실직을 의미한다. 즉, 생산의 3요소에서 노동이 사라지고 자본만 남는 것인데, 이는 우리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혁명적인 변화이다. 위의 사례에서는 극히 단순화하였지만, 경제주체의 숫자로 따지면 우리 대부분은 丙(근로소득자)에 속한다. 기업이 효율만 추구하다 보면, 로봇에 일자리를 내어 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해지고 자본을 소유한 일부 부자들에게 막대한 이익이 돌아갈 것이다. 국가 입장에서는 세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근로소득세를 잃게 된다. 나아가 개인들이 가난해지면 소비가 줄고, 경제의 순환은 막히게 된다. 결과적으로 로봇의 상용화는 역설적으로 '부의 양극화'와 '세수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막거나 지연하는 데 로봇세는 효과적인 정책수단일 수 있다. 로봇이 생산하는 경제적 가치에 세금을 부과한다면 줄어든 근로소득세를 메울 수 있고, 이렇게 거둔 세금을 실직한 개인들을 위해 사용한다면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로봇세 찬반론

이러한 논의에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산업용 로봇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2018년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2018 국정감사 정책자료'를 통해 로봇세 도입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예상대로 이에 대한 찬반양론이 뜨겁다. 그 요지만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찬성론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이상 동일하게 과세할 필요가 있고, 그래야 대량 실직, 부의 양극화, 세수 부족 등의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론은 인간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만으로 인류의 혁신과 기술 진보를 억지로 막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문제로 보인다. 다만, 로봇의 상용화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그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로봇세를 고려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특히 최근에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보편적 기본소득의 측면에서도, 로봇세와 같은 새로운 세원 발굴은 고려해볼 만하다.

로봇세를 어떻게 부과할 것인가?

로봇세는 새로운 세금이므로 입법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법률에 과세대상, 과세표준, 세율 등이 분명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과세대상인 로봇의 범위를 분명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는 로봇의 범위가 너무 넓기 때문에 어느 범위 안에서 과세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로봇세에 대한 내용까지 포함하지는 못하였지만, 2017년에 발의된 "로봇기본법"의 정의 규정을 참고할 여지도 있어 보인다. 그리고 납세의무자를 로봇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로봇의 소유자로 볼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전자로 본다면, 로봇에 인격을 부여하고 로봇이 창출한 가치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유럽에서 논의된 "전자인"과 비슷한 관념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책임을 질 수 없는 로봇에 인격을 부여할 수 있을지에 관한 논쟁이 예상된다. 로봇에 인격을 부여하지 않더라도, 로봇을 취득하거나 소유하는 것에 대해서 취득세 또는 재산세를 부과하거나, 로봇이 창출한 가치를 측정하여 그 소유주에게 소득세 등을 부과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논의의 초기 단계이므로 앞으로 많은 숙고가 필요해 보인다. 새롭게 변화될 세상에 맞추어 올바르게 제도가 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종혁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jonghlee@yulch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