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현대중공업 사내하도급 적법성 첫 확인
[노동] 현대중공업 사내하도급 적법성 첫 확인
  • 기사출고 2020.03.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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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법] "사상 · 취부업무 수행 협력업체 근로자 고용의무 없어"

선박 건조작업 중 사상 · 취부업무를 수행한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자신들을 직접 고용하라며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졌다.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인데, 조선업 사내하도급의 적법성을 확인한 최초의 의미 있는 판결이다.

울산지법 민사11부(재판장 정효채 부장판사)는 1월 9일 정 모씨 등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업체 근로자 3명이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등 소송(2017가합25501)에서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법무법인 대안과 여는이 원고들을, 피고는 법무법인 태평양이 대리했다.

2004∼2009년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업체와 각각 근로계약을 체결한 후 사상업무(용접표면을 매끄럽고 깔끔하게 하여 도장을 용이하게 하는 작업) 또는 취부업무(정확한 용접을 위해 블록을 올바른 위치에 배열한 후 이를 고정하기 위한 가용접 작업)을 수행하다가 2017년 1월 퇴직한 정씨 등은 파견근로자라고 주장하며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또는 고용의 의사표시를 구하는 소송을 냈다.

정씨 등은 "현대중공업은 협력업체들과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우리들은 협력업체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후 현대중공업이 건조하고 있는 선박에 대한 사상, 취부업무를 수행하였으나, 실제로는 현대중공업이 직 · 간접적으로 업무를 지시하고, 현대중공업 근로자들과 같이 공동으로 선박 건조작업을 수행하였으므로 그 실질은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먼저 대법원 판결(2010다106436 등)을 인용, "원고용주가 어느 근로자로 하여금 제3자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위와 같이 파견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제3자가 당해 근로자에 대하여 직 · 간접적으로 그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 · 명령을 하는지, 당해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되어 직접 공동작업을 하는 등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 · 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당해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제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 · 기술성이 있는지, 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그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는 피고의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게 선박설계도 및 구체적인 작업 기준 및 방식을 기재한 작업표준, 시공요령서 등을 제공하고, 현황판에 작업자가 주의할 사항을 게시하였으며, 피고의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은 위 설계도 등에 따라 선박 건조 작업을 한 사실, 피고가 피고의 협력업체에서 작업한 부분이 설계도 등에 맞는지 여부를 검사하고, 하자가 있으면 피고의 협력업체에게 즉시 재시공을 하도록 요청한 사실은 인정되나, 피고는 선주로부터 특정 선박을 발주받았으므로 선주의 요구사항을 반영하여 선박을 설계하고 이에 따른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데, 위 선박의 일부 블록에 대한 취부, 용접, 사상 작업을 도급받은 피고의 협력업체도 피고와의 도급계약에 따라 선박의 설계도 등에 따라 작업을 할 의무가 있으므로 피고가 피고의 협력업체에게 설계도, 작업표준, 시공요령서 등을 제공한 것은 도급인의 일의 완성을 위한 지시로 보이고, 피고가 완성된 결과물을 검사하고 하자가 발생한 경우 이에 대하여 재시공을 요청하는 것도 도급인의 도급계약에 따른 검수권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는 피고의 협력업체로부터 작업인원, 휴일근무 인원 등을 보고받은 사실은 인정되나, 피고는 도급사업주로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피고 소속 근로자뿐만 아니라 피고의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보건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는바, 이를 위하여 작업인원을 파악한 것으로 보일 뿐, 나아가 피고가 피고의 협력업체에게 작업현장에 배치되어야 할 인원, 근로자의 업무배치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가 피고의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하여 직 · 간접적으로 그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상당한 지휘 · 명령을 하였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고 소속 근로자와 피고의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선박의 여러 블록을 분담하여 취부, 용접, 사상업무를 함으로써 공동으로 하나의 선박을 건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사실은 인정되나, 피고는 선주로부터 특정 선박의 건조를 발주받고, 이에 따라 선박을 건조하는데, 건조 과정에서 여러 부재들을 소조립, 대조립 과정을 거쳐 하나의 블록으로 만들고, 이와 같이 만들어진 블록들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선박을 건조하는 점, 피고는 피고의 협력업체와 건조 중인 선박 중 특정 블록에 대한 취부, 용접, 사상 업무에 대하여 개별공사계약을 체결하므로, 위 협력업체가 공사한 부분은 직영공사 또는 다른 협력업체의 공사와 구분되는 점, 피고의 협력업체가 공사한 부분에 하자가 있는 경우 피고는 위 협력업체에게 위 하자 부분에 대한 보수공사를 요청하는바, 피고의 협력업체가 도급계약에 따른 계약불이행에 대한 위험을 실질적으로 인수하는 점, 피고와 피고의 협력업체는 표준품셈표에 근거한 예상 공수와 선박의 종류, 경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단가를 바탕으로 개별공사계약의 공사대금을 합의하여 정하므로, 위 도급계약이 실제 투입된 공사인력을 기준으로 공사대금을 산정하는 인력공급 중심의 용역계약 또는 단순한 노무 도급계약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점, 피고의 협력업체가 개별공사계약에서 정한 공사범위를 넘어 공사를 수행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는 개별공사계약에서 정한 공사단가 또는 추가공사의 인정 여부에 관한 문제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면, 앞서 인정한 사실만으로 피고의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피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근로자파견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피고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욱래 변호사는 "조선업계의 직접공정과 관련한 업무를 수행하는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과 원청 사이의 근로자파견관계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한 중요한 의미를 가진 판결"이라며 "향후 조선업계의 불법파견 사건 및 직접공정 관련 불법파견 사건 등 유사 사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