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 그리고 좋은 변호사
의뢰인 그리고 좋은 변호사
  • 기사출고 2007.01.1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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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원 변호사]
변호사가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의뢰인에게 불신을 받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불신이 생기는 대부분의 경우는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의사소통의 차이 때문에 벌어지는 것인데 결국 의뢰인이 생각하는 소송과 변호사가 생각하는 소송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진다.

◇강석원 변호사
내가 손해배상 소송의 원고의 대리를 맡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의 피고는 변호사 없이 직접 본인소송을 수행하고 있었다.

준비절차기일이 되어 의뢰인과 같이 참석하였는데 피고는 혼자 나와서 재판장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쏟아 내었다.

물론 나야 법률전문가로서 피고가 하는 이야기가 사건과 별 관계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어차피 인정되기가 힘들 것이라고 보였던 위자료 청구부분의 일부를 조정하겠다는 의사까지 피력하였다. 그랬더니 준비절차가 끝나고 나서 의뢰인은 그동안 나에게 쌓였던 불만과 그날의 불만을 통틀어 엄청난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의뢰인의 불만은 "피고는 변호사도 없이 저렇게 이야기를 잘하는데 변호사님은 너무 약하게 나가는 것 아니냐"로 시작해서 "착수금이 너무 적어서 이렇게 성의 없이 나오시는거 아니냐"는 식의 감정적인 비난으로까지 계속되었다.

그 소송은 결국 내가 대리하던 측, 즉 원고의 승소로 돌아갔지만 원고는 내가 소송을 잘 수행해서 이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자신이 중간에 불평도 이야기하고 제대로 일하지 않는 변호사를 닦달해서 그때서야 변호사가 정신 차리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이겼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어차피 이길 사건이니 이긴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변호사가 개업 초창기에 나와 유사한 경험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사건으로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정신적 충격도 있고 하여(변호사님 변호사님 하며 따르던 의뢰인의 돌변하는 모습을 본 분이라면 그러한 정신적인 충격을 이해해 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과연 변호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며 그리고 좋은 변호사라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곰곰이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내가 그날 피고처럼 원고의 감정을 풀어 주기 위하여 사건과 관계없는 이야기를 준비절차기일에서 재판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했어야만 했는가?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하는 것은 변호사가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다른 일체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사안의 쟁점만 재판부에 주장하고 이에 따라 승소한 나는 아무런 잘못을 한 것이 없는 것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은 원고에게 사건과 관계없는 주장이 이 재판의 승소 여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설득하지 못한 것이었다. 재판이 끝나기 전이건 재판이 끝난 후건 간에 나는 변호사로서 의뢰인에게 어떤 것이 법적인 것이고 어떤 것이 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설득시키고 이런 것이 재판 결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을 했어야 하는 것인데 나는 이런 일을 하지도 않았고 해야 된다고 믿지도 않았기 때문에 재판부와 당사자 간의 의사 소통의 괴리를 전혀 좁혀 주지 못한 것이었다.

판결문은 아무래도 일반인이 보기에는 어렵고 딱딱하다. 재판 절차를 지칭하는 용어나 재판 진행 중에 판사가 하는 말들은 일반인이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이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당사자는 판사가 공들여 써주는 판결문에 의하여 설득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소송 당사자는 오히려 판결문에 기재되어 있는 이유보다도 판결 결과나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재판 절차에 의하여 설득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가 재판에서 지더라도 재판절차가 공정했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재판절차에서 할만한 것은 다해 봤다고 생각하면 패소한 것에 쉽게 승복하고 항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변론주의가 지배하는 재판 절차에서 재판부에게 당사자를 완벽하게 설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재판부는 판결로 당사자를 설득하는 것이고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에 당사자를 순차적으로 설득시키는 것은 바로 변호사가 해야 할 일이다.

즉, 변호사가 해야 할 일들은 재판에서 승소하기 위하여 노력할 뿐 아니라 절차상으로 의뢰인을 법치주의의 틀에 맞추어 사고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의뢰인의 비법률적 사고나 무분별한 감정 표현을 법치주의에 맞게 순화시키도록 하는 것이 변호사가 할 일이다.

그렇게 본다면 변호사가 해야 할 일은 상당히 많고 그 일의 성격도 상당히 고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완벽하지만 어렵게 쓰여진 판결문과 복잡한 법률 절차 이론을 당사자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그것도 재판 기일뿐아니라 법정 외에서도) 설득하는 일은 한 두시간의 서면 작업만으로는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일 대 일로 만나 내가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일- 이것이 변호사가 할 일이라면 이는 법치주의를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실천하는 일로써 정말로 매력적인 일이 아닌가 싶다.

나는 지금도 당사자가 물어 보지 않아도 재판 절차나 쟁점 등에 대하여 일일이 설명해주고 법정에서 사용되는 용어 등에 대하여 친절하게 설명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당사자가 재판 절차에 대하여 빨리 이해하게 되고 불리한 재판 결과에도 쉽게 승복하는 경우가 많아 개인적으로 별 스트레스 없이 소송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판결은 법원이 하지만… 그 판결을 더욱 빛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은 변호사가 하는 것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kangsw2000@hanmail.net)

◇변협신문에 실린 강석원 변호사님의 글을 변협과 필자의 양해아래 전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