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철 변호사]
고 김선일씨 피살 사건과 관련, 유족측과 정부 사이에 보상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는 이 사건이 소송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갈 경우 우선 그 소송의 원고가 되는 김선일씨의 유족들이 국가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고의적으로 김선일씨를 살해당하도록 하지는 않았음은 국민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국가에게 과실이 인정될 것이냐는 지금 당장 단정적으로 말 할 수는 없지만,
AP통신으로부터 이라크에서 한국인의 피랍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를 외교통상부 직원이 받고도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과실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라크에 있는 한국인중 한 명이 무장단체에 피랍되었는 지 여부를 묻는 확인 전화를 받았다면 그 즉시 이라크 대사관에 연락했어야 했고, 이라크 대사관에서는 현지 교민들에게 전화나 E메일 등 여러 방법으로 모두 안전한 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가나무역의 김선일씨의 실종 사실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국가의 과실이 문제될 수 있다.
조금만 신경 썼더라면 충분히 사전에 (즉, 6월 초순께) 김선일씨의 피랍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외교통상부 직원의 순간적인 판단 잘못 내지 직무태만으로 인해 중요한 순간을 놓친 것이 국가의 과실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과실이 인정되면 국가는 재외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또 보다 적극적으로 석방 협상에 나서지 못한 점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면 그것이 과실에 해당될 것이며, 적어도 위자료 지급사유에는 해당된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다.
국가의 과실을 입증하더라도 손해배상 액수가 걸린다.
우리 법원의 손해배상 기준에 의하면 김선일씨 유족들이 받을 손해배상은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인 위자료를 다른 사건에 비해 너무 차이나게 인정해 주는 것도 균형이 맞지 않을 수 있다.
보통의 경우 우리 법원의 관례는 위자료 액수를 그리 많이 인정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과실이 없는 사망 사고의 경우 5000만원의 위자료를 인정하는 게 요즈음 법원의 관행이기도 하다.
이런 점 등에서 볼때 이 사건은 소송으로 가는 게 적절치 않아 보이는 것이다.
정부가 위로금 차원에서 배상 내지 보상을 하고, 유족들이 하루 속히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함이 보다 바람직한 방향일 것 같다.
이 사건에 대하여 정부와 유족들 사이에 원만한 합의점을 찾지 못해 나중에 소송으로 가게 된다면, 그 소송이 완전히 종결되기 전까지 유족들은 재판 때마다 다시금 슬픔이 솟아 오를 것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대처과정에서의 무능함이 자꾸만 외부에 커져 보일 수도 있다.
손해배상이나 보상금의 성격보다는 정부에서 유족들에게 충분히 사죄하고, 정부차원에서 지급하는 위로금 성격으로 원만히 마무리함이 유족에게나 정부에게나 그리고 일반 국민들에게도 적절한 방안이라 생각된다.
다만, 그 액수는 정부가 먼저 제시하고, 이를 유족들이 검토한 후 서로 협의하여 원만히 수습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스스로닷컴 대표변호사(susulaw@susu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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