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친구 집에서 잔 뒤 술 덜 깬 상태로 차 운전해 출근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산재 아니야"
[노동] "친구 집에서 잔 뒤 술 덜 깬 상태로 차 운전해 출근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산재 아니야"
  • 기사출고 2020.01.2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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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순리적인 경로 · 방법으로 출근 중 사고 아니야"

근로자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친구 집에서 잔 뒤 다음날 아침 술이 덜 깬 상태로 차를 운전해 출근하다가 교통사고로 숨진 경우 업무상 재해일까.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박성규 부장판사)는 1월 10일 술이 덜 깬 상태로 차를 운전해 출근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A(사망 당시 24세)씨의 어머니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2019구합64471)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세종시에 있는 한 마트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18년 9월 15일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술을 마시고 친구의 집에서 잔 뒤 다음날인 16일 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채 승용차를 운전해 출근했다. A씨는 오전 7시 40분쯤 대전시 유성구에 있는 편도 6차로 도로 중 4차로를 진행하던 중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다가 맞은편 도로 3차로에서 진행 중이던 이 모씨가 운전하던 승용차와 충돌해 숨졌다. 이 사고로 이씨의 차량이 시계반대방향으로 회전하면서 뒤에서 오던 또 다른 차량과 재차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씨는 전치 12주의 상해를 입었다.

A씨의 어머니가 '마트에 출근하던 도중에 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A씨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가 자신의 거주지가 아닌 친구의 집에서 마트로 출근하던 도중 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이는 통상의 출퇴근 경로로 볼 수 없고, 이 사고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상)죄와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죄의 범죄행위 중 발생한 사고에 해당, A씨의 사망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출퇴근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 사고로 이씨는 전치 12주의 허리뼈 압박 골절 등의 상해를, 또 다른 차량 운전자는 전치 1주의 목뼈 염좌 등의 상해를 각각 입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A씨의 혈액을 채취하여 감정한 결과, 사고 무렵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82%. 이 사고에 관한 실황조사서에 의하면, 사고 당시 날씨가 맑았고 도로 상태는 건조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A씨의 음주 외에는 사고의 인적 · 차량적 · 도로환경적 유발요인은 없는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재판부는 "A씨가 사고 전날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모임에서 음주를 하였고, 사고 무렵에도 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채 혈중알코올농도 0.082%의 상태에서 차량을 운전하여 마트로 출근하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더욱이 A씨는 편도 6차로 도로 중 4차로에서 주행을 하다가 중앙선을 넘어 맞은편 도로 3차로에까지 침범하여 정상 진행 중이던 이씨 운전 차량과 충돌하였고, 이 사고에 관한 실황조사서 등에 의하면 A씨의 음주 외에는 사고의 인적 · 차량적 · 도로환경적 유발요인은 보이지 않으며, 지배할 수 없는 외부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A씨가 어쩔 수 없이 중앙선을 침범하였다고 볼만한 사정도 인정되지 않아, 결국 A씨의 음주운전이 사고의 주요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이처럼 A씨가 자의적 · 사적으로 음주 상태에서 차량을 운전하여 출근을 하다가 음주운전이 주요 원인이 되어 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A씨가 순리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근을 하던 중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A씨의 사망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출퇴근 재해(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A씨의 위 음주운전 행위는 구 도로교통법 148조의2 2항 3호, 44조 1항에 따라 '6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범죄행위이고, A씨의 위 중앙선 침범행위는 구 도로교통법 156조 1호, 13조 3항에 따라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의 부과대상이 되는 범죄행위이며, A씨의 음주운전 및 중앙선 침범이 경합하여 발생한 사고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3조 1항, 2항 단서 2호, 8호에 따라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범죄행위"라며 "A씨의 음주운전을 중앙선 침범 및 이 사고의 주요 원인이자 직접적인 원인으로 평가할 수 있으므로, 결국 이 사고로 인한 A씨의 사망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 2항 본문의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사망 등이 발생한 경우'에 해당하여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가사 A씨의 음주운전 등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 2항 본문의 '고의 · 자해행위나 범죄행위'에는 이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규정의 취지에 비추어 A씨의 음주운전 등으로 인해 A씨 업무와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 2항 본문은 "근로자의 고의 · 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 · 질병 · 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