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업의 활동영역이 국내를 넘어 세계 각지로 확대됨에 따라, 자신의 상품을 판매할 시장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국제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에 지점이나 출장소와 같은 영업소를 설치하여 자신의 상업사용인(지배인과 같이 영업상의 대리권을 가진 자를 말한다)을 파견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관리와 유지에 상당한 고정비용이 소용된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기업들은 현지의 사정에 정통한 업체와 다양한 형태의 유통계약을 맺음으로써 리스크를 줄이고 수익을 얻는 방식을 자주 택하고 있다.
상법은 상품 유통계약의 전형적인 형태로 대리상(상법 제87조), 중개업(상법 제93조), 위탁매매업(상법 제101조), 가맹업(상법 제168조의6)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하에서는 특히 대리상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한다.
계약 종료 전후 분쟁 많아
기업과 중간상인 사이의 협력관계는 계약이 존속하는 동안에는 잘 이루어지지만, 계약의 종료 무렵이나 종료 후에는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상당하다. 필자도 띄엄띄엄이긴 하지만 자주 의뢰받는 업무 중의 하나가 외국업체의 국내 대리상으로 활동하다가 계약이 해지되고 그에 따라 국내 대리상이 외국업체에 대해서 보상청구나 손해배상청구 또는 밀린 수수료(커미션)를 청구하는 업무이다.
1. 대리상의 의의
대리상은 일정한 상인을 위하여 상업사용인이 아니면서 상시 그 영업부류에 속하는 거래의 대리 또는 중개를 영업으로 하는 자로 정의된다(상법 제87조).
(1)대리상의 요건
대리상은 일정한 상인을 위하여 활동해야 한다. 반드시 한 명의 상인만을 위하여 활동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특정 상인과 일정하고 계속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면 비록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나 복수의 상인을 위하여도 대리상이 될 수 있다.
복수의 상인 위해서도 활동 가능
대리상은 상인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한 상인이어야 한다. 기업의 내부에서 인적요소를 구성하는 상업사용인과 달리, 대리상은 상업사용인과 마찬가지로 상인을 보조하지만 상인에 종속되지 않는다. 대리상과 상업사용인의 구별 기준은 계약내용, 자기영업소의 유무, 영업비 부담 유무, 업무에 대한 본인의 관여 정도(지휘 감독인가, 특정사무의 위탁인가)에 따라 판단된다(대법원 1962. 7. 5. 선고 62다244 판결 참조).
대리상은 본인(대리상이 어떤 상인을 위하여 대리상으로 일할 때 그 상인을 대리상과 대비하여 본인이라고 칭한다)인 상인과 계속적인 거래관계를 맺은 상태에서 상시 거래를 보조하여야 하며, 본인인 상인의 영업부류에 속하는 거래를 대리 또는 중개를 하여야 한다. 예컨대 매매업을 하는 상인을 위하여 단지 금융을 대리 또는 중개한 자는 그의 대리상이 될 수 없다.
(2)다른 제도와의 비교
실무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어떤 특정 "대리점", "Agent", "Distributor", "총판", "딜러" 등과 같은 명칭을 사용하는 자가 상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리상인지를 판단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명칭을 사용하였다고 해서 그 사람이 대리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판례는 어떤 자가 제조회사와 대리점 총판 계약이라는 명칭의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하여 곧바로 상법상 대리상이 되는 것은 아니고, 계약 내용을 실질적으로 살펴 대리상인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1999. 2. 5. 선고 97다26593). 본 판결에서는 대리점이 제조회사로부터 노래방기기 본체를 매입하여 스스로 주변기기를 부착하여 노래방기기 세트의 판매가격을 결정하여 판매한 점 등을 근거로 해당 대리점은 상법상 대리상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예컨대 상품의 공급자로부터 상품을 매입하고 이를 자기 명의와 계산으로 판매하는 자의 영업소를 대리점으로 칭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대리점은 상품구입대금과 상품판매대금의 전매차액으로 수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대리상이 거래의 대리나 중개에 따른 수수료의 수입을 얻는 것과 다르다. 이러한 매매 관계에 대하여는 상법상 상인간 매매에 관한 규정, 민법상 매매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다. 판매자가 공급자에게 주문을 하여 상품을 공급받은 다음에는 공급자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판매자가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계산과 책임 하에 제품을 판매하기는 하지만 영업에 관하여 공급자의 세부적인 지시를 따라야 하거나 공급자의 감독을 받으며 영업 계획이나 결과에 대하여 보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판매업자는 마치 공급자의 영업 조직처럼 운영되어 공급자의 거래를 대리 또는 중개하는 대리상과도 유사한 실질을 가진다고 볼 여지도 있다.
위탁매매인은 자기 명의로 거래
또 다른 경우로는 상품공급자로부터 제공받은 상품을 자기명의, 상품공급자의 계산으로 위탁판매하는 위탁매매인이 있다(상법 제101조). 대리상과 위탁매매인은 모두 상인의 보조자이지만 상업사용인과 달리 독립된 보조상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본인(상인) 명의로 거래를 하는 대리상과 달리 위탁매매인은 자기 명의로 거래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다. 즉, 대리상은 본인의 명의로 거래하면서 거래의 경제적 효과가 본인에게 귀속되지만, 위탁매매인은 자기 명의로 거래함에도 거래의 경제적 효과가 위탁매매인이 아니라 위탁자 본인에게 귀속된다. 또한 위탁매매인이 주선할 수 있는 거래는 물건 또는 유가증권의 매매에 한정되지만 대리상은 특정상인의 영업부류에 속하는 모든 거래를 할 수 있다.
실무에서는 대리상과 위탁매매업을 구분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양 쪽의 특성들이 모두 혼재되어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한편 위탁매매업과 전술한 일반 판매업의 차이는 위탁판매업은 상품공급자의 계산으로 판매하는 반면 일반 판매업자는 본인의 계산으로 판매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일반 판매업자는 상황에 따라 가격 및 대금결제 조건 등을 시장 상황에 따라 독자적으로 수립하여 집행할 수 있지만, 위탁매매인은 위탁자 본인이 책정해놓은 거래 조건 등을 그대로 따라야 하며, 위탁매매인이 위탁자 본인으로부터 공급받은 상품과 그 상품에 대한 매매대금 및 매출채권 등은 위탁자 본인의 소유다.
2. 대리상의 보상청구권
(1)보상청구권의 의의
대리상의 활동으로 본인이 새로운 고객을 획득하거나 영업상의 거래가 현저하게 증가하고 이로 인하여 계약의 종료 후에도 본인이 이익을 얻고 있는 경우에는 대리상은 본인에 대하여 상당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계약의 종료가 대리상의 책임 있는 사유로 인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상법 제92조의2 제1항). 독일에서 해석상으로 인정되고 있던 제도를 1995년 상법을 개정하면서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리상계약의 존속기간 중 대리상의 고객확보를 위한 노력으로 현지에서 상품과 기업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져 판매량이 증가된 후, 본인인 기업이 대리상계약을 종료시키고 직접 고객과 거래함으로써 이익을 독차지하거나 또는 다른 대리상과 대리상계약을 맺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 대리상의 노력의 결과로 생긴 무형의 재산적 가치를 기업이 무상으로 빼앗는 것은 부당하다는 관점에서, 상법은 위와 같이 대리상의 보상청구권을 일정 요건 하에서 인정하여 대리상이 상인의 이익에 기여한 부분에 대해 형평에 맞는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많은 국내 대리상들이 짧게는 4~5년에서 길게는 10여년 동안 외국업체의 제품을 국내에서 홍보하고 판매처를 확보하고 인지도를 높여서 안정적인 판매가 이루어지도록 해놓고 나면 본인인 외국업체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하는 사례가 많다.
해지 자체는 문제 없어
외국업체와 맺는 대리상계약에는, 계약을 매년 갱신하도록 되어 있다거나 아니면 외국업체가 일정한 기간(예를 들어 30일 또는 60일) 전에만 통지하면 대리상의 귀책사유 유무와 관계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해지 자체는 계약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해지가 되는 셈이다. 물론 해지를 하는 외국업체에게도 사연은 있겠지만 해지를 당하는 국내 대리상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하고 황당하기도 한 경우도 많은 것 같다.
(2)보상청구권의 요건
보상청구권의 요건으로 요구되는 본인의 이익이란 회계학적인 영업이익이 아니고 대리상이 개척한 고객과의 거래가 유지됨으로써 얻는 기업상의 경제적 가치라고 해석된다. 과거부터 관계를 맺어 온 고객이더라도, 대리상의 활동으로 본인과 영업거래가 현저하게 증가하여 고객과 본인 사이에 유용한 영업결합이 생긴 경우도 포함된다는 것이 통설이다. 대리상 계약관계의 종료로 인하여 대리상이 보수청구권을 상실하였고, 이로부터 대리상이 손해를 입었음 또한 입증되어야 한다.
5년간 평균년보수액 초과 못해
보상금액은 계약의 종료 전 5년간의 평균년보수액을 초과할 수 없으며, 계약의 존속기간이 5년 미만인 경우에는 그 기간의 평균년보수액을 기준으로 한다(상법 제92조의2 제2항). 여기서 보수액이란 대리상이 본인으로부터 수령한 보수총액을 의미한다.
보상청구권은 계약이 종료한 날부터 6월을 경과하면 소멸한다(상법 제92조의2 제3항). 그리고 대리상의 보상청구권이 인정되려면, 대리상계약의 준거법이 한국법이어야 함이 원칙이다. 대리상의 보상청구권은 상법이 인정하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대리상 계약의 준거법이 외국법인 경우에는 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외국업체를 상대방으로 하여 한국 법원에 보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 외국업체에 대한 송달 문제, 준거법인 외국 법률에 우리나라 상법과 유사한 대리상의 보상청구 제도가 있는지의 문제, 한국 법원의 외국 법률 해석과 판단의 문제 등 여러 가지 난점들이 존재한다. 보상청구권을 명시적으로 배제하는 조항을 계약에 두는 경우도 많은데, 그 배제 특약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다툼이 있다.
(3)보상청구권의 유추적용에 관한 판례
최근 판례는 대리상의 계약관계를 갖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도 대리상의 보상청구권을 유추적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였다(대법원 2013. 2. 14. 선고 2011다 28342 판결).
본 판결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원고는 생활용품 도소매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이고, 피고는 위생용 종이제품 등을 생산 하는 미국 회사가 자사 제품의 판매를 목적으로 국내에 설립한 자회사로, 당사자들은 2001년경 인천 권역에 대한 메가대리점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계약에 따르면, 피고는 원고를 계약기간 동안 피고의 대리점으로 임명하고, 원고는 제품을 피고로부터 구매하여 이를 판매지역 내에 소재하는 거래처나 고객에게 판매하기로 하였다. 피고가 해당 제품을 원고에게 인도한 이후부터 제품과 관련된 일체의 위험과 비용은 원고가 부담하고, 제품 인수 후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는 손상품을 피고에게 반품하지 않기로 하였다. 또한 원고는 피고 제품의 구매 및 영업활동과 관련하여 대리점 수수료를 지급받기로 하였고,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등의 재무자료를 매달 피고와 공유하기로 하였으며, 피고는 원고가 대리점 거래를 위하여 은행에 대출을 받는 것과 관련하여 보증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 계약에는 당사자들이 독립적인 계약자로서 모든 면에서 스스로를 대표하고, 어느 일방도 상대방을 강요하거나 강제하지 않는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었다.
메가대리점 계약에는 계약기간을 12. 31.까지로 하되 계약만기일 1개월 전까지 쌍방이 영업계획 등을 상호 서면 합의하는 경우 그 후 1년간 계약이 갱신된다고 되어 있었고, 실제로 이 계약은 매년 갱신되어 2008. 12. 31.까지 연장되었는데, 피고가 2008. 10. 17. 원고에게 계약 기간을 연장하거나 새로운 대리점 계약을 체결할 의사가 없음을 통지함으로써 2008. 12. 31.자로 계약이 종료되었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거래처를 증가시켰고 이로 인하여 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피고가 이익을 얻고 있음을 이유로 상법 제92조의 2를 근거로 한 보상을 청구하였다.
보상청구권 인정
이에 대해 대법원은, "대리상의 보상청구권에 관한 위와 같은 입법 취지 및 목적 등을 고려할 때, 제조자나 공급자로부터 제품을 구매하여 그 제품을 자기의 이름과 계산으로 판매하는 영업을 하는 자에게도, ①예를 들어 특정한 판매구역에서 제품에 관한 독점판매권을 가지면서 제품판매를 촉진할 의무와 더불어 제조자나 공급자의 판매활동에 관한 지침이나 지시에 따를 의무 등을 부담하는 경우처럼 계약을 통하여 사실상 제조자나 공급자의 판매조직에 편입됨으로써 대리상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였고, ②자신이 획득하거나 거래를 현저히 증가시킨 고객에 관한 정보를 제조자나 공급자가 알 수 있도록 하는 등 고객관계를 이전하여 제조자나 공급자가 계약 종료 후에도 곧바로 그러한 고객관계를 이용할 수 있게 할 계약상 의무를 부담하였으며, ③아울러 계약체결 경위, 영업을 위하여 투입한 자본과 그 회수 규모 및 영업 현황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대리상과 마찬가지의 보호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때에는, 상법상 대리상이 아니더라도 대리상의 보상청구권에 관한 상법 제92조의2를 유추적용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대리상과는 달리 자신의 명의와 계산으로 영업을 하는 다른 판매업자에게 일반적으로 이러한 보상청구권을 인정할 수는 없겠지만, 판매업자에 따라서는 대리상과 유사하게 공급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계약 종료 후에도 그 노력의 결과가 공급자에게 귀속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므로, 제한적인 범위에서 보상청구권 규정을 유추적용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형평의 관점에서 타당하다는 견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4)유추적용에 대한 비판
이에 대하여는 상법에는 대리상의 보상청구권을 다른 중간상에게 준용한다는 명문 규정이 없고, 이러한 상태에서 여타 중간상에까지 보상청구권을 유추적용하려는 것은 상법 조항의 해석목표를 벗어난다는 비판이 있다. 대리상과 달리 일반 판매상이나 가맹상 등은 자신의 거래에 대한 경제적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기 때문에 계약 종료 시 그간 창출된 영업권을 빼앗길 위험에 직면하는 구조에 놓이지 않고, 결과적으로 유통거래 분야 전체에 보상청구권이 피할 수 없는 암초로 작용하여 유통거래의 안정성을 광범위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논지이다(최영홍 교수의 "대리상의 보상청구권의 유추적용여부" 234~235면 참조).
EU도 보상청구권 인정
EU는 "대리상에 관한 회원국의 법률통일에 관한 이사회지침 86/653"(Council Directive 86/653 on the coordination of the laws of the Member States relating to self-employed commercial agents)과 이 지침에 기한 회원국들의 국내 입법을 통해서 대리상의 보상청구권이 인정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은 대륙법계와 달리 대리상을 경제적 약자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지 않아서 명문으로 대리상의 보상청구제도를 두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영익 변호사(법무법인 넥서스, yichoi@nexuslaw.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