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사찰 '처사'도 지휘 · 감독 받았으면 근로자"
[노동] "사찰 '처사'도 지휘 · 감독 받았으면 근로자"
  • 기사출고 2019.11.2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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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퇴실 통보는 부당해고"

사찰에 거주하며 청소와 정리 등의 업무를 하는 '처사(處士)'도 근로자에 해당할까.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박성규 부장판사)는 11월 1일 한 사찰 내에 설립된 A재단법인이 "처사로 근무한 B씨를 근로자로 보아 B씨에 대한 퇴실 통보를 부당해고로 판정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을 취소하라"며 중노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2019구합55484)에서 "B씨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시, A법인의 청구를 기각했다.

A재단은 이 사찰 내에 위치한 법인으로 상시 10여명의 근로자를 사용하여 실내 납골당, 부도탑묘 관리업 등을 해왔으며, B씨 등 처사들은 도량 청소, 공양간 정리정돈, 법당 청소, 야간 순찰활동, 극락원 청소 · 정리, 부도탑묘 안치 보조 업무 등을 했는데, 부도탑묘 안치 보조 업무는 A재단 업무와 관련된 업무이다.

B씨는 2015년 7월부터 이 사찰에서 숙식하며 처사로 근무해 왔으나, 사찰이 2018년 5월 B씨에게 'B씨가 현재 사찰 봉사활동을 중지하고 있으므로, 사용하고 있는 방사에서 퇴실해 달라'는 내용의 통보를 하자, B씨가 부당해고라고 주장하며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지방노동위원회는 'B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A재단이 한 해고는 해고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데다 서면통지 의무 또한 이행하지 않아 부당하다'는 이유로 구제신청을 인용했고, 이에 A재단이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으나 동일한 이유로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이에 앞서 B씨는 사찰로부터 방사 퇴실 요청을 받기 한 달 전인 2018년 4월  '2018년 3월 20일자 울력 작업 중 어깨를 다쳐 수술을 받아야 하므로, 부득이 휴직하고자 한다'라는 내용의 휴직계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휴직계를 낸 지 6일 뒤 수신인을 A재단으로 한 같은 내용의 내용증명 우편을 보냈다. 

A재단은 재판에서 "사찰은 우리와 별도의 단체이고, B씨는 사찰의 처사로 기거하면서 사찰의 업무를 도왔을 뿐이며, 우리는 종무원을 별도로 고용하여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며 "더욱이 B씨가 사찰의 처사로서 한 업무는 자율적인 봉사활동에 불과하여 근로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할 수도 없고, 사찰이 감사의 표시로 지급한 보시금을 임금으로 볼 수도 없어 B씨를 근로자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원고 측에서 처사들의 구체적인 근무내용과 근무장소를 지정해주었고, 근무시간 또한 08:00부터 17:00까지로 정해져 있었고, 처사들은 매일 아침 출근기록부에 출근시간을 기재하고 서명을 하였으며, 한 시간 단위로 자신의 업무내용을 기재하는 업무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고 지적하고, "그렇다면 사용자 측은 처사들의 업무수행과정에서 상당한 지휘 · 감독을 하였고, 처사들은 사용자 측이 정한 근무시간과 근무장소에 구속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처사들은 위와 같이 업무를 수행하고, 매월 100만원의 고정된 급여를 지급받아 오고 있었고, 처사들의 근무시간, 산중에 위치한 사찰이라는 장소의 특성, 처사들이 사찰 내에서 숙식을 제공받고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처사들은 그 사용자(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고)에 전속되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B씨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이 사건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B씨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사찰이 아니라 A재단이 B씨의 사용자인지 여부. 재판부는 "원고 소속 직원들이 처사 구인 면접, 업무 조정 등을 한 점, 특히 처사 업무보고서의 제목이 '원고 금일 일일 업무보고'로 되어 있는 점, 처사들에게 급여를 제공한 계좌의 예금주는 사찰의 고유번호증상 대표자로, 원고의 대표자이기도 한 점, 이처럼 사찰과 원고의 대표자가 동일하고 업무도 혼재되어 있는 점, 그 밖에 원고의 설립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와 사찰을 별도로 구분하여 사찰이 B씨(처사)의 사용자인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원고를 B씨의 사용자로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결국 (B씨에 대한) 퇴실 통보를 원고의 B씨에 대한 해고 처분으로 보아야 한다"며 "원고는 B씨의 사직 의사표시로 인해 근로관계가 종료되었음을 전제로 퇴실 통보를 한 것이므로, 퇴실 통보에 따른 해고는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정당한 해고사유가 존재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했다. 원고가 원고 소속 근로자인 B씨를 부당하게 해고했다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