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다른 차량들 통행할 수 없는데 사고 내고 그냥 가면 물피 뺑소니"
[교통] "다른 차량들 통행할 수 없는데 사고 내고 그냥 가면 물피 뺑소니"
  • 기사출고 2019.11.1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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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원활한 교통 확보 조치 취했어야"

코란도화물차 운전자가 심야에 차량 2대 정도가 지나갈 수 있는 이면도로에 주차된 포터 화물차와 부딪힌 후 사고로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코란도화물차를 그대로 세워둔 채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지만 남기고 현장을 떠났다. 도로교통법상 사고후미조치죄 이른바 물피 뺑소니에 해당할까?

대법원 제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10월 31일 도로교통법상 사고후미조치와 음주측정거부 혐의로 기소된 이 모(53)씨에 대한 상고심(2019도10878)에서 물피 뺑소니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시, 사고후미조치 혐의는 무죄로 보아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이씨는 2018년 2월 9일 오후 11시쯤 이후부터 2월 10일 오전 2시쯤 이전 사이에 술에 취해 코란도스포츠 화물차를 운전하여 용인시 처인구에 있는 이면도로를 진행하다가 진행방향의 왼쪽 편에 주차된 포터 화물차의 앞 범퍼를 코란도스포츠 화물차의 앞 범퍼로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사고가 발생한 도로는 중앙선이 없는 이면도로로서 차량 2대 정도가 지나갈 수 있는 도로였다. 이씨는 이 사고로 코란도스포츠 화물차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코란도를 피해차량인 포터 화물차와 나란히 세워둔 상태에서 시동을 끄고, 자신의 전화번호만 적은 메모지를 코란도스포츠 화물차 앞 유리창에 둔 채 걸어서 사고장소에서 350m 가량 이동하여 집으로 갔다.

그러나 이씨의 코란도스포츠 화물차로 인하여 차량 통행이 어렵다는 112 신고를 받고 다음날인 10일 2시 4분쯤 사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이씨가 남겨둔 메모지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하였으나 연락이 되지 않자 견인업체에 연락하여 가해차량을 견인하도록 한 후 차적 조회를 통해 차주인 이씨의 형과 통화하여 오전 4시 5분쯤 이씨의 집으로 출동, 이씨에게 39분간 3회에 걸쳐 음주측정을 요구했으나 이씨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음주측정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씨를 음주측정거부와 사고후미조치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의 쟁점은 이씨에게 도로교통법상 사고후미조치(도로교통법 148조, 54조 1항)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느냐였다. 도로교통법 54조 1항에 따르면, 차 또는 노면전차의 운전 등 교통으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하거나 물건을 손괴(이하 "교통사고"라 한다)한 경우에는 그 차 또는 노면전차의 운전자나 그 밖의 승무원(이하 "운전자등"이라 한다)은 즉시 정차하여 1. 사상자를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 2. 피해자에게 인적 사항(성명 · 전화번호 · 주소 등을 말한다) 제공 등의 조치를 해야 하며, 이를 위반하면 148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다만, 주 · 정차된 차만 손괴한 것이 분명한 경우에 피해자에게 인적 사항을 제공하지 아니한 사람은 제외한다.

1심은 이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40시간을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음주측거부 혐의는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사고후미조치 혐의는 무죄라며 도로교통법 148조가 아니라 도로교통법 156조 10호를 적용,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도로교통법 156조 10호는 '주 · 정차된 차만 손괴한 것이 분명한 경우에 54조 1항 2호에 따라 피해자에게 인적 사항을 제공하지 아니한 사람'은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그러나 "도로교통법 148조는 '54조 1항에 따른 교통사고 발생 시의 조치를 하지 아니한 사람(주 · 정차된 차만 손괴한 것이 분명한 경우에 54조 1항 2호에 따라 피해자에게 인적 사항을 제공하지 아니한 사람은 제외한다)'을 처벌하는 조항이고, 도로교통법 156조 10호는 '주 · 정차된 차만 손괴한 것이 분명한 경우에 54조 1항 2호에 따라 피해자에게 인적 사항을 제공하지 아니한 사람'을 처벌하는 조항"이라며 "이러한 도로교통법 조항의 문언 내용과 입법 취지, 도로교통법 148조와 도로교통법 156조 10호의 관계 등을 종합하면, 주 · 정차된 차만 손괴한 것이 분명한 경우에 도로교통법 54조 1항 2호에 따라 피해자에게 인적 사항을 제공하지 않은 사람은 도로교통법 148조의 적용 범위에서 제외되고 도로교통법 156조 10호만 적용되지만, 그 밖에 도로교통법 54조 1항에 따른 교통사고 발생 시의 조치를 하지 않은 사람은 여전히 도로교통법 148조가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어 "도로교통법 54조 1항의 취지는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 · 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서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시켜 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이 경우 운전자가 취하여야 할 조치는 사고의 내용과 피해의 정도 등 구체적 상황에 따라 적절히 강구되어야 하고 그 정도는 건전한 양식에 비추어 통상 요구되는 정도의 조치를 말한다"며 "이 사고의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에 따라 살펴보면, 사고가 발생한 도로에 비산물 등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가해차량으로 인하여 다른 차량들이 도로를 통행할 수 없게 되었다면, 피고인이 사고 현장을 떠날 당시 사고로 인한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 · 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항소심으로서는 피고인이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었는지를 심리하였어야 한다는 것.

대법원은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인이 도로교통법 148조의 처벌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보아, 사고후미조치의 점을 무죄로 판단하였다"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도로교통법 54조 1항에서 정한 필요한 조치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사유를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