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변호사
판사와 변호사
  • 기사출고 2006.12.1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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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최근 상고심의 배당절차를 개선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당사자들이 주심 대법관이 지정되는 것을 기다려 주심 대법관과 지연, 학연 등 연고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사실상 변호사가 선임된 후 주심 대법관을 지정하겠다는 게 개선안의 골자다.

◇김진원 기자
아는 변호사에게 새 배당절차가 가지는 의의에 대해 물어 보았다. '엄청난 조치'란다. 대법원을 좀 들여다 볼 줄 아는 변호사, 법률회사라면 마땅히 주심이 누가 되는가를 보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게 그동안의 관행인데,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상고심 사건은 주심의 사실상 단독심으로 불릴 만큼 주심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변호사는 그러나 주심과 연고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려는 종래의 경향을 완벽히 차단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미리 변호사를 선임해 상고이유서 등을 제출한 후 주심 대법관이 정해지면 그때가서 주심과 연고 있는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하면 된다는 것이다. 상고심은 최종심이기 때문에 여유있는 의뢰인이라면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하는 정도의 비용은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급심 재판에서도 비슷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대법원은 재판장이 '재판부 소속 법관과 개인적인 연고관계가 있는 변호사의 선임으로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오해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요구할 경우 법원장이 사건을 재배당할 수 있도록 하는 예규를 얼마전에 신설, 운영하고 있다. 1심과 2심 재판에서 재판부와 연고있는 변호사가 선임돼 공정성 시비가 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재배당이라는 회피로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법조를 아는 사람들은 이를 피해가는 길도 얼마든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재배당이 걱정된다면, 선임계를 내지 않는 방법으로 변호사가 뒤에 숨어서 변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선임된 변호사가 담당 재판부와 껄끄러운 사이일 경우 다른 재판부로의 재배당을 노려 일부러 담당 재판부 법관과 연고있는 또다른 변호사를 추가 선임하는 반대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고 이 제도가 가지는 맹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최근 법조비리의 발본색원을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조치를 내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법원공직자윤리위원회는 얼마전 '현재 담당하고 있는 사건과 관계없는 변호사라도 너무 가깝게 교제하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는 내용의 권고의견을 일선 법관들에게 발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고있는 변호사가 선임되는 것을 막는다는가 나아가 법조비리를 차단하는 게 제도의 힘만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아무리 정치(精緻)한 법망을 만들어 놓아도 이를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듯이 제도는 제도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제도 보다는 궁극적으로 법관 개개인의 양심과 소명의식에 기대할 수 밖에 없다고 해야 한다.

최근 일본의 최고재판소 판사를 지낸 소노베 이쓰오(園部逸夫) 변호사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판사가 현장검증을 나갔을 때 사건 당사자가 제공하는 차도 마시지 않는 게 상식"이라며, 일본 법관의 청렴성을 소개했다. 일본 법관들의 높은 윤리의식은 우리 법조계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면서 소노베 변호사는 "일본이 메이지(明治) 유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량 실직한 사무라이들에게 재판을 맡겼는데, 명예를 생명보다 중시하는 사무라이 문화가 사법부의 전통으로 자리 잡다 보니 일본 판사들이 엄격한 윤리의식을 갖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소노베 변호사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 손지열 전 대법관이 후배 법관들에게 당부한 말이 생각난다.

손 전 대법관은 지난 여름 대법원이 내부용으로 발행하는 잡지인 '법원사람들' 7월호에서 "지도자들의 정신 내지 윤리로 영국에 '신사도', 일본에 '사무라이 정신'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선비 정신'이 있다"며, 법관들에게 선비정신을 되살리라고 주문했다.

그 첫째가 '깨끗함(淸士)'의 전통이다.

판사와 변호사의 유착 근절을 위해 망라적으로 마련되고 있는 대법원의 여러 조치를 접하면서 손 전 대법관이 강조한 선비정신이 더욱 간절해지는 요즈음이다.

본지 편집국장(jwkim@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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