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의회 정회 무효' 판결 받아낸 이덕주 칙선변호사
'英 의회 정회 무효' 판결 받아낸 이덕주 칙선변호사
  • 기사출고 2019.09.2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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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는 '의회주권 무시' 판결 이유도 의미 있어"

"5주간의 영국 의회(Parliament) 정회 조치는 위법이어 무효입니다."

영국 대법원이,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영국 총리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를 앞두고 실시한 의회 정회(prorogation) 조치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린 9월 24일 오전 10시 30분(현지시간). IBA 서울총회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아 한 국내 로펌이 주최한 리셉션에 참석하고 있던 이덕주 영국변호사도 이 변호사가 몸담고 있는 법정변호사(Barrister) 사무소인 '39 Essex Chambers'의 앱을 통해 승소 판결 소식을 접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변호사도 여성 반브렉시트 운동가인 지나 밀러(Gina Miller)가 존슨 총리를 상대로 낸 이 소송의 원고 측 법정변호사 중 한 명이었기 때문.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경력 20년의 법정변호사로, 여왕이 임명한 칙선변호사(QC)이기도 한 이 변호사는 지나 밀러를 지지하기 위해 가담한 여러 단체 중 하나인 노동당의 변호사 중 한 명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IBA 서울총회 참석을 위해 서울을 찾은 이덕주 영국변호사. 그녀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임명을 받은 한국계의 유일한 칙선변호사(QC)로, 영국 의회 정회가 위법이라는 최근의 영국 대법원 판결에서도 원고 측 대리인 중 한 명으로 활약했다.
◇IBA 서울총회 참석을 위해 서울을 찾은 이덕주 영국변호사. 그녀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임명을 받은 한국계의 유일한 칙선변호사(QC)로, 영국 의회 정회가 위법이라는 최근의 영국 대법원 판결에서도 원고 측 대리인 중 한 명으로 활약했다.

승소 판결이 전 세계의 전파를 탄 다음 날인 9월 2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IBA 총회장에서 만난 이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최근 수십년간 영국 대법원이 내린 가장 중요한 헌법 케이스일 것"이라며 "영국 대법원의 12명의 대법관 중 11명으로 재판부를 구성한, 가장 많은 수의 대법관으로 재판부를 구성한 역사상 두 번째 케이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영국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대법관 11명의 만장일치 의견으로 의회 정회 조치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2년 전에 있었던 또 한 번의 11명의 대법관이 관여한 재판에선 8대 3의 의견으로 영국 정부가 의회의 동의 없이 EU와의 합의만으로 브렉시트 해선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소송의 원고도 지나 밀러였다.

이덕주 변호사는 또 "우리 팀이 가장 중요한 논거로 제시한, 의회 정회 조치는 의회주권에 대한 침해(breach of the parliamentary sovereignty)라는 주장을 대법원이 무효 판결의 이유로 받아들여 더욱 의미 있는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대법원의 판단 이유를 고려할 때 존슨 총리가 다시 여왕으로부터 재가를 받아 의회를 정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판에서, 영국 정부 즉, 존슨 총리 측은 "의회주권(parliamentary sovereignty)의 원리는 제정된 법 규정이 있어야 인정할 수 있고, 법원은 정치적 결정에 관여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이러한 정부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이처럼 브렉시트를 앞둔 매우 중요한 시기에 5주 동안 의회의 문을 닫아놓는 것은 의회주권의 원리를 위배해 의회가 헌법이 부여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막는, 의회가 정부를 상대로 세밀한 추궁(scrutiny)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봉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영국 의회가 의회의 헌법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했다는 점과 그리고 정부가 5주간의 정회에 대한 합리적인 정당화 사유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회 정회'는 합법한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이 변호사는 "대법원이 존슨 정부가 정회를 실시한 목적(purpose)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보다는 의회주권의 원리를 위반했다는 '의회 정회'의 결과(effect)에 주목해 정회가 위법이라고 판단하는 더욱 우아한 방법을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영국 대법원은 실제로 판결에서 '존슨 총리가 여왕에게 의회 정회의 동기를 분명히 하지 않은 것은 거짓말에 속하는 것 아니냐'는 스코틀랜드 측의 논쟁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또 여왕은 위법한 의회 정회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여왕은 존슨 총리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헌법의 전통을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언론에선 영국 대법원의 이러한 판단을 놓고, '대법원이 여왕 주변에서 조심스럽게 발끝으로 걸었다(UK's Supreme Court tiptoed around the Queen)'고 표현하기도 했다.

존슨 정부는 8월 28일, 영국 여왕의 국회 개원 연설을 10월 14일로 요청, 여왕이 이를 승인했고, 그 후 정부는 9월 10일부터 여왕이 연설할 10월 14일까지 5주간 의회를 정회시켰다. 그러나 존슨 정부의 이러한 결정에 반대하는 노동당과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진영에선 존슨 정부가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no deal)' 브렉시트를 위해 왕실을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나 밀러와 스코틀랜드 의원 70여명이 의회 정회가 위법이라며 소송을 내면서 의회 정회의 적법성 여부를 가리는 세기적인 재판이 시작되었다.

런던법원에 제기된 지나 밀러가 낸 소송은 1심에서 '이 사안은 정치와 의회의 소관이지 사법부가 판단할 사항이 아니다'는 이유로 원고 측이 패소했으나, 항소심을 거치지 않는 비상상고를 통해 소가 제기된 지 1달도 되지 않아 대법원에서 "의회 정회는 위법"이라는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스코틀랜드 법원에 제기된 소송은 1심에서는 원고 측이 졌으나, 2심에서 정회가 무효라는 판결이 내려진 가운데 정부 측이 항소했으나 영국 대법원은 같은 결론의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덕주 변호사는 누구=지나 밀러를 지지하는 노동당을 대리해 이번 재판에 참여한 이덕주 변호사는 39 Essex Chambers의 변호사들과 함께 시간을 다투어가며 장문의 준비서면을 써 제출했으며, 9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계속된 대법원의 변론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 방문 날짜가 늦어져 세계한인법률가회(IAKL) 서울총회엔 참석하지 못하고 9월 22일 IBA 서울총회장으로 직행했다는 전언.

유일한 한국계 QC

교수였던 부모님을 따라 3살 때 영국으로 건너간 이 변호사는 옥스퍼드 법대를 나와 영국의 법정변호사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한국계 변호사 중 한 명으로, 1999년부터 영국 법정 등에 출정하고 있다. 2년 전엔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영국의 법정변호사들이 모두 꿈꾸는 칙선변호사(QC)가 되었다.

영어는 물론 룩셈부르크에 있는 유럽연합 법원에서 불어로 준비서면을 써내고 불어로 변론할 정도로 불어도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 변호사는 EU법, 헌법과 행정법 등 공법 분야가 전문 분야다. 영국 정부 등을 대리해 법정에 나서는 일이 많다는 그녀는 또 정부 조달이나 EU와 영국 정부의 규제 관련 이슈에도 관여하며, 이러한 사안에선 정부를 상대로 기업 등을 대리하기도 한다. 이 변호사는 "기회가 된다면, EU법과 관련된 투자자분쟁(ISD)이나 EU 지역의 투자 관련 분쟁에서 한국기업이나 한국 정부를 위해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