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에 제정 · 공포된 「주식 · 사채 등의 전자등록에 관한 법률」, 일명 전자증권법이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드디어 올 9월 16일부터 시행된다. 전자등록기관인 한국예탁결제원과 증권회사 등 관련 기관들은 전자증권제도 시행을 위한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투자자들에게도 가지고 있는 종이증권을 전자증권으로 교체하라는 안내가 여러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법체계는 실물증권을 전제로 증권에 대한 권리의무 관계를 규율하여 왔다. 실물증권은 무체물인 재산권을 유체물로 표창함으로써 마치 동산과 유사하게 재산권의 권리관계를 공시하는 수단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며, 관련 법률 또한 실물증권을 기준으로 하여 권리의 귀속 및 이전에 대하여 규정하여 왔다. 증권의 소유권 이전이나 담보권 설정도 증권 실물의 이전이 있어야 유효하게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물증권의 발행 및 보관, 운송에 많은 비용이 들고, 위조나 분실 등에 따른 분쟁 또한 빈번히 발생하여 왔다. 비상장회사의 경우 주식을 발행하고도 실물주권을 발행하지 않아 권리관계를 불명확하게 하고 관련 법률리스크를 야기하는 사례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자단기사채 발행 1117조원 넘어
이전에도 이러한 증권 실물 발행에 따른 비용 및 위험을 최소화하는 한편 증권거래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대안들이 있었다. 상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주권의 불소지는 가장 기본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채권에 대해서는 채권등록기관에 채권을 등록함으로써 증권 실물을 발행하지 않는 등록발행제도가 일찍부터 도입되어 실제로 많은 채권들이 등록 발행되어 왔다. 특히 2013년에 도입된 전자단기사채는 만기 1년 이하의 단기사채를 전자적 방식으로 발행 및 유통하는 것으로서 2018년 한 해 동안의 발행금액이 1117조원을 넘어서는 등 전자증권의 전면적 도입을 앞둔 테스트로서의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해 주었다.
증권의 무권화 제도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아마 증권의 예탁결제제도일 것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증권을 예탁해 두고, 증권을 양도할 때마다 실물로 교부하는 대신 당사자의 계좌 간 장부거래로 결제하는 예탁결제제도는 외형적으로는 전자증권제도와 매우 흡사하며, 특히 상장주식의 거래에 있어서 사실상 증권의 무권화와 동일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 제도는 기본적으로 실물증권이 발행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실물 발행된 증권을 예탁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하는 것이므로 실물증권을 발행하지 않음을 전제로 하는 전자등록제도와는 그 전제부터 다르다.
증권의 무권화 제도 통합 · 보완
전자증권법은 그동안 부분적으로 시행되어 왔던 증권의 무권화 제도를 통합 · 보완하여 증권의 실물 발행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증권의 발행인이 증권 실물의 발행에 갈음하여 전자등록기관에 증권을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전자등록에 의하여 예탁결제의 방법이든 실물 양도의 방법이든 유체물로 존재하여 유통되는 것을 전제로 한 증권이 전자문서에 의하여 관리되게 된 것이다.
전자등록법에 의하면, 전자증권의 소유권은 전자등록계좌부에 전자등록된 자가 적법하에 보유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전자등록된 증권을 이전하거나 질권의 목적으로 하는 경우 또는 이를 신탁하는 경우에도 전자등록계좌부에 전자등록하여야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전자등록계좌부의 기재를 선의로 중대한 과실 없이 신뢰하고 전자등록을 한 경우에는 그 권리를 적법하게 선의취득할 수 있도록 인정해 주고, 전자등록된 증권에 대해서는 실물발행을 금지함과 동시에 발행하더라도 이를 무효로 함으로써 전자등록계좌부에 대하여 전자증권에 대한 권리관계를 나타내는 강력한 공시수단으로서의 효력을 부여하고 있다.
전자등록된 자의 적법 보유 추정
이와 같은 전자증권제도의 시행에 대해서는 실물증권의 발행에 따른 비용 및 각종 위험의 감소, 증권거래의 편의성을 달성할 수 있다는 실제적인 효익을 달성함은 물론이고 예탁결제제도와는 달리 증권거래의 실체와 법률관계를 일치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전자등록에 의하여 증권의 발행 및 유통이 이루어짐으로써 증권거래에 대한 정보가 투명하게 관리될 것이라는 점 또한 기대된다.
한편으로는 우리 증권법에서 아직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증권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전자증권에 대하여 어떠한 법률문제가 앞으로 제기될 것인지 우려가 되는 면도 있다. 오랫동안 증권 실물의 존재를 전제로 확립되어 온 여러 학설 및 판례 또한 얼마나 빨리 전자증권 시대에 적응하고 변화할 것인지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다.
실무적으로는 시스템의 안정성 확보 및 오류 방지책의 마련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삼성증권의 주식배당 사고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든 업무처리가 전산시스템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현재의 금융시장에서는 사소한 오류가 커다란 파급효과와 투자자들의 막대한 손실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증권법도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전자등록된 증권의 수량 · 금액이 실제 발행분을 초과하는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 이를 해소하는 절차에 대하여 규정함으로써 투자자 보호와 전자등록 시스템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주식의 경우 오랫동안 예탁결제를 기준으로 이루어진 업무처리를 전자증권 시대에 맞게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례를 들어보면 현재 예탁된 주식의 경우 예탁된 주식의 공유자 즉, 실질주주를 나타내는 실질주주명부가 존재하고 실질주주명부에의 기재는 주주명부에의 기재와 같은 효력을 가진다.
별도의 실질주주명부 작성 안 해
그런데 전자증권법에 따르면, 상법에 따라 주식 발행회사가 작성, 보관하는 주주명부 외에 전자등록기관이 실질주주명부에 해당하는 별도의 주주 명세를 작성하지 않으며, 대신 발행회사가 전자등록기관에 소유자명세 작성을 요청 · 수령하여 이를 기초로 주주명부를 작성하게 된다. 전자등록계좌부상 등록된 권리자라 하더라도 아직 해당 권리자를 포함한 소유자명세가 발행회사에게 전달되지 않아 주주명부에는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일어날 수도 있으며, 이 경우 등록된 권리자가 발행회사를 상대로 어떠한 방법으로 권리행사를 하여야 하는지, 발행회사는 주주명부에 기재되지 않은 자를 전자등록되었다는 이유로 주식에 대한 권리자로 인정하여야 하는지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자증권의 도입으로 비용의 절감, 위험의 감소, 거래의 투명성 제고 등의 효과를 볼 수 있고 증권거래에 있어서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동안 부분적인 무권화 제도 및 예탁결제제도 등을 통하여 시행착오를 겪어온 우리 자본시장으로서는 전자증권 시대에 예상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잘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며, 법률가들 역시 실물을 전제로 한 전통적인 법관념에서 벗어나 전자증권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법제도를 확립,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심희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hjshim@jipy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