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북경통신] 쑨양의 도핑테스트 거부사건
[김종길의 북경통신] 쑨양의 도핑테스트 거부사건
  • 기사출고 2019.09.0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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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처분에 WADA 상소…CIS 최종 판정 주목

얼마 전 열린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박태환의 라이벌이던 중국의 수영스타 쑨양이 자유형 400미터와 200미터에서 모두 우승했다. 그러나 시상식때 해당종목에서 각각 2위와 3위를 한 호주의 맥 호튼과 영국의 던컨 스콧이 그와의 악수, 사진촬영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이들이 쑨양과의 악수와 사진촬영을 거부한 것은 쑨양의 도핑거부사건 때문으로 알려졌다. 쑨양의 도핑거부사건은 현재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IS)에서 심리중이며, 곧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관련된 구체적인 경위와 이슈를 살펴본다.

사건은 2018년 9월 4일에 일어났다. 국제도핑시험관리(International Doping Test and Management, IDTM)는 FINA(국제수영연맹)의 위임을 받아, 검사관 1명, 채혈보조원 1명, 검사보조원 1명을 파견했는데, 샘플채취과정에서 쑨양 측과 다툼이 발생했고, 결국 테스트 샘플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 대한 버전은 양측이 서로 다르다.

샘플 채취 후 쌍방간 충돌

우선 IDTM 검사관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검사인원이 쑨양의 자택에 밤 11시경 도착했는데, 집밖에서 1시간가량을 기다리게 하였다. 그 후 혈액 샘플 채취 후 쑨양은 검사인원들의 신분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였고, 쌍방간에 충돌이 있었다. 다툼은 새벽 3시까지 계속되었다. 쑨양의 모친 양밍은 경호원을 불러서 혈액 샘플병 1개를 망치로 깨트리게 했고, 검사관이 테스트 거부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나머지 혈액 샘플병을 내놓지 않자, 쑨양이 보고서를 찢어버리고, 혈액 샘플병을 빼앗았다.

이에 대한 쑨양 측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에 IDTM에서 보내온 검사관은 2017년 쑨양에게 이의신청을 받은 바 있어 악연이 있는 인물이다. 당시에 이의신청한 이유는 제대로 된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검사관이 데려온 2명은 IDTM의 자격 있는 요원이 아니라 자신의 친구들이며, 쑨양이 위임장과 신분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자, 검사관은 위임장과 신분증을 내보였으나, 나머지 2명은 위임장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신분증도 제시하지 못했다. 채혈보조원은 간호사자격증을 내놓았으나 간호사집업증은 내놓지 못했다. 중국의 관련 법규상 간호사집업증이 없으면 채혈 등 의료행위를 할 수가 없다.

'신분증 제시' 주장 엇갈려

이에 대하여, IDTM은 검사관이 쑨양에게 (1)FINA가 2018년도 샘플채취기관으로 IDTM을 임명하였다는 위임장, (2)IDTM의 직원증, (3)개인신분증을 제시하고, 채혈보조원의 경우에는 간호사자격증을, 검사보조원의 경우에는 개인신분증을 제시했다고 했다. 또 채혈보조원과 검사보조원은 모두 IDTM과 기밀유지약정을 체결하였고, IDTM의 웹사이트에 등록되어 있다는 것을 컴퓨터를 켜 보여주었다고 했다.

FINA는 이후 2018년 10월 5일 쑨양의 행위가 도핑거부에 해당한다고 통보하고, FINA 내에 설치된 도핑위원회(Doping Panel)에 이 사건을 회부하였다. 도핑위원회는 2018년 11월 19일 심리를 열고, 2019년 1월 3일 결정을 내렸는데, "진상이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이유로 쑨양의 도핑거부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도핑위원회는 심리시 쌍방이 제출한 증거자료를 받기만 했을 뿐, 상대방에게 그 증거에 대한 반대의견을 제시하게 하거나 증거조사를 하는 등의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핑위원회에서 쑨양은 '아슬아슬하게 승소(a close-runthing)'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FINA는 쑨양에게 경고 처분만을 내렸다.

FINA의 반도핑통제규정에 따르면, 도핑위원회의 결정에 대하여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IS)에 상소할 수 있고, CIS의 판정은 종국적 효력을 지닌다. 그리고 도핑위원회의 결정에 대하여 상소할 수 있는 당사자는 (1)선수 본인, (2)FINA, (3)선수 소속국가의 수영연맹, (4)IOC, (5)WADA(세계반도핑기구)이다.

WADA는 IOC가 1999년 11월 10일 캐나다 몬트리올에 설립한 기구로 반도핑의 연구개발, 교육, 보급 및 세계반도핑조례(World Anti-Doping Code)의 집행을 담당한다. WADA의 공헌 중 하나는 '검사 및 조사 국제기준(International Standard for Testing and Investigations, ISTA)'을 제정하여 도핑테스트의 기준을 설정해주었다는 것이다. FINA 도핑위원회의 결정에 대하여 선수본인과 FINA 모두 상소하지 않았으나, WADA에서 '격분하여' CIS에 상소를 제기했다.

경고 처분에 WADA가 상소

맥 호튼과 던컨 스콧을 비롯한 많은 수영선수들이 반발하는 데에는 쑨양 본인에 대한 것도 있지만, 혈액 샘플병을 망치로 깨트리면서까지 도핑테스트를 거부하고 방해한 쑨양에 대하여 겨우 경고라는 솜방망이처분을 내린 FINA라든지, 광주수영선수권대회까지 심리연기 요청이 있었다는 이유로 심리도 열지 않고, 잠정 출장정지조치도 내리지 않은 CIS에 대한 불만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쑨양의 입장에서는 CIS에서의 최종결과에 따라 자칫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다. 전망은 쑨양에게 그다지 밝지가 않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2009년부터 지금까지 10년간 WADA가 CIS에 상소한 66건을 분석해보면 WADA가 전부 승소한 경우가 65%, WADA가 일부 승소한 경우가 26%, WADA가 패소한 경우는 9%에 불과하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쑨양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10%도 되지 않는다.

둘째, 기존의 판례를 보면, 검사인원의 신분에 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도핑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 즉, 검사인원의 신분에 대하여 의문이 있거나 이의가 있으면, 도핑테스트는 받되 검사보고서에 그러한 이의사항을 기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볼 때, 쑨양이 도핑 검사인원의 신분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며 도핑검사를 거부한 것은 '정당한 사유'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쑨양이 검사관의 신분과 수권에 대하여는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고, 다만 보조인원들의 자격과 수권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쑨양에게 유리한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입증책임은 WADA에 있어

첫째, 입증책임은 WADA에 있다. WADA는 중재원들이 완전히 만족스럽게(comfortable satisfaction) 입증해야 한다.

둘째, 절차상 하자가 제기될 여지가 있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검사원은 도핑테스트를 거부하는 선수에게 도핑테스트 거부시에 어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지를 고지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쑨양사건의 경우 쌍방이 신분과 자격을 가지고 계속 다투었다는 내용만 있을 뿐, 이러한 사실을 검사원이 쑨양에게 고지하였는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므로 WADA에서 이 점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쑨양에게 유리한 결정이 내려질 여지도 전혀 없지는 않다.

김종길 변호사(법무법인 동인, jgkim@donginla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