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이면 애인을 옆자리에!
기왕이면 애인을 옆자리에!
  • 기사출고 2006.11.2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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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규 변호사]
무상으로 타인의 자동차를 얻어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무상동승자가 상해를 입은 경우 과실있는 운전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인데 이 때 배상범위는 어떠한지 여부가 문제됩니다. 자동차를 무상으로 얻어타는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사실에 기하여 동승자가 청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액이 감경될 여지가 있어, 통상적인 교통사고와는 좀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황태규 변호사
이는 자동차 보험금의 지급범위와 궤를 같이 하는 문제입니다. 아래에서 무상동승(호의동승)의 경우 손해배상액이 감경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법원은 "자동차의 단순한 동승자에게는 운전자가 현저하게 난폭운전을 한다든가, 그 밖의 사유로 인하여 사고발생의 위험성이 상당한 정도로 우려된다는 것을 동승자가 인식할 수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운전자에게 안전운행을 촉구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05. 9. 29. 선고 2005다25755 판결, 대법원 2001. 10. 12. 선고 2001다48675 판결)"라고 판시하여, 호의동승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바로 배상액의 경감을 인정하고 있지는 아니합니다. 즉 피해자가 사고차량에 무상으로 동승하였다가 사고를 당한 경우에 동행의 목적, 호의동승자와 동행자와의 인적관계, 피해자가 차량에 동승한 경위 등 여러 사정에 비추어 사고차량의 운전자에게 일반의 교통사고와 같은 책임을 지우는 것이 신의칙이나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매우 불합리한 경우에는 배상액을 감경할 사유로 삼을 수 있으나 사고차량에 단순히 호의로 동승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감경사유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대법원 1992. 11. 27. 선고 92다24561 판결).

그렇다면 어떠한 사정이 있어야 손해배상액의 감경이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동승자에게 신의칙상 주의의무를 인정하여 배상액의 경감을 인정한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동료 사원끼리 놀러 갔다 밤늦게 동료 사원이 운전하는 자동차의 조수석에 탑승하여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를 당한 사안에서, 피곤한 상태에서 운전하는 운전자가 안전운전을 하도록 주의를 촉구하고 중앙선을 침범한 채 반대차선으로 내리막길을 운전하지 않도록 적극 제지하지 아니한 잘못이 피해자(동승자)에게 있다고 보아 배상액의 30% 정도의 경감을 인정하였습니다(대법원 1994. 9. 9. 선고 94다32474 판결). 또한 운전자가 경험부족으로 운전이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사고 당시 가로등이 없는 야간에 국도상을 과속으로 질주하고 있어 사고 발생의 위험성이 예상되었다면 동승자로서는 운전자에게 속도를 줄이고 전방을 잘 살펴 진행하도록 주의를 환기시키고 안전운행을 촉구하는 등 조치를 취하여 사고발생을 미리 막아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한 채 과속을 제지하지 아니한 과실이 있다고 보아 배상액의 20% 정도의 경감을 인정하였습니다(대법원 1990. 11. 27. 선고 90다카27464 판결).

즉 배상액을 감액할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 실무상 감액비율은 대략 10% 정도에서 출발하여 운전자와 공동음주 후 난폭한 운행을 방임하였거나, 운전자가 무면허인 점을 알고 동승한 경우에는 30%까지 배상액을 감액하기도 합니다.

반면, 9인승 승합자동차가 내리막길을 내려가다가 약 80도 정도의 커브지역에 이르게 되자 원심력의 작용으로 순간적으로 중앙선을 약간 침범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아래쪽에서 올라오던 트럭의 왼쪽 앞부분과 충돌하게 된 사안에서, 승합자동차의 뒷자리에 타고 있던 피해자들이 운전자와 직장 동료, 친구의 관계에 있고 동승목적이 함께 놀러가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고경위에 비추어 단순한 동승자에 불과한 피해자들에게 운전자로 하여금 안전운행을 촉구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어 배상액의 경감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대판 1994. 9. 13. 선고 94다15332 판결).

이러한 대법원 판례의 태도를 종합해보면, 타인이 운전하는 차량에 동승하였다가 운전자의 과실로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피해를 입은 동승자가 운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무상동승 또는 호의동승이라는 이유만으로 바로 손해배상액을 감액당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배상액의 경감을 위하여는 동승자가 운전자의 안전운행을 촉구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게을리 한 사정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자동차 보험회사에서 사고 자동차에 무상으로 호의동승했다는 이유만으로 치료비 등 손해배상액 중 일정 비율을 감액하여 지급하겠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해오는 경우 무조건 이를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사고발생경위 등을 잘 살펴서 배상액이 감액당할만한 사정이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통념이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공동생활에 있어 요구되는 주의를 게을리한 바 없다면, 자신의 정당한 권리가 줄어들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옆자리에 애인이 앉아있다가 다쳤다면 적어도 운전자가 손해배상청구소송에 휘말리지는 않을 것이고 따라서 배상액의 감액을 따질 필요도 없겠지요. 기왕이면 애인을 옆자리에!

법무법인 세창 황태규 변호사(tkhwang@sechang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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