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한 살때 교통사고로 5년후 언어장애…시효 소멸 판정 신중해야"
[손배] "한 살때 교통사고로 5년후 언어장애…시효 소멸 판정 신중해야"
  • 기사출고 2019.08.0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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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사고 무렵 장애 발생 여부 알 수 없어"

한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한 유아가 5년 뒤 언어장애, 실어증 등의 진단을 받았다. 보험사는 피해자 또는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했다고 항변했으나, 대법원은 사고 무렵 뇌 손상으로 인해 장애가 발생할지 여부에 대해 확실하게 알 수 없었을 것으로 보여 손해를 알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시효 소멸 판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7월 25일 언어장애 등의 진단을 받은 김 모(15)군이 악사손해보험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상고심(2016다1687)에서 이같이 판시, 김군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김군은 1세 4개월이던 2006년 3월 25일 오후 7시 5분쯤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 비상등을 켠 채 정차 중이던 아버지의 아반떼 승용차 뒷좌석에 어머니와 함께 탑승하고 있었는데, 이 모씨가 운전하던 뉴클릭 승용차가 아반떼 차량을 들이받아 김군과 어머니가 차량 밖으로 튕겨나가 도로 위에 떨어지면서 머리 부위 등을 부딪혀 어머니는 숨지고 김군은 외상성 경막하출혈 등의 상해를 입었다.

김군은 사고 직후 약간의 발달지체 등의 증상을 보이다가 계속 치료를 받아 증상이 호전되기도 했으나, 2007년 4월경부터 경련이 발생하고 1년 후인 2008년 1월경에는 전신경련이 발생한 이후 발달단계가 현저히 퇴행하는 양상을 보였다. 사고 후 5년이 지난 6세 때인 2011년 11월경 언어장애와 실어증 등의 진단을 받자 악사손해보험을 상대로 1억 17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김씨의 아버지는 이에 앞서 2005년 5월 악사손해보험과 아반떼 차량에 관하여 기명피보험자를 자신으로 하여 자동차종합보험계약을 체결했다. 악사손해보험은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맞섰다.

1심 재판부는 손해배상청구권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판단해 "보험사가 1억 1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는 사고가 발생한 2006. 3. 25.에 사고로 인한 손해와 가해자를 알았다고 할 것인데, 원고가 그로부터 3년이 경과한 2012. 3. 21.경에야 피고에게 책임보험금을 포함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실은 다툼이 없으므로,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가 완성되어 소멸하였다"며 김군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소멸시효가 시작되고, 가해행위와 이로 인한 현실적인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불법행위의 경우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안 날은 단지 관념적이고 부동적인 상태에서 잠재하고 있던 손해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는 정도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러한 손해가 그 후 현실화된 것을 안 날을 의미한다"고 전제하고, "이때 신체에 대한 가해행위가 있은 후 상당한 기간 동안 치료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증상이 발현되어 그로 인한 손해가 현실화된 사안이라면, 법원은 피해자가 담당의사의 최종 진단이나 법원의 감정결과가 나오기 전에 손해가 현실화된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인정하는 데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고, 특히 가해행위가 있을 당시 피해자의 나이가 왕성하게 발육 · 성장활동을 하는 때이거나, 최초 손상된 부위가 뇌나 성장판과 같이 일반적으로 발육 · 성장에 따라 호전가능성이 매우 크거나(다만 최초 손상의 정도나 부위로 보아 장차 호전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경우는 제외한다), 치매나 인지장애 등과 같이 증상의 발현 양상이나 진단 방법 등으로 보아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등의 특수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고 밝혔다.

이어 "사고 직후에는 원고에게 약간의 발달지체 등의 증상이 있을 뿐 2011. 11.경의 진단명인 '언어장애나 실어증', 감정 결과인 '치매, 주요 인지장애'와 직접 관련된 증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고, 이후 치료가 계속되면서 발달지체 등의 증상이 호전되기도 하고 또 여러 차례의 경련이 발생하면서 그러한 증상이 악화되기도 하였으며 이후 위 병명과 관련된 증상이 점차 분명하게 드러난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치료경과나 증상의 발현시기, 정도와 함께 기록에 나타난 사고 당시 원고의 나이, 최초 손상의 부위와 정도, 최종 진단경위나 병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사고 직후에는 '언어장애나 실어증', '치매, 주요 인지장애'로 인한 손해가 현실화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나아가 원고나 법정대리인으로서도 그 무렵에는 혹시라도 장차 상태가 악화되면 원고에게 어떠한 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짐작할 수 있었을지언정 뇌 손상으로 인하여 발생할 장애의 종류나 정도는 물론 장애가 발생할지 여부에 대해서조차 확실하게 알 수 없었을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따라서 "이러한 특수한 사정에 관하여 충분하게 심리하지 않은 채 바로 원고가 사고 직후 손해가 발생한 사실을 알았다고 단정한 원심에는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김군은 1심 변론 진행 중인 2014년 1월경 실시된 신체감정에서 '치매, 주요 인지장애'의 진단을 받았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