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 변호사의 북경통신] 대규모 시위 불러온 홍콩의 '送中條例'
[김종길 변호사의 북경통신] 대규모 시위 불러온 홍콩의 '送中條例'
  • 기사출고 2019.07.0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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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범조례 수정안에서 '중국 배제조항' 삭제하자 반발

홍콩에서 지난 6월 9일 100만명이 길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고, 1주일 후인 6월 15일에는 200만명이 길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 원인은 홍콩특구정부가 '송중조례(送中條例)'로 불리는 범죄인인도 관련 법률의 조문을 수정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시위에 놀란 홍콩특구정부는 6월 9일의 100만명 시위 이후 송중조례의 수정법안을 잠정 유보하겠다고 선언했고, 6월 15일 200만명 시위 이후 결국 수정법안을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김종길 변호사
◇김종길 변호사

결국 수정법안 철회

송중조례, 즉 "중국으로 송환하는 법률"이라고 불리는 이 법률의 정식 명칭은 '도범조례(逃犯條例)'이며 '인도조례(引渡條例)'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상적으로 '범죄인인도협약', '범죄인인도조약'과 같이 범죄인인도로 부르는데,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범죄인을 인도하는 것에 관한 법률이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의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르면 홍콩은 중국의 불가분의 일부분이고 중국의 주권이 미치는 지역인데, 왜 중국과 홍콩간의 범죄인인도가 이렇게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된 것일까?

그 배경을 이해하려면 우선 '일국양제(一國兩制)'에 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국양제는 중국 정부가 등소평 집권시기에 대만, 홍콩, 마카오를 통일하기 위하여 마련한 기본정책이다. 그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1)중국은 하나의 주권국가이지만, 한 국가 영토 내에 사회주의제도를 시행하는 지역과 자본주의제도를 시행하는 지역을 두어, 두 개의 제도가 존재하도록 할 수 있다. (2)1997년 중국이 영국으로부터 홍콩의 주권을 회수한 이후에도, 홍콩은 향후 50년간 현상 유지하며 항인치항(港人治港), 즉 홍콩인이 홍콩을 통치하도록 한다. (3)홍콩 정부는 행정, 사법, 입법의 모든 권리를 가지며, 북경 정부는 외교(주권에 관련된 사항에 한함)와 국방(대만에 대하여는 국방권까지 부여하겠다고 하였음)에 대하여만 권한을 가진다. 그러므로 외교와 관련하여 주권과 관련된 유엔엔 북경 정부가 단독으로 가입하지만, 관세에 관한 WTO라든지, 스포츠에 관한 IOC, FIFA 등에는 홍콩이 대륙과 별도로 가입한다. (4)사법의 측면에서 홍콩은 중국과 별도의 입법기관, 별도의 사법기관(종심법원도 홍콩에 별도로 설치되어 있음)을 두어, 사법적으로는 별개의 국가와 같다. 그러므로 범죄인인도, 사법공조 등은 서로 다른 나라간의 경우와 동일하게 취급된다.

6개월 이상 거주하면 송환 안 해

중국과 홍콩의 범죄인인도와 관련한 연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58년 청나라 정부와 영국 정부는 '천진조약'을 체결하는데, 제21조에서 "홍콩 정부는 반드시 홍콩으로 도망친 중국 범죄인을 청으로 송환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홍콩 정부는 '화인이제회적조례(華人移提回籍條例)'를 제정하는데, 12개월 중 6개월 미만을 홍콩에 거주한 중국 국적 범죄인은 재판을 거쳐 청나라 정부에 송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즉, 중국인이라 하더라도 1년 중 절반 이상을 홍콩에 거주하였으면 본국으로 송환하지 않았다.

홍콩 반환을 위하여 중국 정부와 영국 정부가 협상할 때, 대륙과 홍콩은 법원 관할에 관하여 속지주의를 채택하기로 합의했다. "범죄인이 홍콩인이건 내지공민이건 홍콩에서 범죄행위를 저지르면 홍콩형법에 따라 홍콩의 검찰과 법원에서 수사와 재판을 한다. 범죄행위가 내지에서 발생하면 홍콩인이건 중국인이건 내지형법에 따라 중국의 검찰과 법원에서 수사와 재판을 한다." 즉, 홍콩에서 발생한 중국인의 범죄행위에 대륙 정부는 재판관할권이 없고, 대륙에서 발생한 홍콩인의 범죄행위에 홍콩 정부는 재판관할권이 없다.

1992년 도범조례 제정

홍콩에서는 이러한 중국 정부와의 합의를 기초로 1992년에 도범조례를 제정하였는데, 바로 이번에 수정안이 발의된 그 조례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오직 사법제도, 형벌제도, 인권상황이 일정한 기준에 도달한 정부와만 범죄인인도 관계를 건립한다. 설사 홍콩의 주권이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이 인권보장 요건은 여전히 적용된다." 이 조항의 의미는 대륙에서 아직 사법제도가 완비되지 않았으므로, 홍콩은 대륙에 범죄인인도를 하지 않고 1997년 주권반환 이후에도 여전히 홍콩은 대륙에 범죄인인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 측도 협상과정에서 중국은 범죄인인도 등 관련 법률이 미비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법공조와 협력은 민사와 상사분야에 한정하는데 동의하였다.

1997년 이후 중국과 홍콩은 범죄인인도협약을 체결하지 않았고, 필요한 경우 각자 자신의 법률과 절차에 따라, 국외추방의 방식으로 상대방에 범죄인을 인도하는데, 그동안 중국 경찰이 홍콩 경찰에 국외추방 방식으로 인도한 범죄인은 17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다만, 홍콩에서 중국에 국외추방 방식으로 넘겨준 범죄인은 아주 적은 숫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만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 계기

이번 송중조례 사태는 2018년 2월 17일 대만에서 발생한, 홍콩인이 홍콩인을 살해한 살인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홍콩 주민으로 연인관계인 천통자(陳同佳)와 판샤오잉(潘曉潁)은 대만에 같이 여행을 갔다가 판샤오잉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였다는 것을 알고 천통자가 판샤오잉을 목졸라 죽였다. 그리고 천통자는 판샤오잉의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넣어 역 근처의 풀밭에 버리고 혼자서 홍콩으로 돌아왔다.

판샤오잉의 가족들은 그녀와 연락이 닿지 않자 홍콩 경찰에 신고했고, 홍콩 경찰은 천통자가 홍콩에 돌아온 후, 판샤오잉의 카드로 현금을 인출한 것을 가지고 절도죄로 구속한 후, 돈세탁죄로 기소하였다. 법원은 그에게 29개월의 유기징역형을 내렸다. 그런데 천통자에게 적용된 죄명은 살인죄가 아니라 돈세탁죄였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원래 천통자는 홍콩 경찰의 심문과정에서 자신이 판샤오잉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홍콩사법당국은 그를 살인죄로 처벌할 수가 없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중국과 홍콩은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홍콩이 아닌 중국지역에서 발생한 범죄행위에 대하여는 중국인이건 홍콩인이건 홍콩 정부가 사법관할권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홍콩의 법률상으로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분이므로 '홍콩이 아닌 중국'으로 보게 된다. 그리하여 대륙에서 발생한 형사사건에 홍콩이 사법관할권을 갖지 못하는 것처럼 대만에서 발생한 형사사건에도 홍콩은 사법관할권을 갖지 못한다.

그리고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천통자를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는 정부는 대만 정부이다. 그러나 대만과 홍콩은 범죄인인도협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아서 대만은 홍콩에 인도를 요구할 수도 없고, 홍콩의 도범조례에 의하더라도 대만(중국, 마카오 포함)에 홍콩인을 인도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살인을 저지른 것이 분명한 천통자가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게 되는 '법률의 허점'이 나타난 것이다.

살인죄 대신 돈세탁죄로 처벌

홍콩특구당국은 이러한 법률상의 허점을 보완한다는 명목으로, 2019년 2월 도범조례에 대한 수정안을 내놓았는데, 수정안의 내용이 문제였다. 바로 중국, 마카오, 대만을 범죄인인도 적용에서 배제한다는 조항을 삭제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앞으로 중국 정부 당국이 요구하면 누구든지 중국으로 강제인도될 수 있다는 우려에 홍콩인들이 반발하고 시위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3월 31일 제1차시위 때는 1.2만명이 참가했으나, 4월 29일 제2차시위 때는 13만명이 참가하고, 6월 9일의 제3차시위 때는 100만명, 6월 15일의 제4차시위 때는 200만명이 참가하여 참가자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외에 해외 각국에서도 송중조례 수정법안이 발효되면, 홍콩에 거주하는 자국국민이나 홍콩을 여행하는 자국국민이 체포된 후 중국에 인도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EU는 정식으로 홍콩 정부 당국에 항의를 제기하고,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정부에서도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통자 사건의 당사자인 대만 정부는 송중조례 수정안이 인권을 침해하고, '하나의 중국'을 기도한다는 점에서 수정법안 및 그에 기한 범죄인인도에 반대한다는 뜻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EU, 미, 영, 캐나다 우려

중국 정부와 홍콩 정부는 천안문 사태나 우산혁명 때 그러했듯이, 시위에 대하여는 강제진압하는 방식을 취하였지 타협하는 방식을 취하지는 않아왔다. 이번 송중조례 사태에서 최초로 시위대의 요구에 굴복하여 송중조례 수정안을 철회했다. 아마도 시기적으로 천안문 사태(1989년 6월 4일) 30주년과 미중 무역전이 격화되는 민감한 시기여서 더 이상의 혼란을 원치 않기 때문에 내린 부득이한 조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송중조례 사건은 홍콩의 민주화 나아가 중국의 정치개혁에 의미 있는 사건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김종길 변호사(법무법인 동인, jgkim@donginla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