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명품 밀수' 한진 모녀 집행유예
[형사] '명품 밀수' 한진 모녀 집행유예
  • 기사출고 2019.06.13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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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법] "실형 선고할 정도로 중한 사건 아니야"

대한항공 여객기를 이용해 명품 등을 밀수입한 혐의로 기소된 조현아(45)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 전 부사장의 어머니인 이명희(70) 일우재단 이사장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법정구속을 면했다.

인천지법 오창훈 판사는 6월 13일 관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부사장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480만원, 사회봉사 80시간, 추징금 6300여만원을 선고하고, 압수된 시가 2600여만원 상당의 물품을 몰수했다(2019고단12, 625).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 이사장에겐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과 벌금 700만원, 사회봉사 80시간, 추징금 3700여만원을 선고했다. 또 이들 모녀의 밀수 범죄에 가담한 대한항공 직원 최 모(57), 차 모(39)씨에 대해서는 각각 선고유예를, 양벌 규정에 따라 함께 기소된 대한항공 법인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오 판사는 특히 양형과 관련해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 주목을 받았다.

오 판사는 먼저 "피고인들이 대기업 회장의 가족이라는 지위에 있음을 기화로 지극히 개인적인 소비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기업 자산을 사적으로 유용하고, 직원들을 범행의 도구로 전락시켰다"며 "피고인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의 초점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형량을 정할 때 피고인들의 행위가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다는 사정을 완전히 도외시할 수 없겠지만, 형벌에 관한 형사법의 기본원칙인 책임주의 원칙은 '범죄행위자에 대한 비난가능성'보다는 '범죄행위 자체에 대한 비난가능성'을 더 중시할 것을 요구한다"며 "사회적 강자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사회적 역할이 크다는 이유로 약한 처벌에 그쳐서는 안 되는 것처럼 범죄행위의 내용과 경중을 고려함이 없이 엄벌 일변도로 나가서도 안 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피고인들이 세관장에게 신고하지 않거나 허위신고하고 물품을 수입한 행위에 대하여 관세법 위반죄로 기소된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의 사회적 지위 자체를 양형요소로 고려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범죄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양형을 정함이 옳다는 것이 오 판사의 의견이다.

오 판사는 조 전 부사장에 대해, "피고인이 일부 고가의 물품을 밀수입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의류, 화장품, 어린이 의류, 장난감, 책, DVD, 문구류, 자수용품, 주방용품, 장식용품 등 일상생활용품이고(밀수입 1회당 50만원 미만의 범행이 전체 범행 중 82.8%를 차지하고 있다), 피고인은 자신이 소비할 의도로 밀수한 것이지, 밀수한 물품을 국내시장에 유통하여 판매차익을 남기고 유통질서를 교란시킬 의도로 범행을 한 것이 아니다"고 지적하고, "피고인이 범죄에 상응한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이 사건이 실형을 선고할 정도로 중한 사건은 아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이사장에 대해서도, "허위신고범행은 품목을 허위신고 한 것이 아니라 수입자와 납세의무자만을 허위신고한 것이어서 관세의 징수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았고, 대한항공에 관세 상당액 전액을 변제하였다"며 "피고인들이 추징금에 상당한 금액이 입금된 통장을 수사기관에 스스로 제출하여 추징보전처분에 협조하기도 한 점 등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오 판사는 또 피고인들이 직원들을 인격을 가지고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목적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마음대로 해도 좋은 도구적 존재로 취급했다는 문제와 관련, '피고인들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자기반성, 기업 내에서 법규를 준수하려는 노력과 이를 감시하는 제도의 정착, 강자의 횡포에 당당히 맞서려는 용기' 등 기업과 사회 내의 시스템을 통해 해결함이 타당하다고 지적하고,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이 사건에서 직원들은 피고인들이 저지른 범죄행위의 피해자가 아니고, 범죄행위의 공범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직원들의 처지와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해 사회봉사명령을 부가하기로 한다"고 사회봉사명령을 부가한 이유를 설명했다. 

오 판사는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조 전 부사장과 이 이사장이 개인적으로 소비할 물품을 해외에서 구매하여 국내로 반입하는 행위는 국내외 항공운송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피고인의 '업무에 관하여' 한 행위가 아님이 명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조 전 부사장은 2012년 1월 8일경 해외 유명브랜드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시가 약 1,050,300원 상당의 여성용 신발 1켤레를 구매한 후 대한항공 뉴욕 지점으로 배송시키고, 뉴욕 지점 직원은 물품 수령 직후 대한항공 여객기에 실어 2012년 1월 중순경 국내로 반입시켰다. 이어 이메일을 통해 이 물품이 국내에 반입된다는 사실을 고지받은 대한항공 인천공항 수하물운영팀 직원인 최씨, 대한항공 직원으로 소속 부서와 무관하게 조 전 부사장의 개인비서 업무를 담당한 차씨가 회사 직원들을 동원하여 사전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에서 직접 수령하여 세관 신고 없이 입국장 밖으로 반출한 후 대한항공 데스크 또는 사무실에 보관했다가 운전기사 등을 통해 조 전 부사장에게 전달했다. 조 전 부사장은 이를 비롯하여 2018년 5월까지 203회에 걸쳐 같은 방법으로 시가 8900여만원 상당의 물품을 세관장에게 신고하지 않고 해외에서 국내로 밀수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추징금은 조 전 부사장이 밀수입한 물품 시가에서 몰수된 물품 시가를 뺀 금액이다.

이 이사장은 2013년 5월경 대한항공 회장 비서실 직원에게 대한항공 뉴질랜드 지점장을 통해 뉴질랜드 초유를 구매하도록 지시, 이 비서실 직원이 뉴질랜드 지점장에게 뉴질랜드 초유를 국내로 배송해달라고 요청하여 뉴질랜드 지점 직원이 그 무렵 대한항공 여객기에 시가 103,007원 상당의 뉴질랜드 초유를 실어 국내로 반입하고, 이메일을 통해 이 물품이 국내에 반입된다는 사실을 고지받은 최씨가 회사 직원들을 동원하여 사전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인천공항에 도착한 대한항공 여객기 승무원으로부터 직접 수령하여 세관 신고 없이 입국장 밖으로 반출한 후 대한항공 데스크 또는 사무실에 보관했다가 비서실 직원과 운전기사 등을 통해 이 이사장에게 전달했다. 이 이사장은 이러한 방법으로 2018년 3월까지 46회에 걸쳐 시가 3700여만원 상당의 물품을 해외에서 국내로 밀수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이사장은 또 서울 성북구 평창동 자택에 비치할 소파와 철제가구 등 3500여만원 상당의 물품을 프랑스 파리 등으로부터 국내로 수입하면서 대한항공 직원을 통해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담당 관세사로 하여금 상품의 수입자와 납세의무자를 '대한항공'으로 허위신고하게 한 혐의도 받았다.

법무법인 광장이 조 전 부사장과 이 이사장을 변호했다. 최씨와 차씨, 대한항공은 법무법인 화우가 변호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