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등장과 함께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혐오표현'의 문제가 막 지나간 5 · 18을 계기로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 방안이나 규제의 필요성은 그간 각종 세미나와 연구논문 및 보고서의 단골 소재로 등극했지만, 아직까지 직접적인 규제 법률은 도입된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법 개정 시도는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대표적으로 2018년에는 온라인상의 혐오표현을 직접적인 규제 대상으로 하는 법안 2건이 발의되었다. 먼저 부가통신사업자가 '혐오 · 차별 · 비하 표현을 내용으로 하는 정보'를 차단할 수단을 제공하고, 해당 정보의 유통 여부를 모니터링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되었고, 잇따라 '인종, 지역, 성별, 신체적 조건 등에 대한 차별적 · 모욕적 발언'을 불법정보의 유형으로 명시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또한 발의되었다.
그러나 위 2건의 개정안은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에 부딪치기도 했고, 의사과정상 대안반영폐기되거나 철회됨에 따라 결국 국회에서도 활발히 검토, 논의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형량 가중 양형인자로 추가
혐오범죄에 대한 법제도 차원의 대응 중 유의미한 것으로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최근 명예훼손범죄 양형기준에 형량을 가중할 수 있는 양형인자로서 '피해자에 대한 보복 · 원한이나 혐오 또는 증오감에서 범행을 저지른 경우'를 추가한 것이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왜일까?
오프라인이 지배하던 세상에서는 혐오표현은 기껏해야 국지적인 세력을 갖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시공간의 제약이 없어지고, 누구나 인터넷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현대에는 엄청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
과거에는 개인적인 체험과 반감으로 종결되었던 것이 이제는 한 번의 게시글 업로드만으로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받으면서 혐오에 대한 지지와 정당화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방식으로 온라인상 집결한 다수가 소수자에게 무차별적인 언어적 폭력을 가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즉, 불특정 다수에게 아주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군중심리를 형성하고, 참여자 사이에 신조어 등 언어적 습관으로 정착되어버리는 경우도 많다는 온라인상 표현의 특성이 혐오의 조직적 확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익명표현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에 포함
이와 같은 사이버공간의 그늘은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소통의 장과 정확히 같은 특성을 공유한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익명표현의 자유 역시 표현의 자유에 포함되어 있음을 인정하면서 언급한 것처럼, 익명성은 현실 공간에서의 경제력이나 권력에 의한 위계구조를 극복하여 계층 · 지위 · 나이 · 성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다양한 계층의 국민 의사를 평등하게 반영하여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되게 한다(헌법재판소 2012. 8. 23. 2010헌마47).
더욱이 전통적인 정보수집원인 매스미디어는 본질적으로 검열과 통제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데 반해 이에 대항하는 온라인상의 소통과 공론의 장에서는 훨씬 다양한 정보가 자유롭게 오고 간다는 점에서, 온라인 공간에서의 표현은 개인의 자아 표출이나 시민으로서의 정치참여의 긴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온라인의 특성으로 인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존엄을 훼손하는 반사회적 또는 반인륜적 표현들이 여과 없이 유통되고 있다. 이로 인해 혐오표현의 표적이 되는 소수자 집단이 엄청난 정서적 ·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며, 사회가 함께 극복해야 하는 당면과제가 되었다. 다만 그 접근방식에 있어서 선제적 규제의 방식을 취하는 것이 적합한가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헌재가 제시한 해악의 해소 원리
헌법재판소는 과거 특정한 표현의 해악에 대하여 비교형량을 동원하여 판단하지 않고 그 자체에 대해 절대적인 가치평가를 한 적이 있다. 바로 음란물이 그 대상이 되었는데, 음란물을 "인간존엄 내지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표현으로서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 뿐 전체적으로 보아 하등의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이라고 풀이하면서, 시민사회의 자기교정기능이나 시장의 경쟁메커니즘에 의하여서도 해악이 해소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헌법재판소 1998. 3. 20. 95헌가16).
그러나 95헌가16 결정은 2009년에 이르러 헌법재판소에 의해 변경되었다. 헌법재판소는 과거에 제시한 의견을 번복하며 "일단 표출되면 그 해악이 처음부터 해소될 수 없거나 또는 너무나 심대한 해악을 지닌 음란표현이 존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표현의 자유에 의하여 보호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펼쳤다(헌법재판소 2009. 5. 28. 2006헌바109, 2007헌바49, 57, 83, 129 병합).
결국 헌법재판소는 표현이 갖는 해악이 아무리 중대하더라도 국가의 인위적 개입을 통하여 1차적으로 보호가치 있는 표현을 선별할 것이 아니라, 모든 표현은 가치가 있다는 전제 하에서 사상의 자유시장 내에서 경쟁에 따라 도태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시각을 정립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때 특정한 표현에 대한 헌법적 보호의 한계에 관해서는 물론 과잉금지의 원칙에 따라 별도의 판단이 이루어질 것이며, 특히 법익의 균형성 측면에서 표현으로 인한 실질적인 해악이 구체적으로 나타났는가 등이 고려될 것이다.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를 찬성하는 측은 혐오표현의 광범위한 파급력에 주목한다. 혐오표현에서 시작되는 차별행위나 인권의 심대한 침해 등을 예방하기 위한 측면에서라도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반대론에서는 혐오표현의 범위 자체가 명확하지 않으며 표현의 대상이 된 소수자 집단 전체가 해악을 입는다는 것은 지나치게 막연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규제 찬성 vs 반대론
온라인상에서 혐오의 감정과 표현은 동태적으로 형성, 확산된다. 단순한 감정이나 의견의 표출을 불법적인 것으로 치부할 경우 정당한 의견 제시마저도 망설여짐에 따라 위축효과가 발생하기 쉬우며, 오히려 반감이 배가되어 사회 통합을 더욱 해치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혐오표현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은데, 이에 해당한다는 것만으로 불법성을 추단하여 정보로서 유통될 가치가 없다고 취급하는 것은 규제의 타당성과 실효성 양 측면에서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 방법으로는 질서 위주의 사고에 입각한 규제보다는 보다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특히나 계층간의 갈등 등 사회 구조적인 원인에서 발생하는 문제인 만큼, 이를 근절하기 위한 대응책도 의식 개선과 교육, 반차별 정책을 비롯한 다각도의 시도가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형사범죄화 또는 정보통신 심의와 같은 규제수단을 혐오표현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수준보다는 더욱 세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표현의 장을 통한 자정작용과 인터넷 생태계의 자율규제에 모든 문제의 해결을 맡기기 어렵다면, 적어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금지되는 혐오표현의 범위를 구체적인 해악 발생이 임박한 경우로 한정하여 규명할 필요가 있다. 향후 혐오표현에 대한 논의가 규제의 필요성 또는 적합성을 주제로 한 찬반 토론의 반복에 그치지 않고, 온라인의 특수성과 표현의 자유의 증진을 함께 고려하면서도 실효적인 문제해결을 도모하는 생산적인 논의로 발전해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김유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eugene.kim@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