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예절과 사법개혁
법정예절과 사법개혁
  • 기사출고 2004.06.2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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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1일 오후 2시.

사법개혁위원회 15차 전체회의가 열린 대법원 회의실은 변호사나 검사들 중에서 법관을 임용하는 법조일원화의 도입에 대해 논의하는 위원들의 열기로 넘쳐나고 있었다.

◇김진원 기자
사개위는 다음날 보도자료를 내고 전면적 법조일원화를 지향하기로 했으며, 2012년까지 신임 법관의 50% 이상을 5년 이상 경력의 변호사등 중에서 충원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경우처럼 법조 경력과 사회 경험을 함께 갖춘 나이도 꽤 된 경력 법조인을 법관으로 임명하겠다는 법관임용방식의 일대 전환을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21일 사개위가 열리고 있던 비슷한 시각.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1백여m 떨어져 있는 변호사회관 1층에선 '바람직한 법정예절'을 놓고 판사와 검사, 변호사들 사이에 열띤 공방이 펼쳐지고 있었다.

얼핏보면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두 행사를 다시 끄집어 내 소개하는 이유는 실은 시간적인 우연의 일치 이상의 공통된 요소가 그 속에 들어 있다는 소견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이후 계속되고 있는 사법개혁 논의는 ▲법조일원화 ▲로스쿨 도입 ▲대법원의 구성과 기능 ▲국민의 사법 참여 등 다루는 논의 과제 하나하나가 메가톤급의 내용을 담고 있다.

내용만으로도 개혁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은 상황인데, 이번에 발표된 법조일원화처럼 논의가 제각각 결실을 맺어 그 결과대로 시행되게 된다면 사법제도의 혁명적인 변화가 뒤따를 것임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사개위가 논의하는 과제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할수록 지난 21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마련한 법정예절연찬회에서의 토론 장면이 사개위 회의 장면과 오버랩되며 더욱 또렷하게 떠오른다.

"변호사가 법정에 들어올 때 재판부를 향해 인사하는 게 좋아 보인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재판부가 입정하면서 방청석 등을 향해 인사하는 것은 어떨까요. 외국엔 그렇게 하는 곳도 있다고 하던데요."

"검사가 법복을 착용하면, 변호사도 법복을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법정이 뒷편에 많고, 엘리베이터가 없어 피고인이나 당사자, 방청객들은 몇층씩 되는 계단을 오르 내려야 합니다. 잘못된 것 아닌가요."

"무죄가 추정되는 피의자 신분인데 경찰이나 검찰에서 몇시간씩 접철의자에 앉아 조사를 받자니 불편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사개위 논의와는 외형상 비교도 안되는 작은 소재들이지만 변호사들의 문제 제기엔 진지함을 넘어 숙연함까지 배어있었다.



이어지는 판사와 검사의 발언도 진지하기만 했다.

"가급적 재판을 부드럽게 하려고 웃어보기도 했는데 당사자들에겐 오히려 안 좋다고 하더군요. 어느때 판사가 웃었는냐를 분석하며 유, 불리를 따져보려 하나 봅니다."

"(변호사가) 증인에 대해 모욕적인 언사를 써가며 고압적으로 신문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또 증인으로 나온 고소한 피해자의 부도덕성을 부각하기 위한 신문 등도 적절하지 않지요."

결론부터 말하면 사개위의 논의 등을 통한 큰 틀의 개혁도 필요하고, 법정예절 연찬회와 같은 시간을 갖는 것도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생각이다.

법을 바꾸고 제도를 뜯어고쳐 틀 자체를 바꾸어야 할 개혁 과제가 적지 않은 것 이상으로, 가까운 주변에서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고쳐가야 할 개선의 대상 또한 엄청나게 많은 게 사법의 현실로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매일 법정을 드나드는 변호사나 당사자 등 사건 관계인들에겐 거창한 주제의 사법개혁 논의에 앞서 법정 엘리베이터의 증설과 같은 개선이 더욱 절실할 지 모른다.

법원과 검찰, 변호사는 늘 찾아서 고치고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과 조사실 주변의 작은 개혁에 사법개혁 이상의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얘기하고 싶다.

본지 편집국장(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