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침해소송에서 승소해도 손해배상액이 미미하여 특허를 받아도 소용없다는 '특허무용론'이 제기된 지 이미 오래이다. 손해배상을 통한 궁극적 권리구제에 대한 기대 부족으로 지식재산권에 대한 가치인식이 저하되고, 투자 감소 등 악순환이 반복되므로, 실효성 있는 손해배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7월 9일부터 시행
이에 작년 12월 7일 국회는 특허법 및 부정경쟁방지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개정 법률안을 가결했고, 위 개정법은 2019. 7. 9. 시행을 앞두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관련 규정은 2019. 7. 9. 이후 최초로 특허권이나 영업비밀 침해행위가 발생한 경우부터 적용된다.
개정법에 따르면, 특허권이나 영업비밀 침해행위가 '고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손해로 인정된 금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법원이 배상액을 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고의침해가 인정될 경우, 법원은 3배의 범위 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결정함에 있어서, (1)침해행위를 한 자의 우월적 지위 여부, (2)고의 또는 손해 발생의 우려를 인식한 정도, (3)침해행위로 인하여 특허권자가 입은 피해 규모, (4)침해행위로 인하여 침해한 자가 얻은 경제적 이익, (5)침해행위의 기간 · 횟수 등, (6)침해행위에 따른 벌금, (7)침해행위를 한 자의 재산상태, (8)침해행위를 한 자의 피해구제 노력의 정도를 고려하여야 한다.
미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결정시 고려되는 9개의 Read Factors와 위 개정법상 고려요소 8개는 비슷하나 차이점도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에서는 "침해자가 타인의 특허를 알았을 때, 특허범위를 분석하여 비침해 또는 무효라는 선의의 신념을 형성하였는지(whether the infringer, when it knew of the other's patent protection, investigated the scope of the patent and formed a good-faith belief that the patent was invalid or not infringed)"를 중요한 고려 요소로 보고 있으나, 금번 개정법에 이러한 내용까지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에서 위 고려요소는 한국의 개정법상 '고의 또는 손해 발생의 우려를 인식한 정도'라는 고려요소를 통해 함께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
고의침해 인정 54%로 증가
2016년 Halo v. Pulse 대법원 판결을 통해 고의 판단 요건 및 증명 책임의 정도가 완화되었다. PwC 2018 Patent Litigation Study 미국 특허소송 통계자료를 보면, Halo v. Pulse 판결 이후 원고가 피고의 고의침해를 주장한 사건에서 고의침해로 인정된 사건의 비율이 종전 36%에서 54%로 증가한 반면, 증액된 배상액은 종전의 2.5배에서 2.1배로 소폭 줄어든 것이 확인된다. 향후 한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본격 시행될 경우, 법원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사건의 비중과 증액 정도를 예상해 봄에 있어, 미국에서의 이러한 데이터도 참고해 볼 수가 있다.
미국에서의 특허침해소송 대부분은 한국과 달리 배심재판(Jury Trial)으로 진행되는데, 배심재판에서는 배심원단이 고의침해(Willful Infringement) 여부 및 손해배상액(Damages)을 판단하고, 그 이후 판사가 그 손해배상액을 최대 3배까지 증액(Enhanced Damages)할 지 여부를 판단한다. 한국의 경우 배심재판이 없다는 차이가 있지만, 심리방식과 절차는 미국과 대동소이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우선 1)'고의'에 의한 침해가 인정되는지 여부를 심리하고, 2)고의가 인정된다면, 몇 배로 배상액을 증액시킬 것인지 심리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배심원단이 고의침해 여부 판단
미국에서는 배심원단이 고의침해 여부를 판단할 때, "피고가 의도적으로 특허제품을 모조했는지, 특허 비침해 또는 특허 무효에 대한 피고의 합리적인 믿음이 있었는지, 피고가 침해를 피하려고 회피설계의 노력을 했는지 등"의 모든 사실관계를 고려한다. 피고가 특허 비침해 또는 무효에 대해 변호사의 의견서를 받아 둔 경우 그 변호사의 의견서 내용이 합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인지 여부도 고려사항이다.
구체적으로, 피고가 특허기술을 모조했다는 사실이 제대로 입증되지 못한 상황에서 피고가 비침해 및 무효에 대한 변호사 의견서를 소송 전 받아둔 경우, 배심재판까지 갈 것도 없이 고의침해가 아니라고 약식판결이 내려진 사례가 있다. 그러나 특허 분야 전문성이 낮은 일반 변호사의 의견을 따른 경우 고의가 인정된 사례가 있고, 특허 비침해에 관한 사내변호사의 구두 의견이 고의침해를 피하기 위한 증거로 사용되지 못한 사례가 있다. 또한 침해행위가 시작된 지 오래되었고, 소송이 제기되고 나서 한참 후에 받은 변호사의 감정서는 고의침해에 대한 방어에 사용되지 못한 사례, 법률적 및 사실적 분석이 없이 결론만 있는 변호사 감정서나 특허 출원 경과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비침해 감정서 역시 고의침해에 대한 방어로 사용하지 못했던 사례 등이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한편 미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액의 '증액 정도'를 판단할 때에는 앞서 언급한 Read Factors라는 9개의 요소가 주로 고려된다. 이 9개의 요소들은 피고가 특허제품을 의도적으로 모조했는지, 비침해 또는 특허무효에 대한 선의의 신념이 있었는지, 침해행위의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침해를 알고 나서 침해를 줄이려는 행위를 했는지, 특허권자에게 피해를 주려는 동기가 있었는지 여부 등이 있다.
판사는 고의침해로 판단이 되었더라도 고의의 정도가 매우 약하면 증액을 전혀 하지 않기도 하고, 고의가 매우 악의적이면 징벌적 손해배상의 최대 한도인 3배까지 손해배상액을 증액하기도 하는데, 한국에서 증액 정도가 어떻게 판단될 지에 대해서는 향후 한국 법원의 실무를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특허 · 영업비밀 침해소 증가 예상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도입으로 향후 특허 및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하는 손해배상청구 사건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고의침해를 인정받기 위해 권리자가 전문가의 감정 의견을 받은 후 이에 기반하여 제소 전에 침해자에게 경고장을 발송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경고장을 받은 침해자 측에서도 다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비침해나 특허무효 의견을 받아 회신한다거나 비침해나 무효 주장이 어려울 경우 회피설계를 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면, 권리자 입장에서는 특허나 영업비밀 전문 변호사나 변리사를 통해 상대방이 권리자의 특허나 영업비밀을 침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받아두는 것이 징벌적 손해배상 인정에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특허 사건이라면 적극적으로 권리범위확인심판을 제기하여 유리한 결과를 받아두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반면 방어자 입장에서는 전문 변호사나 변리사로부터 권리자의 특허나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의견서, 특허 무효 의견서, 또는 영업비밀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받을 수 있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울러 특허 사건이라면 무효심판 또는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여 유리한 결과를 받아두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엄승찬 변호사 · 권오진 외국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seungchan.eom@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