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익 변호사의 기업과 법] 2019년 정기 주주총회 결산
[최영익 변호사의 기업과 법] 2019년 정기 주주총회 결산
  • 기사출고 2019.05.0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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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 부결 불구 주주행동 활성화 성과

2019년도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막을 내렸다. 올해는 많은 기관투자자, 그 중에서도 특히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한 이후 맞이한 첫 정기 주주총회로서 의미를 가진다. 이하에서는 2019년도 정기 주총의 특징 및 주요 쟁점에 대해 살펴본다.

◇최영익 변호사
◇최영익 변호사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지난 2018년 7월 국민연금이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에 관한 원칙' 이른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이후 그 실효성에 대한 많은 의문과 기대가 있었다. 올해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은 이전보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섬으로써 이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국민연금은 한진칼과 남양유업에 대해 정관 변경에 관한 안건을 주주총회에 제안하여 이를 올해 주총에 상정시켰다. 안건에 대한 단순 찬반 의사표시가 아닌 주주제안과 같은 적극적인 권리 행사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도 조양호 회장의 대표이사 선임 의안에 반대표를 던져 부결로 이끄는 등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비단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올해는 스튜어드십 코드에 기반한 다른 기관 투자자들의 주주 활동 역시 활발했던 해이기도 하다. KB자산운용은 광주신세계에 배당 증액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고, 한국투자밸류운용은 KISCO홀딩스에 중장기 배당정책 수립 등 주주친화책의 검토를 요구하는 서신을, 달튼인베스트먼트는 현대홈쇼핑에 자사주 매입 및 분배 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행동주의 펀드 주주제안 부결 잇따라

기관투자자들이 보내는 제안 가운데 요건을 갖춘 일부는 정식 주주제안으로 주주총회에 상정된다. 물론 주주제안이 상정되는 것과 실제로 주주총회에서 가결되어 투자자의 제안이 관철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올해 정기 주주총회 역시 행동주의 펀드가 내놓은 주주제안 안건들이 잇따라 부결됨에 따라 여전히 주주행동주의에 기반한 주총에서의 표대결은 쉽지 않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정기 주총에서는 엘리엇이 제안한 현금배당 및 사외이사 후보 추천 등 안건이 모두 부결됐고 세이브존I&C 주총에서도 홀드코자산운용의 제안에 의하여 상정된 현금배당 및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등 주주제안 안건이 모두 부결됐다. 강남제비스코에 대한 미국 헤지펀드 SC아시안오퍼튜니티의 현금배당과 사외이사 선임 제안 역시 모두 부결되었다.

하지만 주주행동주의의 성과가 전혀 없었다고 예단하기는 이르다. 올해 주총에서는 이전과 비교해 주주 제안이 활성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예전과는 달리 단순 배당 증액이 아닌 기업지배구조 자체의 개선을 요구하는 등 다양화된 면이 있다.

또한 주주행동의 활성화와 발맞추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SK와 BGF리테일, 오리온 등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 안건을 주총에 올렸고 자산총액 2조원 미만으로 감사위원회 도입 의무가 없는 농우바이오, 원익IPS, 한미사이언스 등은 감사위원회 설치를 위한 정관 변경 안건을 상정했다.

올해는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 이른바 섀도우 보팅(Shadow Voting) 제도가 폐지된 이후 두 번째로 돌아오는 주주총회 시즌이기도 하다. 섀도우 보팅이란 실질주주가 예탁결제원에 의결권 행사에 관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은 경우, 회사의 요청에 따라 예탁결제원이 주주총회에 참석한 의결권 행사 주식의 찬성 반대 비율대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말한다. 2017년 12월 위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2018년 주주총회에서는 76개사가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주총 안건이 부결되는 사태를 맞았는데, 올해는 이보다 늘어난 188개사가 안건 부결을 겪었다고 한다. 한국상장협의회는 내년에는 230여개사가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안건이 부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법의 결의 요건을 개정하여 의결정족수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책이 필요한 대목이다.

10만 6000명 주주, 전자투표 이용

한편 섀도우 보팅 폐지의 반대 여파로 전자투표의 이용은 꾸준히 증가세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거래소가 정족수 미달로 사외이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하지 못하더라도 기업들이 전자투표제 도입 등 주총 성립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증명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지 않도록 하는 특례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정기 주총에서 예탁원의 전자투표 · 전자위임장 서비스를 이용한 주주 수는 10만 6000여명으로 작년보다 194% 증가했다고 한다. 예탁원 전자투표를 이용한 회사는 SK하이닉스, 카카오 등 564개사다. 전자투표가 의결정족수 충족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올해 주주총회 전후로 가장 두드러졌던 주주 활동을 꼽는다면 KCGI의 한진그룹을 상대로 한 캠페인일 것이다. 기업지배구조개선을 목적으로 2018년 7월 설립된 사모펀드 KCGI는 올 초 한진과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을 상대로 서신공개 및 법원에 주주명부 열람 및 의안상정 가처분을 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주주활동을 벌였다.

KCGI, 주주명부 열람등사 가처분 이겨

올 1월, KCGI는 소수주주 지분을 규합하기 위하여 한진칼을 상대로 주주명부 열람등사를 신청하였으나 회사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KCGI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주주명부 열람등사 가처분을 신청하여 승소했다. 이에 관한 기타 쟁점은 아래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본다.

또한 KCGI는 한진칼을 상대로 감사 및 사외이사 선임, 이사 보수한도 제한 등을 골자로 한 주주제안을 공개했다. 하지만 한진칼은 KCGI가 주주제안권을 행사하기 위한 지분 요건, 즉 6개월 간 보유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KCGI는 삼성물산-엘리엇 사건을 인용하며, 당시 삼성물산의 이사회가 주식 보유 기간이 6개월 미만이었던 엘리엇의 주주 제안 안건을 임시주주총회의 목적사항으로 올려 주주들의 판단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결국 KCGI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의안상정 가처분을 신청하여 1심에서 승소하였으나, 2심에서 패소했다. 이에 관한 쟁점도 아래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본다.

올 2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한진칼에 대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의결했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을 7.34% 보유한 3대 주주이다. 그동안 이사 선임이나 연임 반대와 같은 소극적 의결권 행사를 주로 해왔던 국민연금이 한진칼 지분의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가'로 변경 공시하고 주주 제안에 나선 것이다. 국민연금은 '이사가 회사 또는 자회사 관련 배임 · 횡령의 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때는 자동 해임한다'는 내용의 정관 변경 안건을 주주총회에 제출했다. 비록 해당 안건은 부결되었지만,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참가 이후 첫 적극적 경영권 행사의 선례로서 의미를 가질 것이다.

한진칼 주총, 회사 측 완승

주총 전까지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것과 달리, 한진칼의 주총은 결국 회사 측의 완승으로 돌아갔다. 석태수 대표이사는 연임에 성공하였고 국민연금이 제안한 이사 자격 강화 관련 정관 변경안은 부결되었다. 사외이사의 선임과 관련하여서도 이사회 안이 가결되었다.

그러나 앞에서 강조했듯이, 안건이 주총에 상정되거나 가결되지 못하였다고 하여 주주행동의 성과가 전혀 없었다고 예단할 수는 없다. 공개적인 주주행동으로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음을 나날이 체감한다. 이제는 기업들도 주주들과의 만남을 거부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한진그룹도 KCGI의 주주제안 내용을 일부 받아들여 사외이사를 확대하고 유휴자산을 매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그룹 중장기비전 및 한진칼 경영발전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상법 제363조의2에 따르면, 발행주식 총수의 3%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주총일 6주 전에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법 제542조의6 제2항에 따르면, 상장회사의 소수 주주가 주주제안을 하기 위해서는 6개월 전부터 주식 1%(회사의 규모에 따라 0.5%)를 보유해야 한다. 한편 상법 제542조의 제2항은 '이 절(상법 제542조의6 제2항이 속해 있다)은 이 장 다른 절(상법 제363조의2가 속해 있다)에 우선하여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수주주 관련 소송에서는 상장회사 주주가 상법 제542조의6 제1항이 정하는 6개월의 보유 기간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도 상법 제366조에 따른 주주총회소집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가 자주 쟁점이 된다. 이에 관하여는 상반되는 판결들이 존재한다.

판결 엇갈려

금번 한진칼 사건에서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상법 제542조의6 제2항은 상법 제363조의2의 적용을 배제하는 특별규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음"을 근거로, "상장회사의 주주는 상법 제542조의6 제2항이 정하는 6개월의 주식 보유 기간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상법 제363조의2의 요건을 갖추고 있으면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본 반면, 2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상반되는 결론을 내렸다.

과거 위 쟁점이 문제된 판결에서도 결론은 엇갈렸다. 2015년 엘리엇의 삼성물산 주총개최금지 가처분 사건에서 법원은 상장회사에 대한 소수주주권 행사 요건은 특례조항만이 적용되는 것이라고 본 반면, 2011년 티엘씨레저에 대한 임시주총소집허가 가처분 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상장회사 특례조항을 우선 적용한다는 조항은 다른 일반 상법조항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상법의 표현 방식상 일반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는 경우에는 '~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또는 '하여야 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반면 제542조의6은 '행사할 수 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 주된 근거였다.

이렇듯 현재 같은 문제에 대하여 고등법원에서도 엇갈리는 선례와 결론이 존재하는 만큼, 속히 대법원을 통하여 확정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USB에 주주명부 복사도 가능

상법상 소수주주권을 행사하려면 일정 지분 이상을 소유하여야 하므로 다른 주식 보유자들을 규합할 필요가 있다. 상법상 주주는 영업시간 내에 언제든지 주주명부의 열람 · 등사를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상법 제396조 제2항), 실질주주는 위 조항에 기하여 실질주주명부의 열람 · 등사를 청구할 수 있다. 실무에서는 거의 언제나 실질주주명부를 열람하여 소수주주를 규합한다. 한진칼 판결에서 확인되었듯이, USB에 주주명부 파일을 복사하는 방식 또한 가능하므로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간혹 회사에 열람 · 등사 청구를 하면 주소 등 주주 정보가 블라인드 처리된 명부를 내어줄 때가 있다. 주주명부의 열람 목적이 주주들에게 연락을 취하여 지분을 규합하기 위한 것이라면 반드시 주주 정보 전체가 공개된 명부를 따로 요청하여 받아야 한다.

주주가 주주명부의 열람 · 등사 청구를 한 경우 회사는 그 청구에 정당한 목적이 없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거절할 수 없고, 이 경우 정당한 목적이 없다는 점에 관한 증명책임은 회사가 부담한다는 것이 판례이다. 한진칼 사건에서도 한진칼은 KCGI가 경영권 분쟁의 외관을 형성함으로써 채무자 및 그 주주들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부당한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바 있다. 주주명부의 열람 · 등사 청구는 명백한 주주의 권리인 만큼 거의 항상 받아들여지는데, 회사가 목적이 부당하다는 핑계로 주주명부를 내어주지 않는 것은 전략적으로도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주주행동에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태도는 다른 소수주주 소송을 촉발시키거나 다른 소수주주 소송에서의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업 지배구조 평가, 아시아 9위

아시아지배구조협회(ACGA)가 실시한 2018년 기업 지배구조 평가에서 한국은 아시아 12개국 중 3년 연속 9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제이미 알렌 ACGA 사무총장은 한국시장이 이토록 저평가 받는 이유로 현행 상법이 지배구조 정상화와 소수주주 보호에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상법을 비롯한 여러 회사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법 개정 과정에는 외국인투자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 예컨대 서면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 등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이들의 불만이다.

주주총회는 회사와 주주 간의 소통 창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주주총회의 접근성과 투명성이 낮아질수록 투자자는 발을 돌릴 수밖에 없다. 주주총회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회사 또한 주주총회를 통하여 적극적으로 주주와의 소통에 나서는 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외국인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주주총회에는 주주행동이 이전보다 활성화되는 등 소기의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최영익 변호사(법무법인 넥서스, yichoi@nexuslaw.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