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의 권위 회복과 변호사
법조계의 권위 회복과 변호사
  • 기사출고 2006.09.0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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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배경 변호사]
며칠 전 나의 의뢰인 중 한 분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사 재판이 자신의 의중대로 진행되지 않자, 대뜸 "저 판사, 0 먹은 것 아니에요?" 라고 했다. 어이가 없어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난 "그런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나무랐지만,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윤배경 변호사
물론, 얼마전 까지만 해도 나의 의뢰인들 중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법원의 판결이나 검찰청의 결정을 받고 나면 흔히 담당 판사나 검사에 대하여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는 분들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기본적인 반응은 판사나 검사가 "사회 실정을 모른다"라거나 "사회 경험이 미숙하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즉, 사회 실정을 제대로 모르거나 경험이 부족하여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좀 더 연륜이 깊으신 판사님이나 검사님이 사건을 다시 다루어 주도록 부탁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러한 의뢰인들의 불평이나 불만에는 적어도 법조계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감이나 존경의 관념이 존재하고 있었다. 법조계에는, 우리 사회의 여타 조직과는 다른,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믿음이 뒷받침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진흙탕 싸움을 일삼는 정치권, 하루를 멀다 하고 뇌물과 독직 사건이 터지는 일반 공무원 사회에 대한 뉴스를 접하게 되면 누구든지 '과연 우리 나라가 이러고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하고 걱정하게 된다.

이럴 때마다 난 그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법원과 검찰이 있습니다. 법원과 검찰은 그들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시험을 통하여 선발되고 임관된 우리 나라 최고의 인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엘리트 중에 엘리트들 아닙니까? 더욱이 그들은 청렴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들이 있기에 그나마 우리 나라의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고.

이 말을 듣는 상대방은 마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인냥 감동을 받곤 했다.

그런데, 최근 대형 법조 비리가 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우수한 성적으로 고시를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무난한 판사 생활과 승승장구의 법조 경력을 쌓던, 학구적이고 타협을 모를 듯한 외모의 고위 판사 분이 법조 브로커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였다는 혐의로 구속 수감되는 모습이 언론 매체를 통하여 적나라하게 노출된 이후, 그리고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던 총망 받던 젊은 검사 분이 수사 청탁 명목으로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금품을 수수한 명목으로 영어의 몸이 되었다는 보도가 시민들을 놀라게 한 이후 대다수의 국민들은 갑자기 혼란을 느끼는 듯 싶다.

단순히 전관예우니 무전유죄니 하는 현대판 사자성어 정도에서 막연히 법조계에도 일부 치부가 있나 보다 하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겐 법원과 검찰의 핵심 멤버들이 일반 죄수와 다를 바 없이 구치소의 철창문을 넘나드는 현실에서, 잠자다 벼락 물을 맞듯이 완전히 "깨어 버린 꼴"이다.

최근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비법조인들은 정말 심각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이번 법조비리의 내용에 대하여 캐묻곤 한다. 나 역시 신문 지상에서 보도된 내용 이상을 알지 못하는 이상 그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는 미흡할 수밖에 없다.

대신 나는 이번 사태가 법조계의 구조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일부 인사의 개인적인 과오에 지나지 아니하고 오히려 대다수의 판사, 검사분들은 충실히 자신의 직분을 감당하는 청렴결백한 공복들이라고 주장하기 바쁘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주장은 권위를 상실하고 설득력 없이 허공을 헤맨다는 느낌을 받는다. 상대방은 '정말 상투적인 변명을 하는구나' 하는 표정이다.

일개 변호사에 지나지 않기는 하지만, 법원과 검찰을 옹호하려는 나의 '말발'이 권위와 설득력을 잃었다는 것은 실제로 일반인들 사이에서 법원과 검찰 자체가 권위와 신뢰를 잃었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이제는 과거에 사회 경험이 미숙하다든지 실정을 몰라고 판단을 잘못 한 것으로 믿었던 의뢰인마저도 '너 잘 만났다'는 식으로 나에게 와서는 과거 자신이 법원이나 검찰에서 억울하게 처리했던 그 모든 일들이 당시의 담당 판사나 검사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부당하게 처리된 것 같다는 투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제 법원과 검찰의 청렴성을 의심한 국민들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변호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이 '보이지 않는 손'을 구하기 위하여 정말 브로커를 구하려 나설 것이 아닌가 싶다.

권위가 무너진 것은 법원과 검찰이건만 어찌된 일인지 변호사의 그것마저도 땅에 떨어져 버린 느낌이다. 이는 변호사 업계로 보아서도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권위와 위신이야말로 변호사의 생명줄이 아닌가? 문제는 한 번 무너진 법원과 검찰의 권위는 언제 회복할 수 있을지 요원하다는 데 있다. 강 건너 불 구경하듯이 변호사들이 이번 법조 비리 사태를 법원과 검찰에만 맡기고 팔짱만 끼고 있을 수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권위를 회복하여야 할 1차적인 책임은 법원과 검찰에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변호사도 재발 방지를 다짐하고 뼈를 깎는 자세로 반성을 거듭하는 법원 검찰에 협조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우리 변호사들이 하여 왔듯이, 가까이는 자신의 의뢰인들에게, 멀리는 자신의 지인들에게 간단 없이 법원과 검찰의 청렴성을 홍보하고 그 권위를 설파하는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설령 상대방으로부터 민망한 소리를 들을지언정 말이다.

이는 변호사 모두의 책무이며 의무이기도 하다. 바다가 죽으면 어부의 생계도 막히듯이 법조계의 권위가 죽으면 변호사도 기반을 잃기 때문이다.

◇대한변협신문에 실린 윤배경 변호사님의 글을 변협과 필자의 양해아래 전재합니다.

윤배경 변호사(bkyoon@yoolhy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