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선고 뒤 검사만 항소해 열린 항소심에서 1심보다 더 높은 형량이 선고되었더라도 피고인이 항소이유로 주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유를 상고이유로 삼아 상고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피고인이 항소이유로 주장하지 않는 등의 사유로 항소심에서 심판대상이 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상고이유를 제한하는 종전 판례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3월 21일 약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약사 최 모(42)씨와 신 모(45)씨에 대한 상고심(2017도16593)에서 이같이 판시하고, 최씨와 신씨의 상고를 기각, 최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신씨에게 벌금 2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최씨는 2016년 2월부터 7월까지 5개월간, 신씨는 2004년 10월부터 2012년 9월까지 8년간 한약사 자격이 없는 건강원 운영자인 고 모씨와 공모해 고씨가 한약국을 내는 데 명의를 빌려주고, 고씨가 제조한 다이어트한약을 마치 한약사가 조제하여 파는 것처럼 고객 전화상담에 응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씨는 또 2016년 7월경 고씨로부터 한약국을 인수한 후 다음 달인 8월부터 10월까지 한약국 방문 없이 전화상담만 받고 362명에게 9000여만원의 다이어트한약을 택배로 판매한 혐의 등으로도 기소됐다.
1심은 최씨와 신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벌금 1000만원씩을 선고했다. 이후 최씨는 항소하지 않았으나 신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고, 검사는 두 사람에 모두에 대해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이 선고한 형은 피고인들의 책임 정도에 비하여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검사의 양형부당 주장을 받아들여 1심을 깨고 최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신씨에겐 벌금 2000만원으로 형량을 높였다. 그러자 최씨와 신씨가 항소이유로 들지 않았던 채증법칙 위반과 심리미진, 법리오해 등을 상고이유로 삼아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형이 높아진 경우에도 상고이유 제한 법리가 적용되어야 하므로, 피고인들의 채증법칙위반 내지 심리미진, 법리오해 등의 상고이유는 적법한 상고이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형사소송법상 상고심은 항소심판결에 대한 사후심이므로, 항소심에서 심판대상으로 되었던 사항에 한하여 상고이유의 범위 내에서 그 당부만을 심사하여야 한다"며 "항소인이 항소이유로 주장하거나 항소심이 직권으로 심판대상으로 삼아 판단한 사항 이외의 사유는 상고이유가 될 수 없고 이를 다시 심판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은 상고심의 사후심 구조에 반한다"고 밝혔다.
이어 "법률심으로서 상고심의 판결이 선례로서 하급심에 법령 해석 · 적용의 기준을 제시하고 형벌의 기준을 확립함으로써 법질서를 유지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고심에서 적정한 판단이 가능하도록 일정한 범위에서 상고를 제한하여 그 기능을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며 "상고이유를 제한하더라도 불이익을 입게 될 피고인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한 다른 수단이 마련되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상고심과 항소심에 걸쳐 마련되어 있는 직권심판권의 발동에 의해 직권심판사항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는 위법사유에 대해서는 비록 항소심의 심판대상에 속하지 않았던 사항이라도 피고인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그 잘못을 최대한 바로잡을 수 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