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홧김에 '그만두겠다'고 말하자 해고…무효"
[노동] "홧김에 '그만두겠다'고 말하자 해고…무효"
  • 기사출고 2019.03.19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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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진심 아님 회사 대표도 알아"

게임제작업체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던 직원이 회사 대표로부터 "팀원으로 일해달라"는 말을 듣고 홧김에 "그만두겠다"고 말하자 이 직원을 해고했다. 유효한 해고일까.

서울고법 민사15부(재판장 이동근 부장판사)는 2월 15일 박 모씨가 해고는 무효라며 게임제작업체인 A사를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2018나2034962)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A사가 박씨에 대하여 한 해고는 무효임을 확인하고, 박씨에게 해고 시부터 복직 시까지 박씨가 계속 근로하였을 경우에 받을 수 있었던 임금인 매달 54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14년 7월 A사에 입사해 이듬해 초부터 아트팀의 팀장(아트디렉터)으로 근무하던 박씨는 금요일인 2017년 7월 28일 회사 대표와 면담하며 승진과 연봉인상 등 처우개선을 요구하였으나, 대표는 "승진은 어렵다"고 하면서 회사가 연봉인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아트디렉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박씨는 "그것은 상황에 달린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회사 대표가 "연봉인상은 주말 동안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 후 월요일인 7월 31일 박씨에게 연봉인상 요구를 받아줄 수 없다고 하면서, "인사와 연봉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어서 관리자급인 아트팀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으니, 아트팀의 팀원으로 일해 달라"고 요구했다. 박씨는 화가 나서 대표에게 "그건 그만두라는 말과 뭐가 다르냐. 차라리 그럴 바엔 그만두겠다"고 말하였고, 그러자 대표는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그만둔다고 한 것"이라고 하면서 업무 인수인계 관련 일을 생각해 둘 테니 이틀 동안 연차휴가를 다녀오라고 지시했다. 박씨는 이틀 동안 연차휴가를 사용했다.

A사는 박씨의 휴가기간 중에 '박씨가 자발적으로 퇴사하였다'는 취지를 회사 내부에 공지하고, 2017년 8월 1일자 조직도에서 박씨의 이름을 삭제하는 한편 아트팀의 팀장을 다른 사람으로 기재하였으며, 작업 프로그램에 대한 박씨의 접근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연차휴가를 마치고 8월 3일 출근해 회사가 휴가기간 중에 이와 같은 조치를 한 사실을 알게 된 박씨가, A사의 대표와 3명의 이사들에게 "퇴사하지 않겠다. 이건 부당하다"고 항의하였으나, 회사 대표는 박씨에게 "본인이 자발적으로 퇴사했으니 8월 4일 출근하더라도 회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고 통보했다. 박씨가 해고는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먼저 "원고가 '그건 그만두라는 말과 뭐가 다르냐. 차라리 그럴 바엔 그만두겠다'고 말한 것은, 실제로 사직하겠다는 의사표시라고 할 수는 없고, 피고(회사)가 원고에게 갑자기 일방적으로 아트팀의 팀장에서 팀원으로 하향전직을 요구한 데 대하여 화가 나서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피고에 대한 강한 불만과 피고의 부당한 하향전직 요구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한 거부의 의사를 나타내기 위하여,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피고의 대표이사도 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인다"고 지적하고, "원고의 사직 의사표시는 민법 107조 1항 단서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밝혔다. 민법 107조 1항은 "의사표시는 표의자가 진의아님을 알고 한 것이라도 그 효력이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아님을 알았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특히 "원고가 '그것은 상황에 달린 것이다'라고 대답한 것을 두고 반드시 아트디렉터로서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단정할 수 없고, 승진 및 연봉인상과 관련한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한 말이라고 볼 여지가 많다"고 덧붙였다. 

A사의 인사관리규정 21조 3항은 사원이 퇴직하고자 할 때에는 퇴직희망일 1개월 이전에 사직원을 체출하고 인사권자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박씨는 회사에 사직원을 제출하지 않았다. A사는 또 박씨가 '그만두겠다'는 말을 한 후 1개월이 되기 훨씬 이전에 즉각적으로 박씨와 근로관계를 종식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재판부는 "원고가 실제로 퇴직할 의사가 없으면서 부당한 하향전직을 요구한 피고에 대하여 불만과 거부의 의사를 표시하기 위한 감정적 대응을 한 것을 빌미로 마치 원고가 진정한 사직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취급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킨 피고의 조치는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진 근로계약관계의 종료로서 해고에 해당한다"며 "그런데 해고는 정당한 이유가 있거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유효하고,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하며(근로기준법 23조, 24조, 27조), 피고의 인사관리규정이 인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서 징계면직을 하도록 규정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 피고가 2017. 8. 4.자로 원고에 대하여 한 해고에 정당한 이유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거나, 절차적 적법성을 갖추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의 원고에 대한 해고는 무효"라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