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계약의 해제와 납세의무
[리걸타임즈 칼럼] 계약의 해제와 납세의무
  • 기사출고 2018.12.05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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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늘 느끼지만 세법은 정말 어렵다. 세액을 산정하는 공식이 복잡해서가 아니다. 세법을 해석하는 일은 고차원적인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세법을 해석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법(私法)상 법률관계를 확정해야 한다. 세법에서 과세요건으로 삼는 양도, 인도, 상속, 증여와 같은 개념은 기본적으로 민법에서의 개념을 빌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되는 사안에서 민법의 법률효과를 정확하게 분석해야만, 다음 단계로 세법의 적용을 고려할 수 있다.

◇이종혁 변호사
◇이종혁 변호사

그렇다고 세법이 반드시 민법의 법률효과를 그대로 따르는 것은 아니다. 세법은 엄연히 공법(公法)이고, 세법의 해석에서 특별히 고려되어야 할 세법만의 원칙들이 있다. 나아가 각각의 세목들마다 고유한 성격으로 인하여 서로 달리 해석해야 하는 경우들도 있다. 이처럼 세법의 해석은 민법의 법률효과를 기본으로 삼되, 세법의 원칙과 각 세목의 특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세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특히 복잡한 부분이, "계약이 해제 등으로 효력을 상실하였을 경우 그에 관련된 납세의무가 어떻게 되는지"에 관한 논의이다. 실무에서 자주 문제되는 주제이므로, 이하에서 각각의 세목 별로 그에 관한 판례를 정리해 보겠다.

취득세

최근에 선고된 사례를 소개한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이 취득세를 신고 · 납부하였는데, 건설사와의 특약에 따라 분양대금의 일부에 대한 납부를 유예하고 있다가, 2년 후 시가가 분양가에 미치지 못하면 분양대금을 감액하기로 하였다. 이후 아파트의 시가가 분양가보다 낮게 되자 특약에 따라 분양대금을 감액하였는데, 납세자들은 이미 납부한 취득세도 함께 감액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경정청구를 하였다. 이에 대해서 대법원은 "부동산 취득세는 부동산의 취득행위를 과세객체로 하는 행위세이므로, 그에 대한 조세채권은 그 취득행위라는 과세요건 사실이 존재함으로써 당연히 발생하고, 일단 적법하게 취득한 이상 그 이후에 계약이 합의해제되거나 해제권의 행사 등에 의하여 소급적으로 실효되었다 하더라도 이는 이미 성립한 조세채권의 행사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5두57345판결). 또한 같은 날 대법원은 매매계약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이후 계약이 법정해제권 행사로 해제된 사례에서도, 위와 같은 이유로 납세자 패소판결을 선고하였다(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8두38345판결). 즉, 대법원은 "취득행위 이후에 계약이 합의해제 또는 해제권 행사 등으로 소급적으로 실효되더라도 취득세 납세의무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반면 대법원은 계약이 무효 또는 취소로 인하여 효력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취득세 납세의무도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대법원 1997. 11. 11. 선고 97다8427 판결, 대법원 1998. 12. 8. 선고 98두14228 판결).

양도소득세

대법원은 기본적으로 "양도계약이 당초부터 무효이거나 취소사유에 의해서 소급하여 무효가 된 경우에는 원상회복여부를 불문하고 양도소득세 부과대상이 아니다"는 태도를 취해오고 있다(대법원 1987. 5. 12. 선고 86누916 판결, 대법원 1997. 1. 21. 선고 96누8901 판결). 다만, 토지거래허가를 배제하거나 잠탈할 목적으로 등기원인을 가장하거나 전매한 경우 등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납세의무를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2011. 7. 21. 선고 2010두23644 판결). 또한 대법원은 계약해제의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양도소득세 부과대상이 아니라는 태도를 취해오고 있다(대법원 1992. 12. 22 선고 92누9944 판결). 다만, 현행 국세기본법 시행령 제25조의2 제2호에서 후발적 경정청구 사유의 하나로 '부득이한 사유로 인한 계약의 해제'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계약의 합의해제를 근거로 후발적 경정청구를 하려면 '부득이한 사유로 인한 경우'에 한정된다고 볼 것이다.

부가가치세

부가가치세의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무효 또는 취소의 경우에는 납세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즉, 부가가치세 신고 · 납부 전이라면 신고의무를 부담하지 않고, 신고 · 납부 후라면 국세기본법상 경정청구 또는 후발적 경정청구 사유에 해당하게 될 것이다. 반면 계약해제의 경우에는 조금 더 복잡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선 대법원은 계약이 해제권 행사로 인하여 해제된 경우에는 과세처분 전 · 후를 불문하고 과세대상이 아니라는 태도이고(대법원 2002. 9. 27. 선고 2001두5989 판결), 합의해제의 경우에는 부가가치세 부과처분 이전에 계약이 합의해제 되고 원상회복까지 이루어진 경우에 과세대상이 아니라는 태도를 밝혔다(대법원 1998. 3. 10. 선고 96누13941 판결). 이러한 취지에서 종래 대법원은 부가가치세의 경우 계약해제를 후발적 경정청구 사유로도 인정하였다(위 2001두5989 판결).

그런데 2012. 2. 2. 개정된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제70조 제1항 제2호가 계약의 해제로 재화 또는 용역이 공급되지 아니한 경우의 수정세금계산서 발급시기를 '계약해제일이 속한 과세기간'으로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부가가치세의 경우 계약해제는 당초 과세기간에 대한 후발적 경정청구 사유가 아니라, 계약해제일이 속한 과세기간의 수정세금계산서 발급 사유가 되었다고 볼 것이다.

증여세

다른 세목들과 마찬가지로, 증여계약이 무효 또는 취소인 경우에도 증여세 과세대상이 아니라고 볼 것이다(대법원 1998. 4. 24. 선고 98두2164 판결). 다만, 대법원은 증여세 과세처분 후에 증여세 과세대상임을 알지 못했음을 이유로 한 증여 취소의 경우에는 증여계약을 합의해제한 것으로 취급한다(대법원 1998. 4. 28. 선고 96누15442 판결). 한편 해제권 행사에 의한 계약해제의 경우에는 증여세 과세대상이 아니지만, 합의해제의 경우에는 특별한 규정이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조 제4항에 의하면, ①증여세 신고기한(3개월) 이내에 합의해제한 경우에는 증여로 보지 않고, ②신고기한 이후 3개월 내에 합의해제한 경우에는 당초 증여에 대해서 증여세를 부과하되 그 반환에 대해서는 증여로 보지 않으며, ③그 기간을 경과하여 합의해제한 경우에는 증여와 반환 모두에 대해서 증여세가 부과된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기본통칙 31-0...1). 대법원도 위 규정의 내용에 따라 증여세 과세대상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대법원 1997. 7. 11. 선고 97누1884 판결).

에필로그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계약이 무효 또는 취소인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납세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되나, 계약해제의 경우에는 각 세목이나 유형에 따라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대법원이 일관되지 않은 태도를 보여서 혼란스럽다는 의견도 제기될 수 있을 것이나, 대법원은 각 세목의 특성과 취지를 충분히 고려하여 그에 맞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계약해제의 경우에 세목별 그리고 그 유형별로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기도 하므로, 판례의 입장을 분명하게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종혁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jonghlee@yulch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