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이 사람!] '난민 박사' 황필규 변호사
[법조 이 사람!] '난민 박사' 황필규 변호사
  • 기사출고 2018.09.1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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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 쌓이고 네트워크 형성되면 변호사 공익활동도 무한대"

올 5월 말 현재 누적 난민신청자가 4만 470명, 특히 올 들어 5월까지 7737명의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난민을 신청할 정도로 난민 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변호사 중에서 난민 문제에 가장 정통한 최고의 난민 전문가가 누구일까. 대형 로펌이나 진보 성향의 법무법인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를 먼저 떠올릴지 모르지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50 · 사법연수원 34기) 변호사를 빼놓을 수 없다.

◇황필규 변호사
◇황필규 변호사

첫 사건이 난민소송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기 한 달여 전인 2004년 12월부터 공감에서 근무를 시작한 그는 난민소송이 그가 변호사가 되어 수행한 첫 사건일 정도로 난민 문제와 관련이 깊은 변호사다.

"공감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누가 제게 난민 사건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는 거예요. 전에도 이주민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얼른 하겠다고 했죠."

그는 한국어로 된 국내의 난민 관련 자료를 모두 찾아 읽어보았다. 하루면 충분했다. 그때까지 나온 난민 관련 판례가 겨우 2개에 불과할 정도로 미개척 분야였기 때문. 하루 만에 난민 전문가(?)가 된 그는 국회에서 열린 난민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등 본격적으로 난민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유엔난민기구 한국사무소로부터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 출신 9명의 난민소송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때가 2005년 초로, 마치 그가 변호사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난민 문제가 그 후 황 변호사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공익활동의 핵심과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때 NLD 활동을 했던 난민 신청자들이 거의 반포기 상태로 공감 사무실을 찾아왔던 기억이 나요. 난민으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한 것은 2000년인데, 5년이 지나서야 심사를 해 불허결정이 나오고 이의신청을 제기했으나 이번엔 금방 기각결정이 났으니 소송을 해보았자 별 소용이 없을 거라고 낙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죠."

1년차 변호사 황 변호사는 그러나 이 소송을 맡아 1년 후인 2006년 2월 9명 중 8명에 대해 난민 인정을 받는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이어 항소심을 거쳐 항소를 취하한 1명을 제외한 8명에 대해 2008년 9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1명 빼고 모두 승소 판결 받아

이 소송 이후에도 여러 건의 난민소송을 수행한 황 변호사는 이후 입법운동에 뛰어들었다. 2013년 7월부터 시행된 난민법이 탄생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 숨은 공로자 중 한 사람이 황 변호사다. 아시아에서 독립된 단행법률로 난민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며, 우리보다 먼저 난민법 제정을 시도한 일본도 아직 난민법이 없다.

황 변호사는 "외국의 난민 운동가들이 독립된 난민법을 두고 있는 한국을 많이 부러워한다"며 "제주도로 들어온 500명이 넘는 예멘인들의 난민 신청과 관련해 난민조약 탈퇴와 난민법 폐지까지 거론되고 있는데, 남들이 부러워하는 앞선 법제도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난민 제도의 발전과 관련해 제안하는 내용은, 무엇보다도 난민 심사의 공정성,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것. 그는 단순히 난민으로 많이 인정해달라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공정성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난민의 법적 요건을 충족한 사람은 모두 난민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투명성은 심사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밀실 심사 등의 의혹이 없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황 변호사는 또 "인력과 예산의 충원 못지않게 난민 심사의 전문성이 보완되어야 한다"며 "최근 제기된 난민심판원 설치 의견도 기구의 신설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문성의 보강이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법연수원 1년차 때인 2003년 국민대 법대에서 "UN인권 체제에서의 NGO의 법적 지위와 역할"이라는 주제로 법학석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일찍부터 변호사의 공익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변호사가 된 지 5년 만인 2010년 8월 서울대 법대에서 난민에 관한 연구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의 제목은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상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에 관한 연구". 난민 변호사로 출발해 난민법 박사가 된 것이다.

◇황필규 변호사
◇황필규 변호사

난민 연구로 박사학위 받아

공감에서 이주민과 난민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활동해 온 황 변호사는 얼마 전부터 탈북자의 해외에서의 난민 신청, 한국에서 태어난 해외입양 아동의 인권문제, 해외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현지에서의 인권침해 감시활동 등 국제인권 쪽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탈북자의 난민 문제란 탈북자가 한국으로 오지 않고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 난민으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하고, 불허되면 현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또 다른 사안으로, 황 변호사는 호주 법원에 여러 차례 전문가 의견을 제출하고, 영국 법정엔 직접 참석해 전문가 증언을 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 헌법상 북한 사람도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영국이나 호주에선 탈북자를 일종의 이중국적자로 보아 개념상 난민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이 강하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난민이 아니라는 식인데, 황 변호사는 "이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오는 문제"라고 설득하며 난민 인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류자격이 부여되는 경우는 있으나, 난민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황 변호사가 영국과 호주 법원에 제기된 탈북자의 난민소송을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협력의 결과다. 호주 소송의 경우, 프로보노 활동의 일환으로 탈북자의 난민소송을 지원하던 호주 로펌이 협력관계에 있는 한국 대형 로펌에 지원을 요청하고, 한국의 이 로펌이 공감에 연락해 황 변호사가 나서게 되었다는 후문. '아태지역 난민권리 네트워크(APRRN)' 창립멤버이자 2010년 11월부터 약 2년간 2대 의장을 역임한 황 변호사는 "아시아 지역에 굉장히 잘 운영되는 난민 네트워크가 가동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황필규 변호사는 누구···
◇황필규 변호사는 누구···

라오스 댐 붕괴도 현지 단체와 협력

황 변호사는 SK건설이 시공하던 라오스 수력발전소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 사고와 관련해서도 얼마 전 현지의 국제단체 관계자들과 컨퍼런스 콜을 가졌다. 이 또한 공익단체들 사이의 국제적인 협력이 일조해 성사된 경우로, 현지 관계자들은 시공사인 SK건설을 상대로 한 한국에서의 법적 대응 가능성과 공감의 지원 등에 대해 관심을 나타냈다.

난민, 이주민 문제와 함께 황 변호사가 관심을 갖고 활발하게 추진하는 또 하나의 공익활동 영역을 들라면 재난과 피해자 인권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가 나자 그는 공감에 휴가를 내고 무작정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일단 현장에 가서 구할 수 있다면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고, 만일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희생자 등의 피해구제를 도와야 한다고 마음먹은 것. 그는 대한변협에 연락해 '세월호 참사 피해지원 공익법률지원단'이 구성되는 데 단초를 제공하고, 스스로 법률지원단의 일원으로 1년간 안산 현지에 상주하며 세월호 희생 피해자 가족 등을 도왔다. 나중에 국회의원이 된 박주민 변호사가 황 변호사와 함께 안산에서 활동했던 당시 세월호 법률지원단 소속 변호사 중 한 사람이며, 팽목항에선 배의철 변호사가 상주하며 희생자 가족들을 도왔다.

세월호 사고때 1년간 안산 상주

황 변호사는 "세월호 사고가 터지면서 재난이 제 활동, 관심영역에서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며 "변호사가 공익 차원에서 재난 피해자 등을 위해 활동할 내용은 무한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상규명과 제도개선, 피해지원 대책 점검 등의 활동을 할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2017년 3월 남대서양에서 침몰해 선원 22명이 행방불명된 스텔라데이지호 사고와 메르스 사태 때도 관여했다.

'이주민 인권', '난민 인권', '국제인권', '탈북자 인권', '메르스 사태와 인권' 등이 그가 대한변협이 매년 발간하는 인권보고서에 기고한 인권보고 내용으로,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가 공감 소속으로 수행한 13년의 공익활동 보고서인 셈이다. 변협 인권보고서에 가장 많은 보고서를 작성한 변호사 중 한 사람인 황 변호사는 현재 2019년 변협 인권보고서에 실릴 '재난과 피해자 인권' 부분을 준비하고 있다.

◇황필규 변호사
◇황필규 변호사

'재난과 피해자 인권' 보고서 준비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8월 중순 창덕궁 옆 원서동에 위치한 공감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매우 환한 표정이었다. 옳은 일을 한다는 진지함을 넘어 공익활동을 즐긴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공익활동을 즐긴다는 표현이 가능한 것일까.

황 변호사는 "공익전담변호사로서의 활동이 솔직히 재미있다"고 말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인데 즐겁지 않겠어요. 기자가 되고 싶어 기자가 된 사람도 있고, 선생님 직업을 원해 교사가 된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런 생각으로 공익전담변호사를 지원했고, 공감을 중심으로 네트워크가 잘 발달되어 있어 의욕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외부에서 너무 특별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해요."

그는 이어 "전문성이 쌓이고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시장이, 활동영역이 무한대가 되어 버리는 게 변호사의 공익활동"이라며 "하지만 모든 걸 다할 수는 없고, 전문성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거, 그러면서 잘 할 수 있는 거를 찾으려고 한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를 따라 홍콩에서 3년간 살고, 병역도 국제협력단 소속으로 중국 청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마친 황 변호사는 능숙한 외국어 구사력 등을 살려 공감에서도 국제인권 쪽으로 꾸준히 영역을 넓혀 왔다.

앞으로도 개인적으로는 국제 쪽으로 무게중심을 가져가겠다는 게 그의 계획. 그는 "국내적으로는 훌륭하고 유능한 공익변호사 후배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오히려 내가 배워야 할 부분도 많다"며 "나는 한국변호사로서 공익활동의 국제적인 지평선을 넓히는 쪽에서 기여하고 싶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아내도 같은 법조인

또 "그러한 확장과 전환엔 물론 전문성과 능력도 있어야겠지만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내게 과연 그런 용기가 있나 하고 고민도 많이 한다"며 같은 법조인으로서 공익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내조를 아끼지 않은 아내에게 늘 감사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리걸타임즈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