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인터뷰] "한국 로펌업계는 구조조정 중"
[리걸타임즈 인터뷰] "한국 로펌업계는 구조조정 중"
  • 기사출고 2018.09.06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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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변협 기획이사 이병주 변호사 긴급진단

유난히 폭염이 기승을 부린 올 8월 재야법조계에선 두 개의 인사장이 변호사들의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법무법인 태평양을 떠나 젊은 후배들과 함께 법무법인 대서양이라는 이름의 작은 로펌을 설립했다는 판사 출신 곽태철 변호사의 개업 인사장이고, 또 하나는 최근 베어링자산운용의 대표이사를 역임한 곽태선 미국변호사를 새로 영입해 에스앤엘 파트너스(S&L Partners)로 새롭게 출발한다는 신&박의 이메일 인사장이었다. 곽 변호사는 국민연금의 유력한 기금운용본부장(CIO) 후보로 손꼽히며 화제가 됐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병주 변호사
◇이병주 변호사

S&L, 곽태선 변호사 합류

두 개의 인사장은 특히 대형 로펌에서 경험을 쌓은 중견 변호사들의 새로운 로펌 설립과 발전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곽 변호사는 "10년간 태평양 변호사로서 각종 소송과 자문 사건을 처리해오다가 정년퇴직을 했다"고 개업의 변을 곁들였다. 또 대한변협 회장을 역임한 신영무 변호사가 주춧돌을 놓은 에스앤엘 파트너스는 세종에서 활약했던 이근웅 전 사법연수원장과 이승구 전 검사장, 도산법 전문인 이병주 변호사와 함께 젊은 변호사들이 가세하며 2013년 말문을 연지 4년 만에 변호사 16명의 적지 않은 규모로 발전을 거듭하는 신흥 중소 로펌으로 유명하다.

대서양과 에스앤엘 파트너스 외에도 로펌업계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대형 로펌 출신들이 새롭게 시도하는 여러 중소 로펌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올 봄 로펌업계의 뉴스 중 하나는 법무법인 세종과 김앤장 등에서 경험을 쌓은 중견 변호사들이 주축이 된 법무법인 LAB 파트너스의 출범이었다. 오랫동안 세종에서 활약한 금융 전문의 조영희 변호사, 세종을 거쳐 최근까지 김앤장에서 활동한 기업법무와 일본 전문가인 김진호 변호사, 광장과 김앤장에서 경험을 쌓은 인사노무와 기업구조조정 등에 밝은 이재훈 변호사, 세종을 거쳐 KL 파트너스에 합류했다가 이번에 다시 LAB의 창립멤버로 가세한 김영주, 김광복, 안진호 변호사 등이 LAB의 주요 멤버들이다. 또 태평양의 IP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조원희 변호사가 1년 전 IP와 스타트업 자문에 특히 초점을 맞춘 법무법인 디'라이트를 세우고 독립해 꾸준한 발전을 이어가고 있으며, 디'라이트엔 중국 전문가로 김앤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조윤현 변호사도 함께 하고 있다.

LAB, 디'라이트 출범 주목

이 외에도 대형 로펌을 떠나 중소 로펌 또는 부티크를 구성해 발 빠른 자문에 나서고 있는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이들 중엔 대형 로펌 시절 높은 전문성으로 이름을 날린 스타급 변호사들도 적지 않다. 김앤장 시절 환경과 M&A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박상열 변호사와 소송 전문의 오관석 변호사도 지금은 김앤장을 떠나 중소 법률사무소를 세워 고객들을 만나고 있으며, 신필종 변호사는 2015년 가을 기업소송 전문 개인법률사무소를 열어 김앤장에서 독립했다.

또 같은 김앤장 출신의 이현철 변호사가 정한진, 김선우 변호사와 함께 2016년 초 '기업법무 전문' 법무법인 기현을 출범시켰다. 기현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1심부터 변호해 유명해지기도 했다. 2015년 가을 출발해 엘리엇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낸 투자자-국가 분쟁(ISD) 등 국제중재와 M&A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KL 파트너스는 세종 출신의 김범수, 이성훈 변호사가 이끌고 있다.

◇이병주 변호사
◇이병주 변호사

로펌업계를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약 50년의 역사가 쌓인 한국 로펌업계는 그동안 변호사들이 전문성을 키워 독립하는 로펌 분화의 역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외연을 넓혀 왔다"고 지적하고, "대형 로펌에서 계속 근무하고 있는 변호사보다 대형 로펌에서 경험을 쌓은 후 나와서 활동하는 변호사가 더 많으면 많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숫자에 차이가 없지 않지만, 로펌을 가리지 않고 상시적으로 소속 변호사의 이탈과 독립이 시도되고 있는 게 대형 로펌 주변의 최근 모습 중 하나다. 대형 로펌들도 전문성이 뛰어난 필수자원의 이탈을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일종의 인력 재배치, 혈액순환이라는 차원에서 변호사들의 이동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도대체 최근 들어 부쩍 활발해진 중견 변호사들의 로펌 이탈 배경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변호사들의 분화가 로펌업계, 법률시장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리걸타임즈가 대한변협 기획이사를 역임하고, 세종을 거쳐 지금은 에스앤엘 파트너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병주 변호사를 만나 가속화되고 있는 한국 로펌의 분화에 대해 들어보았다.

"과거에도 대형 로펌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고 나가고 했으니까 이동 자체가 전혀 새로운 현상은 아니에요. 다만 최근에는 이탈의 규모가 더 커지고, 주요 로펌의 스타급 변호사들이 나가 새로 사무실을 차리는 점이 과거와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변호사는 그러면서 한국 로펌의 역사가 90년대 초, 중반 본격적인 파트너십을 구성한 지 한 세대를 거치며 일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경쟁적으로 대형화를 추구한 나머지 일종의 '규모의 비경제'가 노출되며 소속 변호사들이 이대로 계속 가느니 나가서 새로운 길을 찾자고 '독립의 길'을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90년대 들어 파트너십 구성

-대형 로펌들이 '규모의 비경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인가.

"로펌마다 다를 것이다. 여전히 변호사가 더 필요한, 성장의 여지가 있는 로펌, 업무분야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비경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물론 과거의 로펌 성장기엔 '규모의 경제성' 즉, 유능한 변호사를 더 확보하는 것이 로펌의 업무수행과 수익성에 도움이 되었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한국 로펌들이 두 배 이상으로 규모가 커졌는데, 그때는 수요가 급팽창하며 변호사가 부족해 일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업무수요에 비해 필요 이상으로 커진 규모가 오히려 짐이 되는 '비경제'의 측면이 강한 분야가 적지 않을 것이다."

-로펌에서 '규모의 비경제성'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나.

"예컨대 로펌의 규모가 커지면서 국제중재나 공정거래처럼 같은 업무를 맡는 팀이 복수가 될 경우를 생각해보자. 시너지 효과가 나는 부분도 있겠지만, 보통 내부의 불편한 경쟁이 발생하면서 팀의 분리 내지 이탈을 낳게 될 가능성이 있다."

-만 60세까지 내려온 구성원 변호사의 정년 제도도 파트너 변호사가 늘어나는 데 따른 궁여지책의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지분 파트너의 정년이 너무 빨라지고 있는데, 일종의 규모의 비경제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년 이후로도 고문 내지 계약 파트너로 계속 근무하는 방법이 있지만, 로펌의 주력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점이 문제다. 반면 중소형 로펌에서는 그동안 쌓은 경험과 고객 기반을 가지고 핵심역량으로 기능할 수 있어 독립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대형 로펌에서 규모의 비경제성이 나타나는 가장 종국적인 모습을 분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주요 대형 로펌들이 나름대로 합리적인 분배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숫자를 계속 늘리며 대형화해 가는 과정에서, 외부경쟁의 격화로 인한 변호사 보수의 하락과 내부의 분배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 변호사는 "한마디로 이전보다 변호사 개인에게 돌아가는 수익의 절대적인 금액이나 상대적인 비율이 적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일이 힘들어도 소득이 많다면 회사를 옮길 모티브가 약하지만 일은 힘들고 소득도 줄어들게 되면, 사람들은 아무래도 다른 옵션은 없나 하고 고민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내부 분배 수익성 악화

-대형 로펌의 규모의 비경제를 들었는데, 변호사 개개인의 입장에서도 대형 로펌을 떠나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이병주 변호사는 누구…
◇이병주 변호사는 누구…

"크게 3가지 정도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는 대형 로펌의 지나치게 경쟁적인 라이프 스타일이 맞지 않아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거나 공익활동 등을 병행하려는 자유분방형이다. 또 하나는 주로 시니어 변호사들에게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스스로 전략을 짜 변호사업무를 수행하고 더 많은 수익을 추구하는 자기만의 사무실을 만들고 싶어 나오는 경우다. 일하는 거하고 버는 거하고 거리가 멀어지면 재미가 없다고 할 수 있는데 일종의 보상 불만이 탈퇴 이유인 경우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나머지 하나는 경쟁에 치여서 나오는 경우다. 파트너 승진의 지연이나 배제로 인해 마음이 상해서 나오는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보상 불만'도 요인 중 하나

그는 이중에서도 두 번째 요인에 주목했다. 최근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는, 중견 변호사들이 대형 로펌을 탈퇴하는 유력한 배경이라며 변호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수익도 더 내자 그런 이유로 독립의 길을 찾고 있고, 그런 점에서 한국 로펌업계의 구조조정 과정으로 볼 수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거엔 IP, 해상 등 손쉽게 부티크로 특화할 수 있는 전문 분야의 변호사들이 소규모로 독립해 전문 로펌을 표방했다. 최근엔 M&A 등 회사법, 노동, 국제중재, 소송, 스타트업 전문 등 분야에 관계없이 거의 전 분야에서 부티크, 중소 로펌의 설립이 시도되고 있다.

"한국 로펌의 성장과정에서 전문분야가 더 넓게 형성되고 발전했기 때문이다. 특히 IMF 이후 큰 로펌에서 분야별로 팀들이 형성되고, 이들 팀에서 활약하던 전문 변호사들이 나와 대형 로펌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밖에서도 서비스가 가능해지자 분화와 독립에 러시가 일고 있는 것이다. IT 기술로 대표되는 업무환경의 자동화, 발전도 소규모 사무실의 가능성을 높이는 배경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IT 기술 발전도 한몫

-이번엔 로펌, 변호사가 아니라 수요자, 고객의 입장에서 중견 변호사들의 분화, 독립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듣고 싶다.

"의뢰인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대형 로펌 못지않은 높은 수준의 전문 서비스를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받을 수 있어 긍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고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바쁜 변호사가 가장 나쁜 변호사'라는 말이 있는데, 중소 로펌에선 훨씬 더 겸손하면서도 헌신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고객 서비스가 제고된다. 또 대기업이 아니면 가격 수준이 맞지 않아 대형 로펌을 찾기가 어려웠던 대기업 다음의 기업들도,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가 내려 오면서 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수용할 수 있는 가격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는 이익이 추가된다. 대형 로펌의 분화는 거의 모든 고객들에게 좋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그러한 틈새 시장, 수요가 있기 때문에 중견 변호사들이 대형 로펌을 떠나 독립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병주 변호사
◇이병주 변호사

-대형 로펌의 분화는 변호사들에게도 의미가 적지 않을 것 같다.

"기업도산 및 회생의 원리에 비추어 본다면, 기업이 '규모의 비경제성'으로 인하여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과잉 투자를 해소'하고 '유효자산에 집중'하는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 현재 대형 로펌의 비경제성은 로펌에 소속된 우수 인력의 상당수를 어떤 모양으로든 '과잉자산'으로 만드는 측면이 있다. 이점에서 로펌업계의 분화와 다원화는 한국의 우수한 법률인력을 다시 '유효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고객에 대한 법률서비스의 양적 확대, 질적 향상에 기여할 거라고 생각한다. 중소 로펌에선 대형 로펌에 비해 유지비 등 간접비용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대형 로펌 입장에선 적은 수임료일지 모르지만 대형 로펌 출신이 나와 운영하는 중소 로펌에선 같은 금액이더라도 상당한 수익이 될 수 있다. 덩치가 작아진 만큼 가벼워지는 셈인데, 이 또한 중소 로펌으로 독립한 변호사들의 만족감을 제고하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젊은 변호사들에게 특히 호재"

이 변호사는 이어 "대형 로펌 출신들이 분화하면서 중소 로펌 설립 등 로펌의 전체적인 숫자가 늘어나게 되면 로스쿨 출신 등 젊은 변호사들의 취업기회 확대로 이어지게 되어 젊은 변호사들에게 특히 호재"라고 강조했다.

"대형 로펌 몇 군데만 바라보다가 규모와 지향하는 가치 등에서 차이 나는 다양한 로펌이 추가되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되죠.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월가의 기존 대형 로펌들로부터 퇴짜를 맞은 조셉 플롬(Joseph Flom)이 당시만 해도 신흥주자였던 변호사 4명의 스캐든에 입사해 나중에 M&A의 귀재로 이름을 날리며 스캐든을 기성 로펌을 능가하는 대단한 로펌으로 발전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전문성과 비전을 가진 중소 로펌들이 젊은 변호사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야망을 가진 젊은 변호사들이 중소 로펌을 선택해 꿈을 키우는 그런 도전이 확산되길 기대합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골목상권을 다 먹었다고 하지만, 남다른 맛과 착한 가격으로 무장하고 전국적인 유명세를 누리는 개인 빵집, 동네 빵집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국 로펌업계에도 유사한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 전문성을 갖춘 중견 변호사들의 로펌 신설이 이어지며 대형 로펌과 중소 로펌, 부티크가 공존하며 다양한 고객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는 다원화된 구조로 로펌의 생태계가 변화, 발전하고 있다.

이병주 변호사는 그러나 대형 로펌 출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공이 보장된다고 할 수는 없고, 고객들에게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성과 인적 기반, 그리고 무엇보다도 로펌을 지탱할 수 있는 고객의 확보 등 새로 출발한 중소 로펌들에게 과제가 적지 않다고 주의를 환기했다. 규모의 비경제는 없지만, 고객에게 충분한 수준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중소 로펌 차원의 '규모의 경제'는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런 점에서 대형 로펌들에서 나타나는 '규모의 비경제성'과 중소형 로펌들이 필요로 하는 '규모의 경제' 사이의 새로운 밸런스, 평형점(equilibrium)을 찾는 것이 한국 로펌업계의 구조조정 과제라는 것이 도산법 등 구조조정 전문가인 이병주 변호사의 진단이다.

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