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슨 대처, 서울사무소 문 닫는다
심슨 대처, 서울사무소 문 닫는다
  • 기사출고 2018.08.2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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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개방 6년 지나며 부익부빈익빈 심화
외국변호사들 한국 로펌으로 역류 현상도

로펌업계에선, 과거에 두바이 법률시장이 개방되자 영국과 미국, 특히 미국의 중소 로펌까지 수많은 로펌들이 중동 특수를 노리고 두바이로 몰려 들었다가 2~3년 후 시장에서의 기대가 당초 예상에 크게 못미치자 다시 많은 미국 로펌들이 짐을 쌌다는 얘기가 신흥시장 진출과 관련해 단골 메뉴로 전해지고 있다. 가장 먼저 서울에 사무소를 연 외국 로펌을 기준으로 시장개방의 역사가 6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시장의 사정은 어떨까. 한국엔 2012년 여름 롭스앤그레이(Ropes & Gray), 쉐퍼드 멀린(Sheppard, Mullin), 클리포드 챈스(Clifford Chance) 등 '얼리 버드' 3곳을 시작으로 영미 로펌만 27곳, 여기에 지난 4월 문을 연 중국 로펌 리팡까지 모두 28개의 외국 로펌이 진출해 경쟁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미 로펌들 사이에 부익부빈익빈의 뜨거운 경쟁이 과열되며 조만간 서울사무소를 접고 한국에서 철수할 로펌이 나올 전망이다. M&A와 자본시장 업무, 국제중재 등에서 높은 경쟁력을 보유한 심슨 대처(Simpson Thacher & Bartlett)가 문을 연지 6년 만에 서울사무소를 닫기로 하고 철수 수순을 밟고 있다. 손영진 미국변호사가 이끌고 있는 심슨 대처는 2012년 가을 미국 로펌으로는 네번째로 서울에 사무소를 열고 진출했다. 당시 신라호텔에서 홍명보 전 한국 축구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초청해 올림픽대표팀의 팀플레이에 대해 강연을 듣는 등 성대하게 리셉션을 개최하며 한국에 입성했으나, 경쟁 격화에 따른 실적 악화 등의 요인이 겹쳐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얘기되고 있다.

한국시장이 개방되기 전 영미 로펌들이 홍콩사무소를 베이스로 한국 업무를 수행할 때만 해도 심슨은 한국 기업 등의 IPO와 채권 발행 등 자본시장 분야에서 클리어리 가틀립(Cleary Gottlieb)과 함께 쌍벽을 이루며 활약했으나, 서울 진출 이후엔 클리어리가 독주하는 가운데 폴 헤이스팅스(Paul Hastings), 그린버그 트라우리그(Greenberg Traurig) 등이 가세하며 고전을 면치 못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기에 클리포드 챈스, 링크레이터스(Linklaters), 레이텀앤왓킨스(Latham & Watkins) 등도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등 자본시장 분야는 영미 로펌들이 사건을 따내려고 경쟁하는 가장 힘든 시장 중 하나로 정평이 나 있다.

심슨은 지난해 셀트리온헬스케어 IPO에서 발행사인 셀트리온헬스케어에 자문했다. 또 기아차, 신한은행, Pan Ocean 등 한국의 기업, 은행 등을 대리하여 채권발행과 관련된 딜도 여러 건 수행했으나, 지난해 말부터 딜이 재개된 현대오일뱅크 IPO에선, 2011년 상장을 추진했을 당시 발행사 쪽 자문을 맡았었음에도 그린버그 트라우리그에 자문사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올 하반기 상장을 추진 중인 현대오일뱅크 쪽에서 사실상 자문 로펌을 교체한 것으로, 로펌 시장에선 심슨 대처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다가 지난해 초 그린버그 뉴욕사무소로 옮겼다가 지난해 말 그린버그 서울사무소에 합류한 김익수 미국변호사의 이동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공모규모가 2조원대로 예상되는 현대오일뱅크 IPO는 김앤장과 그린버그가 발행사 쪽 자문을, 주관사 자문은 법무법인 태평양과 클리어리 가틀립이 맡아 진행 중에 있다.

이와 함께 심슨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심슨의 철수 결정은 실적 악화보다도 심슨의 구조적인 원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심슨 대처 측은 그러나 철수와 관련해 아직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심슨 대처 서울사무소엔 현재 손영진 대표와 함께 한준 미국변호사 2명이 상주하고 있다.

한편 심슨 외에도 일감이 없어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인 영미 로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한국시장이 개방되며 한국 로펌에 있다가 영미 로펌으로 직장을 옮겼던 외국변호사 중에 다시 한국 로펌으로 되돌아가는 역류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M&A와 자본시장 등 기업법 자문이 전문인 김치관 뉴욕주 변호사는 김앤장에서 근무하다가 2013년 클리포드 챈스로 옮겨 서울사무소에서 활동하다가 올해 법무법인 광장으로 다시 옮겼다. 또 이에 앞서 미시건 공대를 나온 지식재산권 전문가인 장경선 미국변호사가 폴 헤이스팅스 서울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2017년 봄 김앤장으로 옮겼다.

이런 사정 등을 잘 아는, 미국 로펌의 서울사무소에 근무하는 한 뉴욕주 변호사는, 심슨 외에 한국시장을 떠날 영미 로펌이 더 있겠느냐는 질문에, "서울사무소를 접는 제2, 제3의 영미 로펌이 나오더라도 결코 놀라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서울에 사무소를 열어 진출했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하는 영미 로펌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