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시론] 북한에 관한 법률문제를 생각하며
[권두시론] 북한에 관한 법률문제를 생각하며
  • 기사출고 2018.07.0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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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 서울법대 명예교수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

요즈음 온통 나라가 북미정상회담으로 달아올라 있는 것 같다. 일찍이 겪어보지 않은 한반도의 대격변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걱정을 하는 분도 많지만, 70년간 대립하던 두 나라의 정상이 얼굴을 맞댔다는 문명사적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도 강하다. 북한에 가까운 지역의 땅값이 오른다고 하기도 하고, 기업들도 앞다퉈 북한특수를 사업화하는 데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남북경협, 북한 투자에 관련된 세미나도 잇따라 개최되고 있다.

남북경협 세미나 잇따라 개최

북한의 관련 법령을 익히고, 관련 문제점을 예상하여 여러 가지 사실관계나 문제점을 다루어보는 것은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남한의 기업이 북한에 투자나 다른 거래를 할 때 그 계약조건이 어떻게 되겠느냐, 아니면 북한에 남겨둔 가족과 재산관계에 관한 해결방법 등이 중심이 된 일반적 논의가 아닐까 싶다. 북한법에 대한 소개와 함께 과거의 개성공단이나 현대아산의 선례를 교훈삼아 투자 절차와 방법, 이와 관련된 문제점 검토 등이 우선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와 변협 등에서 북한법 강좌를 마련해 북한법 전문가의 양성에 나선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북한에 관한 법률정보 입수, 북한법 연구에 보다 체계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근본적인 접근 가장 중요

하지만 다방면에서 시도되고 있는 이러한 움직임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에선 아쉬움이 없지 않아 얘기하려고 한다. 북한 투자에 관련된 일회성 법률자문이나 성공적인 투자 관련 법제의 모색을 넘어 좀 더 먼 장래를 내다보면서 근본적으로, 입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독일이 통일되자 한국도 머지않은 장래에 비슷하게 통일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브란덴부르크 성벽이 무너진 광경에 놀라움과 환호에 들떠있던 때가 있었다. 통일에서 파생되는 법률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하여 교훈을 삼겠다고 관련 부처는 물론 법원도 그에 관한 연구팀을 구성하고 통일된 독일을 너도 나도 수없이 방문한 바 있다. 그때에도 북한에 남은 가족과 재산문제에 관하여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논의가 무성했던 기억이 있다.

북 사법기관에서의 해결 가능성

체제 개방 또는 통일 후를 대비한 수많은 법적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에겐 좀 더 장기적이고 근본적으로 숙고하며 천착할 문제들이 많다.

우선 들뜬 마음에 북한에 진출한 기업이나 개인들이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아무리 특약을 잘 맺는다고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북한의 사법기관에서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예컨대 다른 곳에서 분쟁을 국제상사중재로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집행은 북한의 사법기관의 힘을 빌어 북한 현지에서 해야 할 것 아닌가. 이같은 경우에 북한에 진출한 기업이나 개인이 북한법의 적용과 북한 주도의 분쟁해결방안이나 집행방안을 쉽사리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은 개방의 경험은커녕 이와 같은 법적 접근방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70년 이상 공산주의 독재 치하에서 개인의 인권이나 사유재산권을 부정하고 자본주의 방식에 의한 경제활동을 해본 일이 없는 북한 당사자를 상대로 북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잘잘못을 다투는 경우를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통일이 되었을 경우에 그대로 북한 검찰의 수사를 받고, 북한의 변호사에게 의뢰하여 북한의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남한의 국민이나 기업이 있을까. 또 북한의 대학에서 법학교육을 받고자 하는 일반적 교육수요가 있으리라고 보는가.

독재국가의 '캥거루 법원'들

북한의 독재체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의 독재자들이 가장 먼저 취하는 행동엔 권력을 손에 쥐자마자 법률가를 깡그리 숙청해버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독재치하에서는 법의 지배에 의한 정상적인 절차와 운영은 상상할 수 없다. 더군다나 북한은 자유와 인권, 개인의 권리나 자본주의 방식을 경험해본 일이 없는 체제이다. 시리아, 이라크, 이란, 리비아 등 다른 독재국가들도 모두 법률가를 숙청하고 그야말로 독재자의 입맛에 맞는 '캥거루 법원'을 운영해오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장래에 남북한이 통일이 될 경우 극히 단기간의 과도적인 조치는 모르겠지만, 남한과 북한이 각각 자기네의 법과 소송제도, 형사제도를 종전대로 따로 따로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통일에 법률적으로 대비하려면 일시적 기회에 편승하여 피상적 자문을 하고 말 것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면서도 남과 북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법과 사법제도를 새로 만들고 그들을 가르치면서 함께 운영할 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국제형사재판소장으로서 리비아나 이라크의 체제전환을 유심히 관찰해온 필자에게, 독재체제를 무너뜨린 그들이 법치를 확립하지 못하고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참뜻을 몰라 잃어버린 많은 기회와 낭비 그리고 엄청난 사회혼란은 큰 우려와 실망이었다. 해외로 도피하여 살아남은 망명 법률가들은 귀국하여 개인의 정치적, 경제적 과실을 따먹기 바빠서 새로운 나라의 건설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우리 한반도가 통일이 되면 우리는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거의 외부의 도움 없이도, 법치의 전통이 있고 국제적 훈련이 된 남한의 법률가들이 북한의 법학교육은 물론 법원과 검찰의 조직과 운영에 관하여 여러모로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통일 전에라도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통하여 국제사회에 등장하여 시장경제와 법치체제 그리고 그에 따른 운영의 노하우를 필요로 할 경우에 우리가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시장경제에 걸맞은 법의 지배체제를 점차 한반도에 공통적으로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고 북한의 국립대학의 법학교수들을 그대로 둔 채 그들에게 시장경제와 법치에 관한 훈련을 새삼스럽게 단기간 시켜서 법학교육을 계속 담당하게 하고, 북한의 변호사와 판사, 검사를 그대로 둔 채 새로운 국제적, 보편적 가치와 법원칙을 열심히 가르쳐서 민주사법을 운영하라고 권장할 수 있다고 보는가. 물론 이 문제는 개인별 견해가 다를 것이고, 정치적, 정책적 결론이 어떻게 도출될는지 당시의 통일권력이 민의를 수렴하여 결정할 문제이다.

통일 후 북한의 사법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들에게 맡기자는 견해는 엄청난 낭비와 시행착오를 치르고도 전혀 일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아마도 오랜 세월에 걸쳐 매번 정치적 딜을 한다면 모를까 개인의 권리보장이나 법에 따른 정상적 기업활동은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법조 인재 양성해 동독에 파견

초기에 현상유지적 접근방법을 취했다가 실패한 독일에선 각 주마다 상당한 독립성이 있으므로 접근방법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으나, 서독에서 주요한 법 분야별로 양성했던 많은 인재를 통일 후 동독의 각 사법 및 교육기관에 요원으로 파견하여 사법운영의 민주화와 법치의 수요에 대비하였다. 그리하여 사법체제의 빠른 정상화를 이룩하였다.

우리도 독일처럼 통일에 대한 대비와 함께 북한의 개방에 대한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예에서 보듯이 독재가 무너진 뒤의 법치적 공백을 어떻게 메꾸느냐 하는 문제는 통일 후 가장 시급하고도 기본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정부가 앞장서서 법조계와 법학계의 전폭적인 협조를 얻어 신속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본다.

SJPIP 논의 활발

경제적, 역사적 연관 관계 때문에 북한보다도 시리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서구의 법률가들은 현재 시리아의 사법절차혁신프로젝트(Syria Justice Process Innovation Project)에 관한 논의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독재체제에 의하여 운영되어온 시리아의 사법제도에 관한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고, 아사드의 독재체제가 무너진 뒤에 누가 어떻게 새로운 조직, 운영, 절차를 혁신하여 법의 지배에 터 잡은 정상적인 사법제도를 구축할 것인가, 그리하여 어떻게 일상생활에서의 법적 질서를 세울 것인가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구체적 행동계획을 수립하고자 하는 모임이 있다. 그들은 서구 선진국의 재정지원을 받으면서 아사드 체제가 종식되면 바로 시리아로 들어가서 법의 지배의 토대를 구축할 준비가 되어 있다. 시리아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아무 움직임이 없고, 오로지 외부의 전문가들이 진지하게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보고 다소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우리에게는 타산지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부와 법조계는 힘을 합쳐서 북한이 개방정책을 택하여 국제무대에 등장하였을 때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법치체제와 제도, 인력을 준비하였다가 제공하고, 통일 후에는 우리의 인권과 법치주의, 시장경제의 경험과 지식을 전수하고 훈련된 인력을 배치하여 법제상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준비작업을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송상현(서울법대 명예교수, 전 국제형사재판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