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 청와대에 우호적 판결 조율"
"양승태 사법부, 청와대에 우호적 판결 조율"
  • 기사출고 2018.05.27 23: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조사단, 행정처 작성 관련 문건 확인
상고법원 어렵자 압박카드 활용 검토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그동안 사법부는 VIP(박근혜 당시 대통령)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왔다"는 내용이 담긴 내부 문건을 작성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문건에는 국가적,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청와대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심각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어 큰 파장이 예상된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5월 25일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192쪽 분량의 조사보고서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보고하고 언론에 공개했다.

문제의 내용이 담긴 문건은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란 제목의 문건으로, 2015년 11월 19일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직접 작성했다. 문건은 먼저 "19대 국회가 12. 9. 정기국회 종료로 사실상 활동 종료가 예상되고 청와대, 법무부의 반대 기조에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민정수석이 대통령의 상고심법관 임명권 침해를 이유로 확고한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므로 민정수석의 고착된 인식을 변경할 수 있는 특단의 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작성 배경을 설명하고, 압박카드로 '청와대 국정운영기조를 고려하지 않는 독립적, 독자적 사법권 행사 의지를 표명'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독립적, 독자적 사법권 행사 의지 표명이 아니라 그동안 사법부가 VIP와 BH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내에서 최대한 협조해 왔다는 대목이다. 문건은 모두 다섯 유형으로 나눠 BH에 협조한 사례를 열거하고 이와 함께 "국가적 ·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이런 설명을 한 후에 사법부 최대 현안이자, 개혁이 절실하고 시급한 상고법원 추진이 BH의 비협조로 인해 좌절될 경우, 사법부로서도 더 이상 BH와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명분과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고지해야 한다고 압박카드 활용을 제시한 것이다.

문건이 열거한 VIP와 BH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법부가 권한과 재량 범위내에서 최대한 협조해 온 유형과 사례는 ①합리적 범위 내에서의 과거사 정립(국가배상 제한 등), ②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사회적 안정을 고려한 판결(이석기, 원세훈, 김기종 사건 등), ③국가경제발전을 최우선적으로 염두에 둔 판결(통상임금, 국공립대학 기성회비 반환, 키코 사건 등), ④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KTX 승무원, 정리해고, 철도노조 파업 사건 등), ⑤교육 개혁에 초석이 될 수 있는 판결(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 등으로, 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VIP와 BH에 힘을 보태 왔다고 명시했다.

이에 앞서 임종헌 차장이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으로 있을 때 기조실 심의관들에게 지시해 작성, 취합하여 완성하게 한 후 2015년 7월 28일 보고받은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 방안' 문건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이 문건은 청와대 설득의 구체적 방안의 첫 번째로,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구체적 협력 사례를 제시하는 것을 들고 있고, 그중에서도 첫 번째가 '판결을 통한 과거 왜곡의 광정'으로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 왔는데, ①과거사 정립, ②자유민주주의 수호, ③국가경제발전 최우선 고려, 4대 부문 개혁 중 ④노동, ⑤교육 관련 판결이 이에 해당한다고 기재하고 있다.

또 구체적 설득전략과 관련해, 사전 고려사항으로 최근의 우호적 분위기 등을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구체적으로는 박지원 의원 일부 유죄 판결, 원세훈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 등 여권에 유리한 재판결과는 BH에 대한 유화적 접근 소재로 이용 가능하고, 특히 현 정권의 민주적 정당성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원세훈 사건은 파기환송심에서 실체 판단 문제가 남아 있어, BH 관심 대상에서 완전 소진되지 않은 상태라고 안내하고, "한명숙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박지원 의원 알선수재 사건 등 향후 예정되어 있는 정치인 형사 사건에도 BH의 관심과 귀추 주목될 것"이라며 "사법부에 대한 강경 일변도 입장보다는 주요 현안 관련 접점 모색을 위한 유화적 태도 보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분석을 달았다.

조사단은 이와 관련, '최근의 우호적 분위기 등을 적극 활용' 부분은 사법행정권 남용의 의혹이 뚜렷이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임종헌 전 차장 직접 작성의 문건에서는 그와 같은 조율 역할까지 수행해 왔는데 상고법원 입법안이 좌절될 경우 더 이상 청와대와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명분과 이유가 없고 중립적 사법권 행사 의지의 표방이라 하더라도 심리적 압박은 가할 수 있다고 분석 및 보고하고 있는바, 이는 당시의 임종헌 전 차장이 정부에 우호적인 판결이 있도록 협력해 왔고 비우호적인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조율하였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으로 설령 그러한 협력이나 압박카드 활용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청와대가 대법원이나 행정처가 그러한 역할을 실제로 수행하고 있음을 믿게 하고 앞으로 더욱 심한 재판 관여 내지 간섭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 내용으로 그러한 문건을 당시 상고법원 입법 추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행정처 차장이 직접 작성하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적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사단은 이 외에도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성완종 리스트 영향 분석 및 대응 방향 검토' 등 임종헌 실장이 지휘하던 기조실에서 작성된 여러 문건을 찾아냈다. 

조사단은 전교조 사건 관련 문건에 대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재항고 사건에 관하여 임종헌 기조실장의 지시로 정 모 심의관이 재항고인용 여부와 재판 시점에 관하여 청와대의 입장을 분석한 후 상고법원의 입법 추진 등을 위하여는 재항고를 인용하는 것이 이득이 될 것이고 그 결정시기는 통진당 위헌정당해산심판 선고기일 이전에 하여야 대법원의 이득을 최대화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는바, 이 문건은 사법행정권이 대법원의 재판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대법원의 재항고인용의 결론이 있게 되면 후에 대법원의 본안에서도 동일한 취지의 결론이 유지될 것으로 함부로 관측하고 있는바 이러한 검토는 실행 여부를 떠나 검토 그 자체로 사법행정권의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조사단은 또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한 성향, 동향, 재산관계 등을 파악한 내용의 파일들이 존재하였음은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도,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해 리스트를 작성하여 조직적, 체계적으로 인사상의 불이익을 부과했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른바 이번 조사를 촉발시킨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그러나 "상고법원 입법 추진 과정에서 내부의 비판에 대해서는 이를 수렴하여야 할 의사로 보기보다는 걸림돌로 보고 비판의 핵심그룹인 법관들을 분류하여 제어 · 통제하려 하고, 사법부의 독립에 대한 침해의 태도를 보이는 청와대에 대해서는 오히려 입법 과정에서 협조를 얻어야 하는 동반자로 보고 재판의 결과를 유화적 접근 소재로 이용하거나 진행 중인 재판을 협상의 도구로 활용하려 했다"며 "재판과 관련하여 특정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줄 것인지 여부를 검토한 것이나 특정 법관들에 대한 성향 등을 파악하였다는 점만으로도 헌법이 공정한 재판의 실현을 위해 선언한 재판의 독립, 법관의 독립이라는 가치를 훼손하려는 것으로서 크게 비난받을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