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예상수명 넘긴 의료사고 환자 치료비, 병원이 계속 부담해야"
[의료] "예상수명 넘긴 의료사고 환자 치료비, 병원이 계속 부담해야"
  • 기사출고 2018.05.18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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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충남대병원에 패소 판결
"종전 판결 기판력에 저촉돼도 청구권 살아 있어"

의료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환자가 법원이 예상한 기대수명을 넘겨 그 병원에서 계속해서 치료를 받더라도 병원은 치료비 등을 환자 측에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환자 측에서 남은 수명을 고려해 일정시간까지만 치료비를 청구하는 바람에 이후의 소 제기가 기판력이 저촉되더라도 치료비 청구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어 병원에 여전히 손해전보 즉, 치료의 의무가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4월 26일 충남대병원이 의료과실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 김 모(여)씨와 남편을 상대로 낸 치료비 등 청구소송의 상고심(2017다288115)에서 "피고들은 연대하여 진료비 9,806,120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김씨는 1998년 5월 충남대병원에서 수술을 받다가 의료진의 과실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자 김씨와 가족들이 충남대병원을 상대로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 법원에서 김씨의 남은 수명을 2004년 4월까지(기대여명기간 4.43년)로 보고 일실수입과 함께 향후 치료비와 개호비, 위자료 등의 지급을 명하는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됐다.

그러나 김씨가 법원이 예상한 여명기간인 2004년 4월 이후에도 생존하자 김씨와 가족들은 다시 소송을 냈고, 법원은 김씨의 수명을 2012년 6월까지(기대여명기간 최대 8.4년)로 재차 계산한 뒤 김씨의 생존을 조건으로 이때까지의 향후치료비와 2037. 9. 28.까지의 개호비 등을 추가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차 소송에서 김씨 등은 향후개호비의 경우 우리나라 평균 여성의 평균여명 종료일을 고려하여 2037. 9. 28.까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을 청구한 반면, 향후치료비의 경우 감정결과 인정된 김씨의 기대여명 상한선이 8.4년임을 고려하여 2012. 12. 31.까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만을 청구하였다.

이후 김씨가 2차 의료소송이 예상한 여명기간인 2012년 6월을 넘겨 생존하자 김씨는2014년 2월 충남대병원을 상대로 당초 예측된 여명기간을 넘어 생존함으로써 추가로 발생되는 손해에 관한 배상을 청구(3차 소송)했으나, 법원은 김씨의 소극적 손해배상청구(생계비)는 일부 인용하였으나, 2014. 7. 10. 이후의 향후치료비 청구 등 적극적 손해배상청구 부분은 2차 소송의 기판력에 저촉된다고 보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충남대병원이 "김씨가 계속 입원치료를 받고 있음에도 2015년 1월부터 12월까지 발생한 진료비 9,806,120원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김씨와 김씨의 진료비 채무를 연대보증한 남편을 상대로 진료비의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과 항소심이 충남대병원의 손을 들어주자 김씨 등이 상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특히 "김씨가 원고 병원에 입원함으로써 발생한 진료비 등에 관하여 김씨가 이를 손해의 전보에 불과하여 진료비채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없다"며 "이미 김씨에게 발생한 적극적인 손해가 금전의 형태로 배상을 받아 모두 전보되었다고 평가되었음에도, 원고 병원이 김씨에 대하여 지출한 진료비 등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의 전보에 불과하다고 본다면, 김씨는 의료사고로 자신에게 발생한 적극적 손해를 이중으로 배상받게 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그러나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원고 병원의 청구를 기각하는 취지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김씨가 2차 의료소송에서 2013년 이후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치료비 등을 청구할 수 있었고, 실제로 이를 청구하였더라면 김씨의 생존을 조건으로 인용되었을 것임이 명백함에도, 김씨가 2차 의료소송에서 2013년 이후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치료비 등을 청구하지 않아 김씨가 이를 별도의 소송에서 청구하는 것이 2차 의료소송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어 소송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해당 청구권 등이 실체법상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하고, "김씨가 2013년 이후에 발생한 치료비를 원고로부터 실제로 변제받았다거나 김씨가 해당 청구권을 포기하였다는 등의 사정이 없는 이 사건에서, 원고가 김씨를 치료하는 것은 여전히 원고 소속 의료진의 과실로 김씨에게 발생한 손해를 전보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원고는 피고들에 대하여 2013년 이후 발생한 진료비 등의 지급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의사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탓으로 오히려 환자의 신체기능이 회복불가능하게 손상되었고, 또 손상 이후에는 그 후유증세의 치유 또는 더 이상의 악화를 방지하는 정도의 치료만이 계속되어 온 것뿐이라면 의사의 치료행위는 진료채무의 본지에 따른 것이 되지 못하거나 손해전보의 일환으로 행하여진 것에 불과하여 병원 측으로서는 환자에 대하여 그 수술비와 치료비의 지급을 청구할 수 없다"며 "이러한 법리는 환자가 특정 시점 이후에 지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향후치료비를 종전 소송에서 충분히 청구할 수 있었고 실제로 이를 청구하였더라면 그 청구가 적극적 손해의 일부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졌을 것임에도 환자가 종전 소송에서 해당 향후치료비 청구를 누락한 결과, 환자가 이를 별도의 소송에서 청구하는 것이 종전 소송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어 소송법상 허용되지 않는 경우에도 환자가 종전 소송에서 해당 청구를 누락한 것이 그 청구권을 포기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밝혔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