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판사 '재벌 편법 富세습' 비판
현직판사 '재벌 편법 富세습' 비판
  • 기사출고 2006.04.12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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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법 서정 판사 "이익환수 또는 처벌 강화 필요"'판례연구회' 모임서 '재벌 부당지원행위' 주제 발표
(서울=연합뉴스) 검찰이 현대 ㆍ 기아차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비리 의혹을 내사하던 시기에 현직 판사가 투자를 가장한 재벌의 재산 세습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논문을 발표한 사실이 드러나 눈길을 끌고 있다.

◇서정 판사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서정(35 ㆍ 사법시험 36회) 판사는 지난달 17일 서울대에서 열린 '경제법판례연구회' 정기모임에서 재벌의 부당지원행위를 주제로 '지원행위의 부당성 판단기준' 판례평석(評釋)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1998년 SK해운의 유상증자에 SK그룹 3개 계열사가 참가한 것이 부당지원행위라며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조치가 정당하다는 지난해 대법원 판례를 평석 대상으로 삼아 재벌 부당지원과 제재조치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특히 투자를 가장한 재벌의 부(富)의 이전(빼돌리기) 문제를 다룬 부분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통상의) 지원행위는 지원 주체로부터 객체로 부가 이전하는 것이고 신주인수는 일종의 투자이다. 따라서 투자는 경제발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모든 투자를 규제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지원행위 규제에 원칙적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그는 부당 거래를 일삼는 재벌에 대해서는 "부의 창출을 위한 투자인지, 투자를 가장한 부의 이전인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지만 극단적 사례는 규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를 들어 A회사의 지배주주 갑이 B회사를 소유할 경우 갑은 개인적 이익을 위해 (B사에 투자하는 식의) 투자를 가장한 빼돌리기를 감행할 수 있다. 이는 부의 창출이 아닌 부의 이전이 목적이다"고 분석했다.

그는 "A회사에 대한 갑의 지분이 낮아질수록 빼돌리기의 유인이 커지고, 재벌의 특징인 '소수주주 지배체제'는 빼돌리기에 취약하지만 상법 규정은 배후의 지배주주가 관계된 내부거래 문제를 해결하는데 대단히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재벌의 부당내부거래에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과징금 부과 등으로 '규제'하는 경향은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가했다.

그는 "공정거래법을 재벌 총수의 부나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을 규제하는 제도로 이해할 수 있는지 문제이다. 이는 경제력 집중의 의미를 소유 집중으로 파악하는 것인데 대법원 판례는 다른 입장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

대법원은 삼성SDS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삼성그룹 후계자 이재용씨 등이 저가 매수한 데 대해 2004년 "부의 세대간 이전이 가능해지고 경제력이 집중될 여지가 있다는 것만으로 공정거래 저해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그는 "재벌의 빼돌리기가 국민경제에 해악을 미치는 행위인 점은 분명하지만 공정거래법이 그런 행위의 억제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삼성에버랜드 사건처럼 이 문제는 기업지배구조의 관점에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결국 공정거래법으로 재벌의 재산 빼돌리기를 규제하는 시도는 무리한 법적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미국처럼 이익을 환수하도록 법령을 보완하거나 형법상 처벌을 강화하는 '정공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며 보완 필요성을 제기했다.

서 판사는 이 논문에 대해 "재벌의 부당지원 문제를 주제로 논문을 쓰기에 앞서 작성한 초안적 성격의 논문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임주영 기자[zoo@yna.co.kr] 2006/04/06 08: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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