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분석] 조합설립인가 취소와 종전 추진위의 부활
[판결분석] 조합설립인가 취소와 종전 추진위의 부활
  • 기사출고 2018.01.0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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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철 변호사]
1. 들어가며

"추진위원회"는 정비조합설립과 정비사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토지등소유자들이 결성하는 단체를 말합니다. 일단 조합설립인가처분을 받아 추진위원회의 업무와 관련된 권리와 의무가 정비조합에 포괄적으로 승계되면, 추진위원회는 그 목적을 달성하여 소멸합니다(대법원 2013. 12. 26. 선고 2011두8201 판결).

◇장현철 변호사
그런데 실무에서는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무효 또는 취소가 되는 경우, 종전 추진위원회가 부활한다는 견해와 한 번 소멸한 이상 추진위원회가 다시 부활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대상판결은 조합설립인가처분이 취소되면 종전 추진위원회가 부활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2. 사안의 개요

원고(신당10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는 피고(서울특별시 중구청장)로부터 2005. 2. 4. 설립승인을, 2007. 1. 9. 조합설립인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일부 조합원은 조합설립동의서 중 일부가 관계법령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무효라는 이유로 위 조합설립인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는데, 법원은 2007. 11. 14. 위 조합설립인가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하였고, 그 판결은 2008. 6. 19. 확정되었습니다. 이후 원고는 2012. 7. 16. 피고에게 일부 궐위된 추진위원을 충원하기 위한 추진위원 변경신고를 하였는데, 피고는 원고가 2007. 1. 9. 조합설립인가를 받으면서 해산되었다는 이유로 원고에게 신고 처리불가를 통보하였습니다.

3. 이 사건의 쟁점

조합설립인가처분이 취소되거나 무효로 확인되는 경우, 종전 추진위원회가 그 지위를 회복하는지, 아니면 회복하지 못하는지

4. 대상판결의 판단

대상판결은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취소된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추진위원회가 그 지위를 회복하여 다시 조합설립인가신청을 하는 등 조합설립추진 업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16. 12. 15. 선고 2013두17473 판결)

(1)조합설립인가처분이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취소된 경우에는 조합설립인가처분이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고, 그 조합은 청산사무가 종료될 때까지 청산의 목적범위 내에서 권리·의무의 주체로서 잔존할 뿐이므로(대법원 2012. 3. 29. 선고 2008다95885 판결, 대법원 2012. 11. 9. 선고 2011두518 판결 등 참조), 이러한 경우까지 추진위원회가 그 존립목적을 달성했다고 보기 어렵다.

(2)일단 조합이 설립된 이상 추진위원회는 그 목적을 달성하여 확정적으로 소멸하고 그 후에 조합설립인가처분이 취소되더라도 그 지위를 회복할 수 없다고 본다면, 조합은 이미 청산 목적의 범위 내에서만 존속할 뿐이어서 정비사업을 추진할 수 없으므로, 당해 정비구역 내에서 정비사업을 계속 추진할 아무런 주체가 없게 되어, 법원의 판결에서 들었던 조합설립인가처분의 하자가 아무리 경미한 것이라 하더라도, 당해 정비구역 내에서 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는 추진위원회 구성 및 동의서 징구 등 최초부터 모든 절차를 새롭게 진행해야 하는 사회·경제적 낭비가 따를 수밖에 없다.

(3)조합설립인가처분이 취소된 경우 추진위원회가 그 지위를 회복한다고 보더라도, 정비사업의 계속 추진에 반대하는 토지 등 소유자로서는 추진위원회가 다시 조합설립인가신청을 하기 이전까지 법령이 정한 바에 따라 동의를 철회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토지 등 소유자의 권익 보호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다.

(4)2015. 9. 1. 법률 제13508호로 개정되어 2016. 3. 2. 시행된「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제17조의2 제1항, 제2항은, 법원의 판결로 조합설립인가의 무효 또는 취소가 확정된 경우 '추진위원회'가 일정한 요건하에 동의서의 유효성에 다툼이 없는 동의서를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앞서 본 사정들을 고려하여 조합설립인가처분이 취소된 경우 추진위원회가 그 지위를 회복함을 전제로, 토지 등 소유자의 권익 보호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조합설립인가신청을 하는 등 정비사업을 계속 추진할 수 있게 한 것으로 보인다.

5. 대상판결의 문제점

대상판결은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①추진위원회승인처분과 조합설립인가처분은 단계적 행정행위에서 예비결정(사전결정)과 본처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예비결정이란 최종적인 행정결정을 내리기 전에 사전적인 단계에서 최종적 행정결정의 요건 중 일부에 대해서 내려지는 종국적인 판단을 의미합니다. 예비결정은 본처분이 내려지면 그 속에 흡수되어 별도의 처분으로 인정받지 못하므로, 본처분이 취소되면 본처분과 함께 소멸합니다. 대상판결에 따르면 본처분에 따른 예비결정의 소멸은 본처분의 취소 또는 무효를 해제조건으로 해야 하는데, 이는 예비결정과 본처분의 기본개념과 맞지 않습니다.

②대법원은 "원자로 및 관계 시설의 부지사전승인처분은 그 자체로서 건설부지를 확정하고 사전공사를 허용하는 법률효과를 지닌 독립한 행정처분이기는 하지만, 건설허가 전에 신청자의 편의를 위하여 미리 그 건설허가의 일부 요건을 심사하여 행하는 사전적 부분 건설허가처분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어서 나중에 건설허가처분이 있게 되면 그 건설허가처분에 흡수되어 독립된 존재가치를 상실함으로써 그 건설허가처분만이 쟁송의 대상이 되는 것이므로, 부지사전승인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는 소의 이익을 잃게 되고, 따라서 부지사전승인처분의 위법성은 나중에 내려진 건설허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에서 이를 다투면 된다"(대법원 1998. 9. 4. 선고 97누19588 판결)고 판시하였는데, 대상판결의 논리에 따르면 부지사전승인처분은 나중에 내려진 건설허가처분이 취소되면 다시 부활하게 되므로, 이러한 경우를 대비하여 부지사전승인처분에 대한 소의 이익도 인정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즉, 대상판결은 대법원의 기존 판례의 태도와 모순됩니다.

③조합설립인가처분이 취소되거나 무효로 확인되더라도 그 효력상실로 인한 잔존사무의 처리와 같은 업무는 여전히 수행되어야 하므로 주택재건축사업조합은 그 청산사무가 종료될 때까지 청산의 목적범위 내에서 권리·의무의 주체가 되고, 조합원 역시 청산의 목적범위 내에서 종전 지위를 유지하며, 정관 등도 그 범위 내에서 효력을 가집니다(대법원 2012. 11. 29. 선고 2011두518 판결). 추진위원회의 부활을 인정하면 청산조합과 그 청산조합에 흡수되어 소멸된 추진위원회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데, 이는 논리모순입니다.

④대상판결은 "법원의 판결에서 들었던 조합설립인가처분의 하자가 아무리 경미한 것이라 하더라도, 당해 정비구역 내에서 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는 추진위원회 구성 및 동의서 징구 등 최초부터 모든 절차를 새롭게 진행해야 하는 사회·경제적 낭비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근거를 들고 있으나, 조합설립인가처분의 하자가 극히 경미하다면 이를 취소사유가 아니라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해야 하고, 설령 취소사유라고 보더라도 사정판결(행정소송법 제28조)을 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면 됩니다. 만약 대법원이 경미한 하자를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의 법률관계?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조합설립인가처분을 함부로 취소하면 오히려 사회 · 경제적 낭비를 초래합니다.

⑤대상판결에서 추진위원회는 그 지위 회복이 확정된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가 4년이 경과한 이후에야 추진위원 중 일부를 변경하겠다는 신청을 했을 뿐인데, 이처럼 실무상 조합설립인가처분이 취소되거나 무효로 확인된 경우에, 그 조합설립인가처분을 받았던 추진위원회가 정비사업을 계속할 동력을 확보하여 다시 정비사업을 추진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비사업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조합설립에 실패한 기존 추진위원회가 아니라 새로운 추진위원회가 정비사업을 추진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⑥도시정비법 제17조의2는 동의서 재사용의 주체를 기존의 추진위원회로 제한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조합설립인가의 무효 또는 취소가 확정된 날부터 3년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간 내에 새로운 조합을 설립하기 위한 창립총회를 개최할 것'이라는 요건을 규정하여 정비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담보하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새로운 추진위원회가 동의서를 재사용하여 신속하게 정비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대상판결은 비록 도시정비법 제17조의2가 적용되는 사건은 아니지만 만약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원고는 3년 내에 창립총회를 개최하지 못하였으므로, 기존 추진위원회에 대한 동의서의 재사용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다만, 대상판결은 조합설립인가처분이 취소되거나 무효로 확인되는 경우, 종전 추진위원회의 지위에 대한 기존의 견해 대립을 부활설의 입장에 따라 정리하여 실무상 혼란을 없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장현철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hcjang@yulch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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