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부하직원 사망사고 처리과정 스트레스로 자살…업무상 재해"
[노동] "부하직원 사망사고 처리과정 스트레스로 자살…업무상 재해"
  • 기사출고 2017.12.2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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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무리한 업무지시, 징계해고로 고통"
동료간 다툼으로 숨진 부하직원의 사망사고 처리과정에서 징계해고가 의결되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자살한 회사 부장에게 업무상 재해가 인정됐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김정중 부장판사)는 12월 14일 자살한 신 모씨의 부인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2016구합51863)에서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LCD 검사장비를 제조 · 판매하는 회사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던 신씨는 지난 2014년 9월 함께 중국 소주에 있는 LCD 생산공장으로 출장을 간 부하직원이 동료 간 다툼으로 사망한 후 같은해 10월 귀국했으나 한 달 후 자택 안방에서 자살했다.

사건 당시 신씨는 거래처 업무 후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복귀했으나 노래방에서 유흥을 즐기던 부하직원들 사이에 접대부 팁을 지불하는 과정에서 싸움이 일어 부하직원 A씨가 동료 이 모씨의 폭행에 넘어지면서 시멘트에 머리를 부딪혀 병원으로 응급 후송됐고, A씨는 2주 후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씨는 중국 공안의 조사를 받고 구속됐다.

신씨가 회사 대표에게 문자메시지로 상황을 보고하자, 회사 대표는 신씨에게 문자메시지로 '단순 사고로 잘 처리하라'는 등의 업무지시를 했다. 사고 후에도 평소와 같이 업무를 수행해온 신씨는 같은해 10월 스트레스로 인해 당초 일정보다 하루 일찍 귀국했다. 회사는 신씨에게 중국 공안에 출석해 사건 경위와 전말에 대해 진술할 것을 지시했으나 신씨는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응하지 않았고, 급성 스트레스로 인해 2~3개월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회사는 같은해 11월 징계인사위원회를 열어 회사의 이미지를 실수시키고 회사에 경제적 피해를 입혔다는 등의 이유로 신씨를 해고하기로 의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신씨는 끝내 자살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상무가 신씨에게 '회사 사활이 걸린 문제이므로,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씨가 중국에 다녀와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이에 신씨의 부인이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사고는 업무 시간 외에 신씨가 없는 자리에서 발생하였고, 신씨는 신속히 사고 상황을 상부에 보고하였음은 물론, 상부의 지시에 따라 출장 업무를 모두 이행하였으며, 사고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건강 악화로 사고 수습을 위해 출장 명령에 응하기 어려웠음에도 징계해고 처분을 받았다"며 "신씨는 부하직원의 사망사고와 이에 관한 회사의 신씨에 대한 무리한 업무지시와 징계해고 등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을 정도의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신씨의 정신과적 질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 등이 현저히 저하됨으로써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신씨가 개인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정서가 불안정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자살에 이르게 됨으로써 신씨의 성격 등 개인적 소인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그것만으로 신씨의 자살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할 수도 없다"고 지적하고, "신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와 달리 본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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