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법원, 첫 영어 변론 실시
특허법원, 첫 영어 변론 실시
  • 기사출고 2017.09.22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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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순 변호사]
한해 약 500조원 규모에 이른다는 전 세계 특허소송시장을 둘러싼 주요국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특허소송은 기업활동의 국제화, 기술혁신이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현실, 무선통신 등 주요 기술의 세계 표준화(standardization), 각국 특허법률과 제도의 통일화(harmonization) 등에 따라 여러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어, 그 규모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장덕순(좌) 변호사, 남기윤 변...
글로벌 기업들은 국가별로 시장의 규모와 중요성 등에 대한 평가에 더하여, 그 법원의 전문성, 특허권자의 승소율, 금지명령(injunction)과 손해배상 등 구제수단(remedies)이 얼마나 신속하고 충실하게 주어지고 또 효과적으로 집행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특허소송을 통해 노리는 목적 달성에 가장 적합한 국가의 법원을 선택하는 '포럼 쇼핑(forum shopping)'을 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이 이러한 추세에 맞추어 선제적인 법적 · 제도적 정비를 통해 세계 특허소송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시아 통합특허법원' 가능성 제기

그런데 세계 지식재산 5대 강국이라는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나 속해 있는 아시아 지역은 특허소송시장에서 아직은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이들 국가들은 아시아 역내에서 주도적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더욱이 '아시아 통합특허법원'의 출범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어 각국은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법적 · 제도적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대법원이 국회, 법원, 학계, 산업계, 실무가들로 구성한 '지식재산 중심법원(IP 허브코트) 추진위원회'는 수차례의 토의 끝에 'IP 허브코트' 추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건의문을 채택하였고, 그의 일환으로 특허법원 내의 '국제재판부'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인사이동 없이 많은 사건 담당

국제재판부를 설립하고 실질적으로 그 효용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전문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최근 TC Heartland v. Kraft Foods 사건 판결로 인해 장차 담당하는 사건의 수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나, 그 동안 텍사스주 동부법원(United States District Court for the Eastern District of Texas)에는 다른 법원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수의 특허소송이 제기되어 왔는데, 이는 높은 전문성에 기인한다는 것이 주된 분석이다.

텍사스주 동부법원 판사들의 대부분은 인사이동 없이 타 법원에 비해 월등히 많은 건수의 특허소송을 담당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높다. 또한 판사 스스로 직접 복잡한 쟁점을 정리해 설명하는 절차를 진행하는 등 법원의 전문성을 살린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특허소송의 최적지로 선택받아 온 것이다.

2015년 2월 국회가 발의한 이른바 '특허허브국가 추진법'의 핵심도 텍사스주 동부법원의 이러한 장점들을 채용하려는 데 있었다. 즉, 전국의 지방법원과 지원 어디에서든 소송이 가능하고 또한 통상 매 2년마다 법관들의 순환보직이 이루어지는 시스템 하에서는 특허사건에 관한 법관의 전문성 축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문제점 해소를 위해, 작년 1월부터 '특허침해소송'을 고등법원 소재지의 5개 지방법원이 전담하도록 하고 이에 대한 항소까지도 특허법원으로 집중되도록 함으로써 법원의 특허 관련 소송경험과 전문성의 축적을 용이하도록 하였다.

외국 당사자 40% 상회

또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역시 민사 제2수석부장직을 신설하여 지재 관련 가처분사건을 전담하도록 하는 등 지식재산 재판부를 전면 개편함으로써 충실한 심리와 전문성 축적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런 변화에 더하여, 처리하는 사건 중 한 쪽 당사자가 외국법인이나 외국인인 비율이 이미 40%를 상회하는 특허법원을 국제 지재권 분쟁 해결의 중심기구로 성장시키기 위해 영어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 국제재판부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현행 법원조직법 62조 1항은 '법정에서는 국어를 사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현행법 하에서는 영어로만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작년 12월 특허소송의 경우 법원은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 당사자가 법정에서 외국어로 변론하는 것을 허가할 수 있고, 이러한 재판은 국제재판부로 하여금 전담하도록 한다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제62조의 2를 신설하는 법안이 의원 입법으로 발의되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3M 소송에 처음 적용

국회의 입법활동에 맞추어 법원도 움직이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영어 변론을 실시한 것이다. 즉, 특허법원은 지난 6월 28일 '3M 이노베이티브 프로퍼티즈 컴퍼니'가 특허청장을 상대로 낸 특허거절결정취소소송에서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아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변론을 영어로 진행하였다.

사전에 화상회의 방식의 변론준비절차를 통해 특허청 소송수행자와 3M의 대리인이 한 자리에 모이지 않고도 재판부의 주관하에 사안의 쟁점을 정리하고 또한 영어 변론에 관한 제반 절차를 협의하였다. 영어로만 변론을 진행할 경우 현행법에 위배될 수 있기 때문에 재판부는 영어 변론을 진행하기에 앞서 우리말로 변론을 진행한 다음 동일한 내용을 영어로 변론하는 방식을 취했다. 아울러 양 당사자가 변론에서 사용하려는 영문 표현의 통일을 위한 사전 논의 등을 포함하여 영어 변론 시 생길 수 있는 실무상 어려움에도 미리 대비하였다. 양 당사자는 각자의 기술 프리젠테이션과 재판부의 질문 사항에 대한 답변을 모두 영어로 하였고, 재판부는 기본적으로 우리말로 재판을 진행하면서 양측에 질문을 할 때에는 영어를 사용하였다.

당사자인 3M은 국제적인 특허분쟁의 경험이 풍부한 글로벌 기업답게 영어 변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특히 서면과 증거자료를 번역문 없이 영어로 제출할 수 있어 편리하다는 점, 본사의 기술전문가나 발명자가 한국까지 오지 않고도 자신의 거주지에서 원격 영상을 통해 영어로 증언할 수 있다는 등의 장점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비록 금번 영어 변론에서는 원격 영상 증인신문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경우 우리나라 특허소송절차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허출원 4번째 국가

아직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와 경험에 기초한 미국, 독일의 특허소송제도에 비하면 개선, 발전시킬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시장이 상대적으로 작아 외국기업들이 우리나라에서 소송을 진행할 유인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은 전 세계에서 특허출원이 4번째로 많고 명실공히 미국, 유럽, 중국,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IP 5대 강국 중 하나이다. 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 Display 등 핵심 산업분야의 리딩 제조기업들이 위치하고 있어 추상적인 단순 시장 규모로만 우리나라의 잠재력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아가 중국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정치로부터의 독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 것 같고, 일본의 경우는 아직까지 구두변론 중심과는 거리가 먼 법정절차를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소송절차가 상대적으로 독립적이고 공정하며 충실한 심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인프라를 토대로 우리가 지식재산 분쟁의 효율적이고 신뢰할만한 해결절차 마련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을 기울인다면 특허소송의 허브국가가 될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

물론 영어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는 사정만으로 당장 IP 허브코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국회와 법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법정 내 영어 사용은 외국 당사자가 소송절차를 이해하고 의견을 개진하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결정적인 고려요소가 될 수는 없다. 즉, 법원의 공정하고 효율적이며 예측 가능한 절차, 충실하고 일관된 법리 적용, 신속하고 두터운 구제수단과 그의 효과적인 집행 등이 확보되는 경우 소송당사자들에게 있어 언어의 불편함은 부수적인 고려사항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영어 변론 실시는 IP 허브코트를 향한 첫걸음에 불과하다. 우리 특허법원이 IP 허브코트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개선과 발전을 통해 미국이나 독일과 필적할만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법원과 국회가 지금과 같이 한뜻으로 노력한다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특허소송 법제와 실무가 한층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장덕순 변호사 · 남기윤 변리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ducksoon.chang@kimchang.com, kynam@kimch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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