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구조조정 비판' 사내 선전방송도 정당한 노조 활동"
[노동] "'구조조정 비판' 사내 선전방송도 정당한 노조 활동"
  • 기사출고 2017.08.2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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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사측 허가 안 받았어도 징계 불가"
회사의 허가 없이 출근하는 근로자들을 상대로 사측의 구조조정을 비판하는 선전방송을 하고 유인물을 게시했더라도 정당한 노조 활동에 해당, 징계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8월 20일 현대중공업 노조원 정 모씨가 "정직 4주의 징계처분은 무효"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7다227325)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현대중공업이 2014년 11월경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 2015년 1월경 경영난을 이유로 1000여명의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구조조정을 진행하자, 정씨는 2015년 3월 11일부터 4월 29일까지 약 2개월 동안 출근시간 무렵에 울산에 위치한 현대중공업의 도크 게이트나 문화관, 생산기술관 앞 등에서 12회에 걸쳐 선전방송을 하고, 4월 7일 생산기술관 현관 출입문 등에 유인물을 1회 게시했다. 선전방송과 유인물의 주된 내용은 현대중공업이 명예퇴직을 빙자하여 정리해고를 강행하고 있고, 단체협약을 위반한 전환배치가 강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취지로, '여성 노동자들을 강제퇴직 시켰다' '경영진들은 아침부터 우리 노동자들을 어떻게 하면 회유하고 협박하고 탄압할 것인지 그런 연구를 하고 있다'는 등 사실과 다른 내용을 포함하거나, '살인을 자행하는 권오갑 사장', '낙하산으로 내려온 사장', '악마의 얼굴을 갖고 있는 권오갑 사장' 등 경영진을 비하하는 표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현대중공업이 '회사의 허가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선전방송이나 유인물 게시를 하고, 이를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경영진을 비하하며 명예를 훼손하는 등 직장 내 근무 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로 정씨에게 정직 4주의 징계처분을 내리자, 정씨가 소송을 냈다. 현대중공업의 취업규칙에는 회사의 명예나 신용을 훼손하는 행위, 허가 없이 사내에서 방송을 하거나 유인물을 게시하는 행위, 유언비어의 날조 · 유포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고, 이를 어기거나 회사의 승인 없이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유인물 등을 배포하거나 작업자를 선동 규합하려는 행위를 한 때 등을 징계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노조활동으로 이루어진 선전방송이나 배포된 문서에 기재되어 있는 문언에 의하여 타인의 인격 · 신용 · 명예 등이 훼손 또는 실추되거나 그렇게 될 염려가 있고, 선전방송이나 문서에 기재되어 있는 사실 관계의 일부가 허위이거나 그 표현에 다소 과장되거나 왜곡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선전방송이나 문서를 배포한 목적이 타인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원들의 단결이나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과 근로자의 복지증진 기타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고, 선전방송이나 문서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보아 진실한 것이라면, 그와 같은 행위는 노동조합의 정당한 활동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이러한 법리는 사용자가 징계사유로 삼은 근로자의 행위가 선전방송이나 유인물의 배포인 경우 그 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원고의 행위는 노조의 대응지침에 따라 노조활동의 일환으로, 피고 회사의 구조조정이 노조와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데 대한 부당함을 호소하고 근로조건의 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비록 원고가 취업규칙에서 정한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선전방송과 유인물 게시 행위를 하였고, 그 내용에 있어 사실관계 일부가 허위이거나 타인의 인격 · 명예 등을 훼손하는 표현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원고의 선전방송이나 유인물 게시 행위는 노동조합의 정당한 업무를 위한 행위에 해당된다고 볼 여지가 크고, 따라서 이를 이유로 한 징계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의 선전방송과 유인물의 주된 내용 역시 피고 회사가 진행하는 구조조정이 사실상 정리해고에 해당함을 지적하고 단체협약을 위반하여 전환배치가 강제로 이루어졌음을 비판하는 것으로, 실제 피고 회사가 진행한 구조조정이나 전환배치 등의 사실을 근거로 한 의견이나 비판으로 보인다"며 "비록 그 내용 중 일부가 허위이거나 왜곡되어 있고, 타인의 인격 · 명예 등이 훼손될 염려가 있는 표현 등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 내용에 허위성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 "원고는 근무시간이 시작되기 이전에 길가에 노동조합 방송차량을 세우고, 옆에 다른 노조원들 몇 명이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 상태에서 이 차량을 이용하여 출근하는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선전방송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원고의 선전방송은 근무시간 외에 2개월 동안 12회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고, 유인물 게시는 1회에 불과하며, 위법한 행동을 야기하거나 선동하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이러한 원고의 행동이 폭력적이라거나 폭력성을 띄게 될 위험이 있다고 보이지 않고, 한편 이로 인해 실제로 피고 회사의 정상적인 업무수행이 방해되었다거나 피고 회사 내 근무 질서가 문란해졌다고 볼 뚜렷한 증거나 자료도 없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대안이 정씨를, 현대중공업은 법무법인 국제가 대리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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