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형사보상 · 국가배상 이중지급했어도 환수 불가"
[민사] "형사보상 · 국가배상 이중지급했어도 환수 불가"
  • 기사출고 2017.08.14 11: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앙지법] '윤필용 사건' 유족에 승소 판결"항소심 변론종결 전 변제 항변 안 해"
이른바 '윤필용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 유족이 국가로부터 불법구금에 대한 형사보상을 받은 데 이어 국가배상소송을 내 승소 확정판결을 받아 손해배상금을 지급받았다. 국가로부터 지급받은 손해배상금 중 이미 지급받은 형사보상금을 국가에 돌려줘야 할까.

서울중앙지법 임종효 판사는 5월 10일 국가가 "피고들이 지급받은 손해배상금 4억 2800여만원 중 형사보상금 2900여만원에 그동안 발생한 이자를 더한 3400여만원을 반환하라"며 이른바 '윤필용 사건'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이 모씨의 유족을 상대로 낸 소송(2016가단5215236)에서 국가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미 받은 형사보상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윤필용 사건'은 당시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소장)이 술자리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노쇠했으니 형님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가 쿠데타설(說)로 번져 윤 소장을 포함한 군인 10명이 구속기소되고, 중앙정보부 요원 30여명이 해직된 사건이다.

육군범죄수사단 과장(대위)으로 근무하던 이씨는 '윤필용 사건'에 연루되어 1973년 3월 13일경 국군보안사령부에 소환된 후 구금되어 조사를 받기 시작했고, 다음날 해임됐다. 이어 '군납업자로부터 군납부정단속활동에서 잘 봐달라는 취지로 제공된다는 점을 알면서 1972년 1월 초순경부터 1973년 2월 사이에 총 22차례에 걸쳐 뇌물을 수수하고, 상관에게 보직 등 선처를 바라는 뜻에서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이씨는 1973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55만원이 확정됐고, 판결 확정에 따라 군에서 제적됐다. 이씨는 2004년 10월 사망했다.

이씨의 부인과 자녀 3명은 2012년 재심을 청구, 재심법원이 2014년 4월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이 증거 능력이 없거나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력이 없다"며 이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 같은해 5월 그대로 확정되자, 국가를 상대로 불법구금에 대한 형사보상을 청구해 2014년 12월 형사보상금 2900여만원을 지급받았다. 이씨의 부인과 자녀들은 또 형사보상 청구와 별도로 이씨에 대한 불법행위를 이유로 국가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해 2016년 4월 승소 확정판결을 받아 두 달 뒤인 2016년 6월 위자료와 지연손해금 등으로 총 4억 2800여만원을 지급받았다. 이중 이씨의 위자료 부분은 원금 2억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 3800여만원 등 2억 3800여만원이다. 뒤늦게 이중지급 사실을 알게 된 정부가 "이중지급된 형사보상금 2900여만원을 돌려달라"며 이자를 더해 이씨의 유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6조 1항은 "이 법은 보상을 받을 자가 다른 법률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금지하지 아니한다"고, 3항은 "다른 법률에 따라 손해배상을 받을 자가 같은 원인에 대하여 이 법에 따른 보상을 받았을 때에는 그 보상금의 액수를 빼고 손해배상의 액수를 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 판사는 그러나 "원고는 관련 민사사건의 항소심 변론종결일인 2015년 10월보다 앞선 2014년 12월 이미 피고들에게 형사보상금을 지급했는바, 관련 민사사건에서 항소심 변론 종결 전에 이를 변제항변으로 주장 · 입증하여 위자료 산정에 반영되도록 하였어야 할 것이고, 그 주장 · 입증을 놓친 채로 관련 민사사건의 판결이 확정된 이상 피고들이 그 확정판결에 기하여 지급받은 판결금을 두고 부당이득 운운할 수는 없음이 명백하다"며 "피고들이 관련 민사사건의 확정판결에 기하여 지급받은 판결금은 그 확정판결 자체가 '법률상 원인'에 해당하여 민법 741조가 정하는 부당이득의 성립요건이 충족될 수 없고, 확정판결이 '법률상 원인'에 해당함을 부인하는 것은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임 판사는 이어 "원고는 여러 국가기관 사이에 업무를 분장하면서 의사연락도 어려운 점을 피고들이 악용하여 형사보상금과 손해배상금을 이중으로 수령하였다고 주장하나, 이러한 사정은 기판력의 대원칙을 허물어 예외를 주어야 할 법적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만일 그러한 예외가 허용된다면 오히려 국가, 지방자치단체나 대기업과 같이 복잡한 대규모 조직을 갖춘 법주체만을 우대하는 결과가 되어 헌법 11조가 정한 평등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됨을 깊이 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임 판사는 원고의 불법행위 주장에 대해서도, "변론주의와 처분권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 민사소송법 체계에서, 피고들이 관련 민사사건의 소를 제기하여 소송을 수행함에 있어 원고에게 주장 · 입증책임이 있는 변제항변을 기다리지 않은 채 이를 먼저 자인하지 않았다 하여, 권리실현이나 권리보호를 빙자하여 원고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하거나 상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려는 의사로 행하여지는 등 고의 · 과실이 인정되고, 그것이 공서양속에 반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으므로, 불법행위가 성립된다고 볼 근거도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Copyrightⓒ리걸타임즈(www.legaltime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