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의 윤리와 책임
법률가의 윤리와 책임
  • 기사출고 2006.01.0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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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영 호주변호사]
필자가 즐겨보는 미국 NBC의 법정 드라마 '보스턴 리걸(Boston Legal)'의 한 에피소드에서 여자변호사 로리가 자신의 의뢰인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는 증거수집에 동의해야 할 지 고민하다가 자신이 일하는 로펌의 파트너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한 후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묻는다.

◇임주영 호주변호사
물론 의뢰인은 증거수집에 이미 동의하였고, 이는 법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Am I doing the right thing?(제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건가요?)"

법조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해봤을 질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엔 법률가로서의 윤리와 책임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필자가 로스쿨 첫 해에 들어야 했던 필수 과목 중 하나가 'Lawyers, Justice & Ethics(변호사, 정의, 윤리) '라는 수업이었다.

이 과목을 이수하지 않더라도 학교 졸업에는 상관이 없지만, 그랬다간 차후에 법원에서 admission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확고하게 변호사가 될 생각이 없는 학생이 아니고서는 꼭 들어야만 하는 수업이다.

일주일에 4시간씩 받은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클라이언트 인터뷰, 중재, 협상, 법정에서의 변호 기술들을 이론적으로 습득할 뿐만 아니라, 그룹으로 나뉘어 직접 role play를 하며 실천에 옮겨보기도 한다.

지금 돌이켜 보면, 법률가(legal practitioner)들이 지켜야 할 행위규칙은 물론 법의 왜곡 현상과 법 집행에 있어서의 형평성, 법의 생명인 공정성에 대한 고찰 등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법률가의 윤리 문제 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재정립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과목이었다고 생각된다.

법윤리 수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로스쿨을 졸업한 후 한국으로 치면 사법연수원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Legal Workshop 수업에서 필자는 다시 한번 'Legal Ethics(법윤리)' 수업을 들었다.

강의는 로스쿨 1학년때 들었던 수업보다 한차원 더 심화되고 실용화 된 형태로 진행됐다.

"법정에 대한 변호사의 의무(Lawyers’ Duty to the Court)", "의뢰인과의 관계(Lawyers’ Relationship with the Client)", "의뢰인에 대한 변호사의 의무(Lawyer’s Duty to the Client)", "변호사들의 특권(Legal Professional Privilege)", "정부기관과 기업의 변호사(Lawyers in Government and Commerce)", "변호사 책임 소송(Liability for Professional Negligence)" 과 같은 토픽들이 다루어졌다.

또 수업을 진행하는 instructor들과 교수들이 현장에서 직접 당신들이 겪었던 딜레마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며, 실제 일어날 수 있는(혹은 어디에선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 시나리오를 매주 2~3개씩 선정하여 6~7명의 학생들이 한 조를 이루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실제 그러한 상황들에서 지켜져야 할 행위 규칙들을 따져 보았던 기억이 난다.

자신 혼자 감당하기 어렵거나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혼동스러운 법 윤리적 딜레마에 부딪힌 변호사들이 '생명의 전화'에 해당하는 'Ethics Hotline'에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차라리 신선한 충격이기까지 했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호주에서도 변호사를 상대로 업무수행상의 잘못을 이유로 법적 책임을 묻는 소송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축적된 판결들도 아주 많다.

변호사들의 법적 책임에 관한 영미법에서의 고전 케이스는 1894년에 있었던 Allinson’s Case이다.

이 케이스에서 좋은 명성과 평판을 받고있는 동료들에 대해 '수치스럽다(disgraceful)'라고 판단되는 행위를 한 변호사는 위법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한 세기가 훌쩍 지난 현재, 단순히 '변호사로서 수치스러운' 행위를 한 변호사만을 처벌 혹은 규제의 대상으로 하기엔 법률서비스의 질과 이를 제공하는 법률가들의 질이 여러방면에서 비판과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한 법률적인 응답으로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영미권 국가에서는 판례법에서의 테스트 이외에도 더욱 엄격하고 광범위한 제정법을 통과시켰다.

이들 나라에선 변호사의 책임보험 시장의 규모는 나날이 증가해 가고 있고, 법률 소비자들이 능동적인 역할을 자처함에 따라 변호사를 상대로 한 법률 소송과 관련 법률 상담 등 피해 구제 시장이 점점 확대돼 가고 있다.

한국의 변호사들도 사정이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국민의 권리를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할 공익적 사명을 지닌 법률가들에게 필수적인 고도의 윤리의식, 올바른 법률 가치관과 훈련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임주영 변호사는 호주국립대학교(The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로스쿨을 졸업한 후 호주 검찰청과 국가인권위원회에서의 실무 경험을 거쳐, 현재 한국에 있는 글로벌 회계법인인 Ernst & Young 한영 (구 영화)에서 국제조세와 이전가격 전문 호주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호주에서 로스쿨 재학 중 서울대 법대에서 수학한 적도 있습니다.

임주영 호주변호사(Ju-Young.Im@kr.e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