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의 고민'하며 치르는 로스쿨의 시험
'햄릿의 고민'하며 치르는 로스쿨의 시험
  • 기사출고 2005.12.28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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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예의 오클랜드 로스쿨 유학기]오픈 북으로 적절한 판례 찾아 적용 여부 끝없이 씨름 정답 없고, IRAC방법 따른 설득력 있는 논리전개 중요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조경예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다름아닌 작은 아버지였다는 것을 알고선 이를 당당히 밝히고 맞서느냐, 아니면 잠자코 있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고뇌하며 했다는 유명한 독백을 오클랜드 로스쿨에 와서 수없이 되뇌이고 있다.

필자 뿐이 아니다.

로스쿨 학생이라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비슷한 문제로 씨름해야 한다.

'To apply or not to apply, that is the question!(적용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의 고민이 그것이다.

로스쿨에서의 수업은 끝없이 이어지는 판례를 읽고, 분석하고, Ratio(결정의 요지)를 찾아내고, 이전의 판례와 무엇이 달라서 판결이 다르게 났는지를 연구하는 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목마다 수업방식이 좀 다르긴 하지만, 이러한 Case Method가 거의 일반화돼 있다.

Case Method는 그 과목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게 주목적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또다른 목적이 있다.

기존의 비슷한 판례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끊임없이 따지고 공부하며 논점을 찾아내고 해법을 제시하는 문제해결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불법행위법(Torts)에 보면 대리책임(Vicarious liability)의 범위를 정하는 것과 관련해 여러 종류의 대리인이 나온다.

호텔의 바텐더, 기숙사의 사감, 소년원의 감독자, 도급업자, 공무원 등 여러 다양한 설정과 다른 상황에서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그 사용주에게 물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논점이다.

학생들은 이와 관련된 기존의 판례에 대해 배우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상황에 대하여 판단해야 할 것을 요구받게 된다.



또 이러한 훈련은 곧바로 시험문제화 된다.

문제를 풀기 위해선 법적인 지식 외에도 논리적인 추론능력, 비판적인 사고 등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논리적인 추론이나 비판적인 사고능력은 많은 양의 판례를 공부해야만 쌓을 수 있는 법학 공부의 토대가 되는 능력인 것이다.

이를 기초로, 가지고 있는 법적인 지식을 잘 활용하여 남들이 생각해 내지 못한 부분까지도 논점을 찾아내어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답안이 훌륭한 답안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로스쿨의 많은 시험은 오픈 북으로 치러진다.

암기보다는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날카로운 답안 작성을 요한다.

시험 시간은 대개 10분의 리딩(reading)과 3시간의 답안 작성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례형 문제(fact situation type)와 약술형 답안 문제(essay type)가 나오는데, 사례형 문제가 주를 이룬다ㅓ.

얼마전에 치른 불법행위법 기말시험에선 5개의 사례형 문제 중 필수 문제 하나와 나머지 4개의 문제 중 두 문제를 골라서 풀어야 했다.

한 문제가 보통 A4 용지 2~3장 정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리딩에만 시간이 만만치 않게 소요됐던 기억이 난다.

특히나 긴장되었던 것은 실수 등으로 중요한 이슈를 놓치게 되면 어쩔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주제와 관련된 모든 이슈를 담아내려 하는 시험문제 앞에서 학생들은 어떤 판례를 어떻게 적용할지, 관련 판례를 적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적용을 한다면 어떤 면에서 유사성을 추론하여 적용할 것인지에 대하여 자신의 논리로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

이렇게 3시간 짜리 시험을 보고 나면 누구나 녹초가 되게 마련인데, 어느 누구도 완벽한 답안을 쓰고 나왔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도 로스쿨 시험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자신이 낸 답안이 과연 설득력있는 답안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가운데, 많은 학생들이 사소한 이슈를 언급하지 않고 시험장을 나와서는 아쉬워하는 광경이 로스쿨 시험장의 단골 모습처럼 돼 버렸다.

교수들이 일년 내내 강조하며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답안의 채점기준은 '옳다, 그르다'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주장을 이끌어내는지 그 과정을 본다는 게 교수들의 한결같은 주문이다.

설사 이끌어 낸 답이 대다수의 다른 학생들의 그것과 달라도 주장하는 논거가 설득력이 있다면 좋은 답안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의의, 요건, 효과'가 기본틀이 되어 답안을 이루는 게 한국에서의 법학 시험이라면, 이곳에서의 시험은 IRAC 방법에 의하여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다.

IRAC는 Issue-Relevant law-Application-Conclusion의 약자이다.

계약법 시험을 보고 난 후 담당 교수와 면담을 하면서 내 답안 작성이 부실했다는 점을 깨닳았던 적이 있다.

오픈북이 허락된 시험에서는 의의와 요건보다는 얼마나 이슈를 잘 끄집어 내느냐(Issue spotting), 그 이슈에 관련된 적절한 판례법을 서술해 주는 것(Relevant law)과 그 판례법을 이슈와 관련시켜 적용하는 것(application)이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이 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게 가장 모자라는 것은 부족한 어학도 아니고, 공부의 양도 아니며, 생각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륙법적인 마인드를 영미법적인 사고방식에 맞추려면 완벽을 추구하는 짧은 답안보다는 끄집어 낼 수 있는 이슈들을 다 언급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

또 꼼꼼함과 날카로움도 중요하다.

다양한 종류의 판례 속에서 어떤 것이 이 사안에 적용될 수 있는 '진짜' 인지를 가려내는 과정은 마치 전투에 임해 아군과 적군을 가려내는 것처럼 긴장과 치열함을 요구하고, 한 과목의 시험이 끝나면 마치 전쟁을 치른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지 싶다.

한국에서 법 공부 할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투사적인 면모가 법학 공부에 필요하다는 것도 오클랜드에 와서 새삼 실감했다.

필자는 이화여대에서 법학과 영문학을 공부한 후 동 대학원에서 수학중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로스쿨로 유학, 2학년을 마치고 3학년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학생입니다. 겨울방학을 이용해 국내의 한 로펌에서 인턴십을 밟고 있습니다.

조경예(kcho130@ec.auckland.ac.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