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노조와 합의했어도 임금피크제 계약직에 적용하려면 별도 동의 받아야"
[노동] "노조와 합의했어도 임금피크제 계약직에 적용하려면 별도 동의 받아야"
  • 기사출고 2017.03.1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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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신한은행에 패소 판결"임금피크제 무효…미지급 임금 지급하라"
임금피크제 도입에 노조와 합의했더라도 노조원이 아닌 계약직 근로자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이들 근로자 과반수의 별도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권혁중 부장판사)는 2월 9일 이 모씨 등 신한은행의 관리지원계약직 근로자 52명이 "2016년 1월부터 시행한 '임금피크제 운용지침'은 우리들에 대하여 효력이 없음을 확인하고, 1인당 위자료 500만원과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지급받지 못한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며 신한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2016가합511776)에서 "임금피크제 운용지침은 원고들에 대하여 무효"라고 판결했다. 또 "은행은 이씨 등 9명에게 미지급 임금 1억 34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위자료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한은행은 2009년 12월 중순 일반직 4급 직원(1967년 12월 이전 출생자)을 대상으로 재취업을 조건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한 다음 이들을 다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직 근로자로 특별채용했다. 정년에 이를 때까지 후선업무 등 일반적 사무처리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관리지원계약직이다. 관리지원직 근로자들은 일반직원에 적용되는 인사규정과는 다른 '관리지원계약인력 운용지침'이라는 별도의 취업규칙을 적용받았고, 노조의 조합원 자격에서 제외됐다. 관리지원직 근로자들은 대략 종전에 지급받던 연봉을 40% 이상 감액한 5300만원(평가등급 3등급 기준) 내지 5600만원(평가등급 5등급 기준) 수준의 연봉을 받았다.

한편 신한은행은 2015년 9월 소속 근로자 중 일반직, RS직 사무인력(무기), 관리지원직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정년에 도달하기 5년 전부터 순차적으로 임금을 삭감하여 지급하는 임금피크제를 2016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노조와 합의했다. 신한은행은 그해 12월 노조와 사이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2015년도 단체협약에 관한 보충협약을 체결하고, 2016년 1월부터 임금피크제 운용지침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침 제정 당시 노조의 동의만 받았을 뿐 관리지원직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동의를 받은 바 없다.

재판부는 "취업규칙의 작성 · 변경에 관한 권한은 원칙적으로 사용자에게 있으므로 사용자는 그 의사에 따라서 취업규칙을 작성 · 변경할 수 있고, 다만 취업규칙의 변경에 의하여 기존 근로조건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종전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고 있던 근로자 집단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를 요하는 것인바, 그 동의방법은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의, 그와 같은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들의 회의방식에 의한 과반수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여기서 말하는 근로자의 과반수라 함은 기존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 집단의 과반수를 뜻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가 지침의 제정을 통해 원고들 같은 관리지원직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불이익하게 변경하기 위해서는 일반직과는 별개의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아 오던 관리지원직 근로자들의 회의방식에 의한 과반수의 동의가 있어야 함에도, 피고는 그와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였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지침은 근로기준법 94조 1항 단서에 위반하여 관리지원직 근로자들인 원고들에 대하여는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신한은행은 "관리지원직 근로자들과 일반직 근로자들은 형식적으로 취업규칙이 분리되어 있을 뿐 근로조건이 이원화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씨 등과 같은 관리지원직 근로자들은 별도의 취업규칙을 적용받으면서 일반직 근로자들과는 다른 임금과 인사 체계 등 근로조건의 핵심적인 내용을 달리하고 있는 점 ▲신한은행과 노조 사이에 체결된 보충협약에 의하더라도 이 협약상 근로조건에 관한 조항은 정규직 종업원에게만 적용되는 것인 점 등을 감안할 때, "두 근로자집단의 근로조건이 동일한 것으로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만 위자료 청구에 대하여는, "피고가 지침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원고들의 동의를 받지 아니한 것 자체로 원고들에게 어떠한 손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원고들의 손해는 무효인 지침을 원고들에게 적용하여 감액된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비로소 발생하는 것인데, 이는 재산적 손해로서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감액된 임금을 지급받음으로써 회복된다고 보아야 하고, 이에 나아가 원고들이 감액된 임금을 지급받는 것만으로는 회복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김기덕, 최종연 변호사가 원고들을, 신한은행은 법무법인 세종이 대리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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