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마다 튜토리얼 운영…토론 · 질문 병행
과목마다 튜토리얼 운영…토론 · 질문 병행
  • 기사출고 2005.12.0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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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예씨의 오클랜드 로스쿨 유학기] 영국의 오래된 판례로 시작한 계약법 첫 강의 튜토리얼서 계약서 실제로 작성, 신선한 충격
영국과 뉴질랜드는 학부에 로스쿨을 두고 있다.

◇조경예
4년제이며, 졸업하면 법학사(LLB) 학위가 수여된다.

오클랜드 로스쿨의 경우 1학년은 해마다 그 정원이 다르지만 700명이 넘는다.

하지만 로스쿨 2학년에 올라가는 학생수는 300명이 채 안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2학년 진입이 큰 과제이다.

2학년이 돼야 비로소 진정 로스쿨을 다닌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은 법학 이외의 다른 전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2학년에 초대되지 않는 학생들은 자신이 선택한 다른 학위를 이수하게 되는 것이다.

1학년때는 우리로 따지자면 법학개론에 해당되는 'Legal Method' 와 'Law and Society'를 한 학기에 한 과목씩 수강한다.

2학년에서는 본격적으로 법학을 공부하게 된다.

2학년의 필수과목은 계약법(law of contract), 불법행위법(law of torts), 형법(criminal law), 공법(public law). 이를 1년과정으로 이수해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복수전공을 하고 있는데, 복수전공을 하는 학생들의 대다수는 2학년 과목을 2년에 걸쳐서 이수한다.

즉, 첫해에는 형법과 공법을 먼저 이수하고 그 다음해에 계약법과 불법행위법을 공부하는 식이다.

이들 과목 이외에 'legal research and writing' 과정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요국가들의 판례와 저널 검색, 글쓰기 방법을 배우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과 법률문장이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을 상대로 한 별도의 세미나도 매주 열린다.

2학년 과정을 공부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과목은 역시 계약법과 불법행위법이었다.

필자의 경우 한국에서 법과대학을 다닐 때 공법보다 사법에 관심이 많았는데, 오클랜드에서의 계약법, 불법행위법 강의는 대륙법을 계수한 우리나라와 영미법의 체계에 대한 비교 분석을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국의 경우 민법총칙부터 시작해 법률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틀을 익힌 후 각론을 배우는데 비해, 이곳 계약법의 첫 시간은 청약과 승낙에 관한 영국의 오래된 판례로 강의가 시작된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로스쿨의 인터넷 홈페이지(www.law.auckland.ac.nz)
이어 줄곧 계약의 다양한 현상과 요건, 불이행시의 손해배상에 대해 중점적으로 공부를 하게 된다.

이처럼 판례를 가장 중심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면 자칫 이론적인 공백이 생길 우려가 있는데, 이를 위해 학교에서는 튜토리얼이라고 하여 필수과목마다 12명 남짓의 그룹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못했던 토론을 하게 하고, 질문 등에 답을 해주며, 또 그때그때의 과제를 같이 풀어보면서 그 과목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졸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변호사들이나 박사과정에 있는 선배들이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학생과 지도하는 사람(튜터) 모두에게 강의와 토론에 대한 연습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불법행위법은 우리 민법으로 치면 불법행위를 중심으로 강의가 진행된다.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Negligence), 불법침해(Trespass), 상린관계에서의 불법침해(Nuisance) 와 명예훼손(Defamation)이 주요 내용이다.

통합된 민법전이 없는 영미법에서는 아직도 불법행위법의 영역은 판례를 통해 발전, 변화해 가고 있다.

일례로 프라이버시에 관한 논의는 근래에 발전된 불법행위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토츠라고 불리는 이 불법행위법은 2학년 과목 중에서 가장 그 판례의 양이 방대하며 다루는 영역도 넓다.

나중에 실무에 나가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과목이며, 또 이 과목을 이수하려면 Mooting이라고 하여 우리나라의 모의재판에 해당하는 발표를 위에서 설명한 튜토리얼 시간에 해야 한다.

주제는 학교에서 정해준다.

보통 4명이 한 조가 되어 2명은 원고측 대리인을, 2명은 피고측 대리인을 맡아서 관련된 법적 이슈에 대하여 실제 재판에서 변론을 하는 것과 똑같이 하게 된다.

물론 중간중간 판사 역을 맡은 튜터들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져서 변호사 역을 하는 학생들을 당황하게 한다.

이러한 과정을 지나면서 필자가 느낀 것은 이곳의 교육이 철저히 실무와 연결된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민법을 공부하면서도 이론적인 지식만 습득했을 뿐, 민법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 지는 관념적으로만 이해했던 필자는 계약법 튜토리얼의 첫번째 시간에서 계약서를 실제로 작성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말 그대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 불법행위법 교수님은 변호사들도 과실에 의한 소송을 피할 수 없다며 변호사가 알아야 할 지침 등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다.

다들 공감하는 분위기였고, 필자도 '지금의 이 공부가 정말 요긴하게 쓰이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더욱 흥미를 가지고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오클랜드 로스쿨에서 공부하면서 가끔 답답할 때도 있었다.

너무 판례 위주로 공부하다 보니 한국에서 공부했던 다양한 요건들과 개념들에는 너무나 무심하구나 라는 생각을 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를테면 민법에서는 사람과 대리행위에 관하여 먼저 공부한 후 이를 전제로 모든 법률관계에 대한 것을 배우는데, 영미법의 판례 중심의 학습은 바로 청약과 승낙, 손해배상을 곧바로 배우니 말이다.

하지만 학기를 끝나고 뒤돌아 보니, 결국엔 양쪽의 학습방법 모두 필요한 요건들을 다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 체계가 갖는 특성에 의한 접근 방식의 차이이지 본질적으로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거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영어를 상용하지 않는 한국의 경우 영어로 된 법률문제를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가 적을 수 밖에 없는데, 이는 글로벌시대의 언어경쟁력의 차원에서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

로스쿨의 첫 시간은 내가 그동안 간과했던 법에 대한 진실을 얘기해 주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이후의 시간들은 그 진실들을 깨우쳐 주는 긴 여정이었다.



좋아하는 법언을 하나 인용한다.

THE LAW IS NOWHERE, YET IT’S EVERYWHERE.(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곳에 있다.)

◇필자는 이화여대에서 법학과 영문학을 공부한 후 동 대학원에서 수학중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로스쿨로 유학, 2학년을 마치고 3학년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학생입니다. 겨울방학을 이용해 국내의 한 로펌에서 인턴십을 밟고 있습니다.

조경예(kcho130@ec.auckland.ac.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