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란 무엇인가
변호사란 무엇인가
  • 기사출고 2005.11.29 18: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봉헌 변호사]
몇 달 전 미국에 출장을 갔다 온 후배 변호사가 대뜸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진봉헌 변호사
"회장님,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변호사가 어떤 변호사인지 아십니까?", "글쎄"라고 답하는 나에게 그는 "40대에 은퇴한 변호사입니다"라고 정답을 말해 주었다. 재미있는 유머였다.

그런데 또 하나의 자그마한 사건이 겹치자 위 유머는 나에게 '변호사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변호사 직업의 정체성에 혼란이 생긴 것이다.

50대에 접어드는 나이 탓이 크다. 사춘기 소녀처럼 최근에 들어 부쩍 아무것도 아닌 일에 온갖 과대망상의 해석을 덧붙이는 나는 집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있다.

심약해진 나를 비틀거리게 만든 사건은 말하기도 부끄러울 만큼 사소한 일이었다. 그것은 현직에서 갓 나와 수도권에서 개업한 후배 변호사가 야심만만하게 던진 한 마디 말이었다.

"선배님 어떻게 십년 이상 변호사를 하셨습니까? 저는 딱 한 5년만 하고 다른 일을 해야겠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워진 변호사들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변호사란 돈 버는 직업 이상의 의미는 없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면 한밑천 챙길 수 있는 직업, 안해도 먹고 살 만하면 뒤도 바라보기 싫은 직업이 변호사라면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영악하지 못해 한밑천 챙기지 못하고, 평생 법정을 들락거려야 하는 대다수의 변호사들은 낙오자란 말인가.

개업 초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교도소에 접견을 가면 언제 나가게 되느냐는 구속된 피고인들의 성화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선고기일에는 선고 결과에 가슴이 조려 사무실에 앉아 있지 못했다. 진퇴양난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모든 것이 의뢰인들과 동고동락하는 것 아니냐, 나 아니면 누구에게 호소하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일이 결코 먼 곳에 있는 일은 아니다. 열심히 일해서 모은 재산을 보호해 주는 데서 부터 시작되는 것 아닌가.

재산을 보호해 주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신체의 자유를 지켜 주어야 하는 것 또한 영국의 시민혁명 이후 자명한 진리로 자리 잡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변호사야말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전사이다. 국가의 최고 규범인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변호사의 이러한 역할을 명문화한 것이다. 국민의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변호사의 주 활동무대인 법정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이다.

또한 헌법은 누구든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신체의 자유를 지키는 수호자로서의 변호사의 책임이 전제되어 있는 규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막중한 역할과 책임이 주어진 변호사에게 국가는 한 푼의 지원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완전히 시장경제에 맡겨져 있는 변호사는 힘들고 고달플 수밖에 없다. 시장은 얼마나 냉혹한가.

권력을 가진 경찰 · 검찰과 맞서야 하는 긴장감은 또 어떠한가.

변호사 업무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심정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비록 힘들고 고달프지만 국민의 인권을 지키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전선에서 한치의 물러섬도 없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과대망상이 심해지면 한국판 돈키호테가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대한변협신문에 실린 진봉헌 변호사의 칼럼을 진 변호사와 변협의 양해아래 전재합니다.

전주지방변호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