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평생의 업적은 어디에 있는가'
'네 평생의 업적은 어디에 있는가'
  • 기사출고 2016.06.1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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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전 검찰총장의 시문집 "흘반난"
'마음은 이미 다 타버려 재가 된 나무 같고/이 몸은 매어 놓지 않아 정처 잃은 배와 같구나/묻노니 네 평생의 업적은 어디에 있는가/황주, 혜주, 담주'

소동파(蘇東坡)의 자제금산화상(自題金山畵像)으로, 소동파가 귀양에서 풀려나 상주로 오던 도중 이공린이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에 써 넣은 시다. 스스로 마지막을 예상하고 일생을 정리한 것. 황주, 혜주, 담주가 어디인가, 바로 그의 귀양지다.

◇김진태 전 검찰총장이 펴낸 시문집
지난해 12월 퇴임한 김진태 전 검찰총장이 한국과 중국의 시와 문장에 짤막한 소회를 덧붙인 책을 펴냈다. 최치원, 두보, 이백, 원효, 소동파, 이황, 조식, 측천무후, 임제 등 역사의 굽이굽이에 살다간 문인재사들의 시와 문장 126편을 담았다.

법정(法庭)이야말로 인간의 민낯과 세상인심이 여실히 드러나는 곳이리라. 법조인으로서, 김 전 총장은 인간사 애환을 바라보며 느껴야 했던 번민과 소란한 마음을 옛 글에 기대어 풀고 다스렸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시문들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에서 지식인의 고뇌와 사유, 생활인의 어려움, 사랑, 우주적인 깨달음까지 아우르며, 김 전 총장이 붙인 설명과 저자에 대한 평가는 인간과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다가온다.

김 전 총장은 "사람에 대한 소개는 누구를 막론하고 그 사람의 삶을 최대한 긍정적이고 현실적이며, 그리고 인간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다"며 "누구나 막중한 소명을 가지고 지구에 온 존재로서 그 당시의 상황에서는 필요한 사람으로 이해하려 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글머리에 적었다.

김 전 총장은 백봉 김기추 선생, 효당, 무천에게서 불교와 역(易)을 배웠으며, 한문에도 능통하다. 검찰총장이 되어 가진 첫 간부회의에서 "자리가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게 아니라 어느 자리에 있건 최선을 다하면 그 자리가 빛나는 것"이라는 뜻이 담긴 소동파의 시가 적힌 종이를 나눠줘 화제가 됐던 김 전 총장이다.

책의 제목인 '흘반난'은 '밥먹기 어렵다'는 뜻. 세상에 밥 먹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을까. 김진태 검사가 검사실과 법정에서 느꼈을,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투고 번민하고 갈등하고 울고 웃는 세상의 축소판이 엿보인다.

그는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건만 인간의 정회는 참으로 제각각"이라는 표현에 공감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그래서 온 누리에 자비와 평화가 가득하길 기대해 본다"고 덧붙였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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