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신용정보업체 채권추심원도 근로자"
[노동] "신용정보업체 채권추심원도 근로자"
  • 기사출고 2016.04.29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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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4대 보험 안 들었지만 종속관계에서 일해"
신용정보업체 채권추심원처럼 위임계약을 맺고 일했더라도 실질상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다면 근로자로 보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학습지 교사나 가스검침원 등 도급이나 위임계약 형식의 근로자라 하더라도 퇴직금 등의 적용대상인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어 주목된다.

대법원 제3부(주심 대법관 박병대)는 4월 15일 중앙신용정보(주) 전 채권추심원 김 모씨 등 3명이 "퇴직금을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5다252891)에서 "김씨 등이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김씨 등은 2006∼2011년 중앙신용정보와 계약기간을 6개월로 하여 채권추심위임업무수행계약을 체결하고 채권관리 및 추심업무를 담당하다가 퇴사한 후 퇴직금을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원고들은 업무를 수행하는 데 피고로부터 구체적인 지휘 · 감독을 받으며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다가 퇴직하였으므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라 할 것"이라며 각 퇴직 전 3개월동안 지급받은 임금을 기준으로 김씨 등에게 총 3500여만원의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김씨 등이 종속적인 지위에서 회사에 근로를 제공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1심을 취소하고, 김씨 등의 청구를 기각하자 김씨 등이 상고했다.

김씨 등이 회사와 작성한 계약서에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련 법령이 정하는 근로계약관계에 있지 아니함을 확인한다'는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6개월의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상호 협의하여 연장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김씨 등이 영리를 목적으로 겸업하여 계약이행에 차질이 있다고 인정되거나 위임업무 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 회사가 해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중앙신용정보는 김씨 등에게 우편발송비와 일정한 기준에 따라 교통비 등을 지원했으며, 필요한 경우 자체적으로 김씨 등을 교육하고, 김씨 등으로부터 교육참가확인서를 받았다. 김씨 등은 매월 초순경 채권관리시스템에 그 달의 업무목표량을 전화통화, 방문, 법조치, 입금약속 등의 항목별로 등록한 후 상급자의 승인을 받았다. 김씨 등은 오전 9시까지 출근하여야 했고, 때때로 실적향상을 위해 조기출근, 토요일 근무, 야근을 독려 받으면서 동참하지 않는 경우 채권배분 등에서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공지를 받기도 했다. 김씨 등은 매월 21일 무렵 회사로부터 수수료를 지급받았는데, 그 금액은 채권추심실적에 따라 변동되었다. 중앙신용정보는 수수료에 대하여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했고, 김씨 등에 대한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 가입신고를 하거나 그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았으며, 김씨 등을 비롯한 채권추심원들을 구속하는 취업규칙이나 내규를 정하지는 않았다.

대법원은 "원고들과 같은 채권추심원의 근로자성이 다투어지는 개별 사건에서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소속된 채권추심회사의 지점, 지사 등 개별 근무지에서의 업무형태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 및 증명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사실심의 심리결과 채권추심원이 채권추심회사에 매일 정시에 출근할 의무가 없었고 채권추심회사와 계약관계를 유지한 기간 동안 채권추심회사에 종속되어 지휘 · 감독을 받으며 업무에 전념하였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적은 액수의 성과수수료를 받는 등 근로자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사정들이 밝혀지거나, 채권추심원의 근로자성을 증명할 책임이 있는 당사자가 소송과정에서 다른 회사의 채권추심원 등에 관한 판결 선례 등만을 증거로 제출하였을 뿐 당해 사건에서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실을 증명할 증거를 전혀 제출하지 않는 등의 경우에는 채권추심원의 근로자성이 부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6개월마다 재계약…3~5년 근무

대법원은 그러나 "원고들의 경우에는 최초 계약기간은 6개월로 정하여 채용되었지만 반복적인 재계약 또는 기간연장 합의를 통하여 약 3년 내지 5년 동안 채권추심원으로 종사하여 업무의 계속성이 있었고, 또한 그 업무수행 과정에서 피고로부터 수수료 차감, 다른 팀으로의 이동, 이미 배정된 채권의 환수, 새로이 배정될 채권의 감소 등과 같은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캠페인, 조기출근, 야근, 토요일 근무 등 피고가 업무실적향상을 위해 동참을 요구하는 각종 조치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고들이 받은 보수는 기본급이나 고정급 없이 성과급의 형태로만 지급되었지만 이는 채권추심업무의 특성에 의한 것일 뿐이고, 원고들이 제공한 근로의 양과 질에 대한 대가로서의 임금의 성격을 지니지 아니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더구나 피고는 원고들에게 채권추심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목표설정에서부터 채권추심업무의 처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의 과정을 채권관리시스템에 입력하게 함으로써 원고들의 업무를 구체적으로 지휘하고 관리 · 감독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다"며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체결된 계약의 형식은 위임계약처럼 되어 있지만 그 실질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피고에게 근로를 제공한 근로계약관계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김씨 등은 근로기준법의 적용대상인 근로자에 해당하므로,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이지가 김씨 등을, 중앙신용정보는 법무법인 인화가 대리했다.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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